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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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37편 9절

제    목 : 온유한자


   스위스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설경이 뛰어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한번은 여러 명의 등산객들이 현지의 익숙한 안내원을 대동하고 높은 산을 올랐다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폭음 소리가 온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안내원은 다급한 소리로 '눈사태다. 피해야 살 수 있다'라고 외쳤다. 모두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데 천만 다행으로 큰 바위하나가 그 옆에 있었다. 그들이 재빨리 그 밑으로 들어가자 집채보다 몇 배나 더 큰 눈 더미가 내리 덮쳤다. 그리하여 이들은 모두 안전하게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의 표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생애를 그의 수제자였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3).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의 산상 수훈 첫머리 팔복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온유한 자의 받을 복을 선포하시면서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온유해야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모두 온유해야 합니다. 다윗도 본문에서 성도는 온유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온유한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입니다.

   1) 연약함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도 우리에게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참조, 사 53:2).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이 연약함이 수치나 되는 것처럼 숨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존재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이 연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이 드러냅니다. 이러한 사람은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교만은 자신을 과장하거나 숨길 때 시작됩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드러내 놓고 당당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이 항상 겸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2. 내적 즐거움을 소유한 자입니다.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 허물 등을 드러낸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괴로워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유한 사람은 얼굴에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왜입니까? 그에게는 내적으로 그윽한 기쁨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득 차 있습니다(참조, 고후 4:7). 그래서 그가 연약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더욱더 강하게, 능력 있게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함과 허물을 드러내는 겸손과 온유가 우리로 하여금 도리어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렇게 해서 부드러워진 우리의 마음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정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3. 여유가 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집을 나간 그 순간부터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되 그가 돌아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또한 그가 돌아왔을 때는 그의 잘못을 가르치기 위해 매를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고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자식의 부족함과 잘못을 용서하는 이러한 여유는 오직 아버지 한 분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온유한 자에게도 이러한 여유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 실수할 가능성까지 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그것들을 이해하고 용서해 줄 줄을 압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온유한 자는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립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올 때도 결코 그를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일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자들을 용납할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새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러한 삶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4. 땅을 차지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이 말은 매우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은유의 행위와 땅을 차지하는 행위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가 그의 온유함으로 인해 어디든 어떤 땅에서든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게 되고, 따라서 그가 비록 세상의 법칙으로는 이 땅의 소유주가 될 수는 없지만 실제적으로는 이 땅을 소유한 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이 땅의 것들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혹은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우리가 천국의 마음을 소유하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지상의 것들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은유한 자 이삭의 부요는 이러한 사실을 가장 강하게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참조, 창26:1-35).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는 오직 하늘의 것을 사모하여 그곳에 보화를 쌓아 놓기를 즐겨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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