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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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질문있어요!]


노방전도를 꼭 해야 하나요?

Q : 지하철 안이나 길에 보면 “예수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큰 소리로 노방전도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한번은 친구들과 지나가다가 그런 분을 봤는데, 꺼려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너 같으면 저렇게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라며 옹호를 하는 친구도 있더라구요. 도대체 그런 노방전도를 어떻게 봐야 하죠?

A : 옛날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아주 이상한 모습을 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이 사람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기인(奇人)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서는 지독한 생선 비린내가 났어요. 생선의 위장 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여러분, 조금 지저분한 광경을 생각해 볼까요? 그 사람 몸에는 물고기 뱃속에 있던 여러 음식물이나 소화 잔여물들이 범벅되어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물고기 위장 속에 있다가 나왔으니 얼마나 냄새가 났겠어요? 변변한 옷을 입었을 리도 없고, 눈은 퀭하고 무시무시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 같지 않은 이 사람이 느닷없이 니느웨 성에 나타나서는 거리를 활보하면서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소리 지르면서 다니는 거예요.

이 사람이 누군지 벌써 눈치 채셨지요? 바로 요나예요. 만일 오늘날 이런 사람이 서울 거리에 나타나서 “서울은 곧 멸망할 것이다”라고 소리치고 다닌다면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99%의 사람들은 ‘미친 놈’이라고 단정하고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이 고함 소리 안에 바로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었어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니느웨 백성들이 바로 이 기인과 같은 요나의 고함소리를 진지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의 고함소리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돌이켜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한 후 회개의 상징인 굵은 베옷을 입었답니다. 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도 왕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 회개했죠. 그리고는 온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서 악한 일들에서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백성들의 이런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셨고, 니느웨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돌이키셨어요.


만일, 오늘날 서울에 요나와 같은 기인이 등장하여 외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마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미친 놈 취급을 하며 경찰에 넘겨 버리겠지요.

그러면 이제 우리 친구가 질문한 경우 곧, 어떤 사람이 서울 거리에서 또는 지하철에서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외치는 경우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요. 이런 전도방식을 우리는 노방전도라고 하지요. 노방전도를 많은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효율적이지 못하고 공공질서를 어기며 시민들의 편안한 생활을 방해한다는 것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전도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예의바르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공공질서를 지키고 예의바르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하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비상한 방법을 동원해야 할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노방전도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하여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두 가지 경우를 예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시민들이 도시에서 장사를 할 때는 합법적으로 점포를 얻어서 자기 점포 안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에요. 그런데 거리를 다니다 보면 쾌적하게 다녀야 할 보도에 많은 상인들이 음식이나 물건들을 벌여 놓고 장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이런 장사는 대부분 불법이에요. 공공질서를 어기고 시민들의 편안한 통행에 방해가 되는 행동들이죠. 그러나 이렇게 거리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점포를 얻을 돈도 없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난하고 절박한 서민들이 많아요. 이렇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고 공공질서와 시민들의 편안한 도시생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국가나 기업이 잘못된 정책을 펼칠 경우에 시민들이나 사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책임있는 사람이라면 행정관청에 찾아가서 관계자를 만나 항의의 뜻을 전달한다든지 서류상으로 민원을 제기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시정할 것을 요구하겠죠.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시정을 요구해도 듣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나요? 그때는 거리에 나와 항의데모를 하거나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방법은 최대한 자제해야만 해요. 그리고 가능한 공공질서를 어기지 않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야 해요. 그러나 비상한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이런 방법을 동원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노방전도의 경우는 어떨까요? 전도는 보통 교회 안에서 목사님의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죠. 혹은 거리에서 전도를 하더라도 조용히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거리를 시끄럽게 하지 않고, 그리고 소속되어 있는 교회 이름을 분명히 밝히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에요. 그런데 전도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의 현실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급속도로 부흥한 것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에요. 이 정도로 부흥했으면 급한 불은 껐으니까 이제는 한숨 돌리고 점잖고 예의바른 방법으로만 전도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현재 한국 기독교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는 지도 몰라요. 한국이 전세계가 인정할만큼 놀라운 복음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제일 종교는 불교랍니다. 불교인구가 50%를 차지하고 있어요. 크게 잡아도 기독교인구는 전 국민의 25%를 넘지 않으니까 불교인구의 절반 밖에 안 되지요. 그러나 이 수치도 공식상의 통계에 지나지 않고 실제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사정이 나빠요. 특히 지방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실제로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6-7%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이 숫자가 사실이라면 90%가 넘는 국민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거예요. 국민들의 90% 이상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 상황이 비상한 상황이 아닌가요? 국민들 가운데 90% 이상이 지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냥 얌전히 예의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몇 걸음만 더 내디디면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막 달려가고 있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잘 알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도 예의를 지켜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말로 설득해야 할까요? 아니에요. 소리를 버럭 질러대고 강제로 팔을 낚아채고 필요하면 발을 걸어 넘어뜨려서라도 멈추게 해야 되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여 있는 니느웨 백성들을 향해 미친 듯이 절박한 심정으로 외쳤던 요나의 외침이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거칠고 투박하고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닫고 주께로 돌아오고, 안일한 신앙생활에 안주하려고 하는 교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방법으로 전도하는 성도들을 정죄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외침 속에 한국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절박한 호소와 경고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현대사회의 환경이 요나나 예수님 당시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요.


고대사회에는 육성으로 전달하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의사전달 방법이 없었어요. 종이나 양피지가 있긴 했지만 질도 나쁘고 비싸고 귀해서 쉽게 사용할 수가 없었죠. 그러나 오늘날에는 효율적인 의사전달방법이 아주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어요.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을 통해 한번에 수백만 명 이상의 청중들에게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죠. 신문이나 책과 같은 인쇄매체를 이용하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을 수 있도록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죠. 우리는 이와 같은 보다 효율적인 수단들을 선교를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복음을 들을 수가 있으니까 될 수 있으면 교회로 초청해서 복음을 듣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수들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노래를 하면서도 육성으로 직접 노래하는 라이브 콘서트를 가지듯이, 또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육성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연극무대를 열듯이, 다양한 의사전달방법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교회 안팎에서 직접 복음을 전하는 전도방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글/ 이상원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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