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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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

본문: 마5: 3- 1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6절)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는 듯한 목마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과 갈증은 이렇게 강렬합니다.

인간은 주릴 때에 음식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목이 마를 때에 물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겸하면 얼마나 갈급하겠습니까?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인간 심령의 가장 강렬한 욕망을 표시합니다. 인간에게는 물론 여러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지식, 물질, 사랑, 권세, 명예 등이 있습니다. 이런 욕망 외에 인간에게는 의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옳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옳은 일을 하면 좋겠다 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욕망이 어느 정도는 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도 젊어서 사형을 허락하는 첫 번 싸인을 할 때에 『내가 차라리 글씨 쓰는 것을 안 배웠더라면..』 하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의(義)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우리에게 강렬한가가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과 지식과 명예와 이성은 추구할지언정 가장 중요한 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와 싸워 이겨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나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압니다. 목마름의 고통도 압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먹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 보다 가장 힘이 드는 것입니다. 서러움 중에 배고픈 서러움보다 더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배고프면 어떤 체면도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라는 것은 전심전력하라는 것입니다. 열성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42:1)함과 같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은 배고픈 것을 모릅니다. 젊은이는 먹고 나면 곧 배고픕니다. 이는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배고픕니다. 마시고 나면 곧 목마릅니다. 이것이 젊음이요 건강하다는 표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다 욕구불만에 빠져 있습니다. 욕심이 한이 없습니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대단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돈도 명예도 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욕망에 한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다 불만투성입니다. 남 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자기주장이 앞서야 합니다.

지금 세상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나중에 허탈해 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찌꺼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세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TV 광고를 보는데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모 카드사의 광고 멘트가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그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소망의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행복을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돈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 앞에서 과시욕을 부리며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한 구절로 경고하고자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절∼5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혹 외모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10년이면 시들어버릴 외모보다 더 값진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아름답고도 겸허한 마음입니다.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3)며 천국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외모에 들이는 공의 반만이라도 마음을 살피고, 그릇되고 악하고 음란한 생각들을 버린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학벌이 없어 불행하십니까? 배운 사람들이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무시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이 매우 중요시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해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밤잠 못 자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참말로 교육문제로 이민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들어간 대학인데 자랑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학위를 땄겠습니까마는 그것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도구로 쓰여진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노력하고 돈을 들여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세상 지식과 학벌은 잠깐이고 모두가 허무하고 헛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자랑하면 넘어지고 패망하게 됩니다.

