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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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도행전 2장 14절-17절

제    목 : 베드로의 시작


   각국의 방언으로 말함을 서로 확인하면서도 유대인들은 120문도를 술 취한 자로 매도했습니다. 물론 고의로 그들이 그런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아마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현상을 보고서 당황하여 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도들 중 대표로 한 사람이 일어나 해명했는데 그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이 기회를 통해 단순한 해명이나 반론의 차원이 아니라 요엘에서와 시편을 해석함으로써 최초의 기독교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이 메시지 선포를 통해 그 유명한 삼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룹니다. 본문은 이 메시지 선포의 초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 세례를 통해 변화된 것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나머지 열한 제자와 일백이십 명의 성도 전부입니다. 베드로는 그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그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사명을 자각함

   먼저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통해 변화된 모습은 사명의 자각입니다. 그는 예수의 수제자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 모든 제자들을 수습하여 다음 일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 사명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선동적으로 다른 제자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고 말함으로써 세상으로 흘러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 잃어버린 사명감을 되찾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그는 다른 제자들을 대표하여 일어섭니다. 예수께서 함께 계실 때도 그는 늘 제자들의 대표자 노릇을 했지만 이 경우는 맛디아 선택에 이어 그의 사명감의 완전한 회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마 여타의 제자들은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신앙심이 매우 고무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 수치의 극복

   두 번째로 베드로가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수치의 극복입니다. 과거의 치명적인 수치를 간직한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거룩하게 변화되고 확고한 진리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진리를 외친다는 것은 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교훈이 되기도 하고, 또 진리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수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수치가 복음 전파라는 막중한 사명을 누르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그에게 강력하게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예수를 부인하고 사명을 버리고 떠났던 그의 과거의 수치를 극복케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귀중한 사명 의식이 약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명이 너무도 보배롭고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뻔뻔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자신을 용납하고 보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3.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

   과거 베드로는 예수께서 함께 계셨음에도 자주 두려움에 휩싸이던 사람이었습니다(참조, 마 14:29, 30; 26:69-74).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는 이러한 두려움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50일 밖에 안 되었는데, 핍박자의 소굴이라 할 수 있는 성전에서 복음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그의 이러한 용기 있는 모습은 변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그의 이후의 행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참조, 행 4:7, 8; 5:29-32). 이와 같이 그가 뚜렷이 변화된 것은 바로 성령 세례를 받고 난 이후라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4. 정확한 통찰력의 회복

   과거 베드로는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한, 매우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그는 이러한 뛰어난 통찰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① 상황에 대한 통찰력입니다. 그는 '때가 삼시'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절기 중에는 제 삼시(오전 9시)까지는 무엇이든 먹는 것을 금기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 술에 취하였다'는 군중들의 조롱은 이 한마디로 답변이 된 것입니다. ② 성경에 대한 통찰력입니다. 그는 이어서 요엘서를 인용하여 자기를 비롯한 성도들의 성령 세례를 해석한 것입니다. 즉 이것은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언자를 통해 준비되고 예언된 말씀의 성취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주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성경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기 원한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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