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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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 9:36-43

제    목 : 베드로에게 배우는 신앙의 자세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사도행전 9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에 앞장섰던 유대교의 패기 만만한 젊은 지도자 사울의 회심과, 기독교의 핵심적인 지도자 베드로의 왕성한 활동을 대비하여 보여 줍니다. 아울러 그 모든 배후에 예수께서 계심을 부각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자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강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베드로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요 초대 교회의 수석 사도답게 베드로는 예루살렘 전도에 만족하지 않고 온 유대지역을 순회하며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사역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 또한 성도로서 스스로의 위치와 사역을 어떻게 자각하고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어떤 자로 자각해야 할까요?



 1. 우리는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본문 중 행 9:31,32 말씀을 보십시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잠시 주춤해지고 온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평안해지자 베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순회 전도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그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복음 전파의 영역을 확대해 갔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조금 성장하고 또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현실에 안주하는 목회자, 평신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성도에게 이러한 마음 자세는 절대 금물임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마 28:19,20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혹은 약간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시름인들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 성도들 모두 자신이 복음 전달자임을 새롭게 자각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이웃에게,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충성된 증인이 됩시다.



 2. 우리는 능력의 도구입니다.


행 9:34을 보면 베드로는 룻다에 사는 중풍병자 애니아에게 이렇게 명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곧 베드로는 애니아를 일으키는데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자신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의 도구로서 낮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비록 아무리 많은 신앙의 공적을 쌓고 전도를 하고 봉사를 했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분열되어가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은 고전 3:5에서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인데, 왜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갑니까? 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넘어집니까? 이제 본문의 베드로를 통해서 다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도구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하나님만을 높입시다.



 3. 우리는 기도의 사명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 9:40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욥바의 과부들이 선행과 구제가 많았던 다비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자신을 초청했을 때, 급히 찾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죽은 다비다를 되살렸습니다. 이러한 다비다의 소생 이적은 온 욥바 사람들이 듣고 많이 주를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드로는 욥바의 과부들이 자신을 초청했을 때, 매우 두렵고 곤욕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역사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자신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자리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기도하고 다비다를 살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곤욕스런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그 자리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요 15:7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의 힘만을 믿고 무모한 일을 자청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경우라면 주님을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일 5:14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의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전달자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요, 기도의 사명자로서 그 유감 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모습을 통해 자신이 성도로서 갖춰야 할 올바른 모습을 깨닫고 항상 사명감에 불타는 살아 움직이는 복음 전도자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봉사와 사랑의 겸허한 도구로서, 또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잊지 않는 기도의 사명자로서 살아갑시다.


 베드로는 신앙의 위인이라기 보다 우리로 하여금 그를 본받고 따라가도록 세움받은 신앙의 모범자입니다. 고로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의 모범을 따라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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