위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열거한 돈이나 아름다운 외모나 학벌 위주의 지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목적으로 쓰여진다면 그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결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행복에 눈먼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마5:6),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보다는 『마음이 청결하게 되라』(마 5:8)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열심히 쌓아놓고 만들어놓지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따라서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그 교회에 계신 미국인 선교사가 장작을 한 차 사들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에게 장작을 쌓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청년은 교회의 한 귀퉁이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놓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오시더니 『이곳은 비를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쪽으로 옮겨 쌓았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불평할 법도한데 선교사님이 시키는 대로 말없이 장작을 옮겨 쌓았습니다. 그 해 눈이 많이 내린 크리스마스 날 선교사님은 청년에게 선물을 한 가지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미 이 청년의 유학길을 마련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청년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눈 여겨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살면 재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되 곳간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 공평한 길로 행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다음은 어느 무명 성도의 선행을 위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과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그것을 미루거나 핑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는 제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우리가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선한 길을 걸어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과 정직 안에 모든 선한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행동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여 얻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20- 21)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들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해갈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목마름에는 물이, 배고픔에는 음식이 최고입니다. 목마름이 있는 자에겐 물을, 배고픈 자에겐 음식을 줘야합니다. 원하는 것들을 채워주고 채움을 받을 때 그것이 행복이요 만족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원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원하는 것도 다양하고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물입니다. 물도 같은 물이 아닙니다. 생수(生水)가 있고 건수(乾水)가 있습니다. 생수는 깊은 암반에서 솟구쳐 터져 나오는 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건수는 땅속에 스미어있었던 것이 잠시 나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즉 지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냥 흘러나오는 물입니다. 건수는 사람의 수고가 없이도 구할 수 있는 물입니다. 이 물은 공급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수는 암반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물이기에 그 물을 얻는 데는 수고와 노력이 수반 되어야 한다.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은 쉽게 쉽게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빨리빨리, 여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할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수고를 드리고 땀 흘려 파놓은 암반에서 솟구치는 물은 가뭄에도 메마르지 않습니다. 퍼 올리면 올릴수록 더 맑고 시원한 물이 계속하여 올라옵니다. 쉽고 편한 잠깐의 물을 원하는가? 아니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원하는가? 생수를 얻으려면 나의 수고와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고 줄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건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 우리는 너무 편하고 쉬운 것만을 원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암반의 수로를 찾는데 수고를 아끼지 말자 그 수고는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법칙과 우주의 법칙은 여전히 오늘도 진리입니다. 줄 수 있는 자가 행복한자입니다. 줄 수 있으려면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줄 것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땅에 목마른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늘 갈증 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생수가 되어주고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 그들도 우리처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44:3)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선교사들을 다 내쫓고 성경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기독교를 장사 지냈다고 선언했지만, 성령까지 그 땅에서 내쫓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중국 땅에 지하 교회를 남겨 두셨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보면 1982년 둥이라는 한 자매가 여자 죄수들만 600여 명 갇힌 감옥을 천국처럼 변화시킨 간증이 나옵니다. 감옥에서 새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성경을 원하자 성경을 몰래 갖고 있는 자매들은 낮에 무려 10시간이나 힘들게 노동한 후에도 밤에 다른 죄수들이 다 잠든 틈을 타 이불 속에서 전등 빛을 비춰 필사적으로 성경을 노트에 베끼고 또 베껴서 다른 사람에게 줬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베낀 성경이 한 권 한 권씩 각 호실로 전해지면 서 자매들은 목마른 사슴처럼 밤에 이불 속에서나 화장실에 가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해 감옥은 성령의 역사로 점차 놀랍게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진리)과 기도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배부른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에 굶주린 자들을 찾으십니다. 기도에 목마른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런 자들에게 은혜를 부으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입니다.

팔복의 말씀 중 네 번째 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입니다. 의에 목마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 = 말씀 = 진리 = 하나님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지식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권력에 목마릅니다.

그런데 의에 목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영혼이기에 재물에 주리지 않고, 명예에 주리지 않고, 자리에 주리지 않고 ......

 

성도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목말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를 찾으십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어떤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으로 이생을 지나가고 있습니까?

길을 막고 물어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의 눈빛을 보고, 그의 웃음을 보고, 그의 걸음걸이를 보고, 눈이 멀어 그 사나이와 같이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길을 나서버린 베드로와 안드레의 무너져 내렸던 그 영혼들처럼 아, 그렇게 복된 성도로 이 광야를 지나고 싶습니다.

 

찬송가 526장 (통 316장) 『목마른 자들아』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2. 이 샘에 나는 물 강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이 분별이 없이 다 와서 쉬고 또 마시겠네

3. 신기한 샘물을 마신자마다 목 다시 갈하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하리

4. 이 샘의 이름은 생명의 샘물 저 수정빛 같이 늘 맑도다 어린양 보좌가 근원이 되어 생명수 샘이 늘 그치쟎네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복음성가)

1.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 하소서

의의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우소서

2. 성령으로 채우사 주 보게 하소서

주의 임재속에 은혜 알게 하소서

주 뜻대로 살아가리 세상 끝날까지

나를 빚으시고 새날 열어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우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오늘 성경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義)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의(義)입니다. 예수님이 곧 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입니다. 의를 목숨 걸고 사랑하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의 일에는 늘 뒤로 미루어 버립니다. '다음에 하지' 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의를 갈망하고 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의를 행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는 못했으나 세울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중에 혹 마음에 "나는 아직도 죄를 계속하여 짓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꼭 끊기를 원합니다. 오 주여! 이 죄를 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아직도 나쁜 성질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꼭 고치고 싶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오 주여!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불의가 많습니까? 그러나 좀 더 옳은 사회, 좀 더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내 정성을 다 하려고 합니다.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며, 기도하며, 힘쓰는 이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속에 새 생명이 이미 싹트고 움직이고 자라는 중인 까닭입니다.

내가 할 일이 과연 하나님 앞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가? 인간이 의롭게 살려고 하여도 의롭게 살아지지 않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데 옳게 살려고 하는 믿음과 의지조차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때론 의롭게 사는 일에 실패하고 좌절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비추어보며 의를 향한 불의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신12:28)

 

2.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돈에 대하여 혈안이 되어 뛰어다니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이성)에 대하여 갈급하는 이도 많습니다. 하루에도 수백만의 사람이 서울 거리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의(義)에 대해서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야곱은 팥죽 한 그릇보다 장자의 명분이 더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문에 가정을 떠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루터는 의를 갈급하다가 결국은 종교개혁의 선봉자가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생명보다 믿음이 더 중요한 것을 알고 생명을 버렸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의로운 길,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의로운 길을 따라 살겠다는 자기 포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의를 따라 살며 손해보는 삶이 때로는 어리석은 것 같아도 그것이 참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매사에 먼저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의 갑절이나 풍성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의의 결과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32:17)

3. 의를 인하여 구원을 얻고(잠11:6), 장차 의를 따라 상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세상에서 불의와 거짓이 승리하는 것 같아도 길게 놓고 보면 궁극적으로 의와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힘이 의가 아니고 의가 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돌아가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불의를 심판하고 의를 이루며 돌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를 믿고 오늘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위한 고난을 기쁨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잠11:6)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삼하22:21, 시18:20)

 

4. 의를 행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창18:19), 의를 굳게 지키는 자가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이 세상 것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안약을 사서 발라라 한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라 한 것입니다. 이 세상 것으로 너무 많이 채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세상 일 때문에 밤잠을 자지 않습니다. 땀을 흘립니다. 머리가 돌 정도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러지 못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의를 위해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삽니다. 하나님에 대해 해바라기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하나님을 피해 다니려고 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 방법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까. 어림없지요.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의가 무엇입니까. 의란 『디카이오수네』라 합니다. 이 말은 『의』 『옳음』 『올바름』『정의』 『선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말씀을 지키는 일이라는 뜻이고, 옳은 것, 옳은 사람, 올바른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양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그릇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은 누구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정의롭지 않습니다. 아무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다 흠이 있습니다. 다 결격사유가 많습니다. 사람은 비뚤어져 있습니다. 그릇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변합니다. 우리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가치가 없고, 만물 보다 거짓됩니다. 날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장 거룩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회칠한 무덤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아야 합니다. 송이 꿀보다 더 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보다 더 많이 하나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목마른 것처럼 사모해야 합니다. 배고픈 것처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얼마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까.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의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 세상은 빗나가고 있습니다. 사슴이 포수에게 쫓깁니다. 이 산 저 산으로 도망갑니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힘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기진맥진합니다. 더 이상 갈 힘이 없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숨을 몰아쉽니다. 이젠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처럼 갈급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의를 사모하기를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다 욕망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이 많습니다. 사랑에 대한 욕망도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욕망도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욕망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말을 잘 아시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의에 대해서도 욕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늘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이 시대의 증인입니다. 빛입니다. 소금입니다. 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잠11:19)

 

5.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잠15:9)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5)

 

6.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정말 배고픈 허기진 시대입니다. 목마른 시대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다 그렇습니다.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다 그렇습니다. 돈을 모아도 별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숫자가 늘어납니까. 다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다 늙은이가 아닙니다. 젊고 건강하고 잘 난 사람이 자살합니다.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가난해도 부자처럼 삽니다. 부자이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부르다는 것은 만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불만이 목에까지 차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도 욕합니다. 장관도 욕합니다. 학생은 선생님을 욕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큰 일 날 것입니다. 살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창고이십니다. 축복의 근원입니다. 배부르게 하시는 주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만나를 하루도 그치지 않으시고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구도 굶어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도 목말라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늘 가난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배부르게 한다는 말씀에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은 늘 정직합니다. 늘 진실합니다. 말씀이 떠나지 않습니다. 항상 즐겁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늘 사랑이 넘칩니다. 허기진 인생에게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름처럼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변방만 두드리면 안 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급선무입니다. 가장 급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엎드리십시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늘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하고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늘 그렇게 살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진리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 의로우신 하나님, 주님께서 구하시는 의를 우리도 구하게 하시고 의를 따라 사는 길이 때로 힘들고 손해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의를 추구함으로 영적인 배부름을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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