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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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보자
(요 12: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1)


 어떤 사람이 비범한 일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고 싶어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파리와 비엔나, 런던에 갔을 때 가는 곳마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서울에 왔을 때도 서울 시내에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었습니다. 하다못해 복싱 선수인 알리를 보려고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도 그의 모습과 메세지가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모여 들었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비범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는 얼마나 보고 싶어 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을 많이 행하였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셨고 문둥이를 깨끗케 고쳐 주었습니다. 죽은 자의 생명을 되돌아 오게 하여 다시 살게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명성이 자자해지자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수천 수만의 군중이 예수님을 보려고 떼를 지어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명절에 어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가까이 가서 뵙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말씀을 들어 보고 또 예수님과 사귀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제자들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뵙고 말씀을 듣는 중에 큰 확신과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도 '우리가 아버지(하나님)를 보았으면 족하겠나이다'하고 요청했던 일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뵙고자 하나이다'하고 요청해 봅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뵈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는 유대땅 언덕을 거니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산 언덕에서 산상보훈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무덤에서 나와 영광 중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뵈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해야겠습니다.


 1. 왜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자 합니까?

 첫째로, 예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보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대통령이나 군대의 대장이 우리 앞에 온다해도 우리는 달려가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위인들이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면 다 보잘 것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위인들이라도 그리스도와 비교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관한 모든 것은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재(先在)하신 분이라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살아 계시던 분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의 생애도 위대했습니다. 그는 두루 다니시면서 온갖 이적과 착한 일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도 위대했습니다. 그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받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또 위대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만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위대한 성품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뵙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아들도 아니요, 왕의 아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떠나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의 어린 딸이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엄마, 아버지가 저 사진틀에서 뛰어내려 왔으면 좋겠어'하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인간 세계로 뛰어내려 오셨습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인간 세계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수천년 동안 인간들은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보고자 합니다. 소경이 의사한테 고침을 받고 눈을 뜨게 됐다고 하면 그는 제일 먼저 자기를 고쳐 준 의사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죽을 죄수를 어떤 정치가가 자유롭게 석방했다면 그 죄인은 제일 먼저 자기을 자유롭게 해 준 그 정치가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셨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도 우리를 생각하시고, 매를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생각하셨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이시므로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많은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교회나 성직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2.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까?

 첫째로, 성격을 읽음으로써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서 전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창 3:15에 벌써 예수님께서 사단의 머리를 상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신약성서도 페이지마다 예수님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른 길을 찾고자 하는 이는 누구라도 이 성경을 열심히 읽음으로써 예수님을 뵈옵고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로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무릎 끓고 기도함으로써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 생각에서 지워버릴 때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눈을 감고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기도드릴 때 영의 눈으로 천국의 영광으로 가득찬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보면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높고 높은 빌딩도 꼭 성냥갑을 포개 놓은 것 같습니다. 큰 자동차도 마치 콩알이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조금 올라가 보아도 이렇게 보이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얼마나 멀고 높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을 갖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즉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볼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이 나이 많으신 목사님을 뵙고 말하기를 '나는 그의 빛나는 얼굴에서 선하신 주님을 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이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을 보려고 하지 않고 먼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행동과 태도에서 예수님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모든 태도를 조심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인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겠습니까? 누구나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은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려고 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러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나는 집에서 마음으로 믿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만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설교와 찬송과 기도와 생활 전체가 예수로 충만할 때 예수님을 만나 뵐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을 뵈옵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구세주로 모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그들의 죄가 씻음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황막한 세상을 홀로 걷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게 됩니다. 죽음의 길로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떠한 고민과 근심, 아무리 무서운 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바라보는 사람은 다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놀라운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생활 전반을 지배하시는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전체에서 예수님이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일, 어떤 사람보다 앞세우고 높이 세워야 할 분입니다.

 셋째로, 위로자로 모셔야 합니다. 사 66:13에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이라고 말씀 했습니다.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어린 말씀입니까? 어머니가 우는 어린 아이를 두 팔로 안고 위로하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십니다. 어떤 슬픔과 근심이라도 예수님께로 가져가면 다 위로해 주십니다. 이 지구상에는 예수님께서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는 없습니다.

 넷째로, 우리를 돕는 자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매일매일 우리를 돕고 계시며 죽을 때까지도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돈이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는 아무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까지도 함께 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무슨 문제라도 예수님께 가져가면 도와 주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은행원인 교인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비서가 나와 안내를 하는데 문에 흰 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더니 그것을 보이며, 흰 카드가 걸려 있는 동안은 아무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랍니다. 한 30분쯤 기다리다가 흰 카드가 내려져서 들어 갔더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흰 카드가 문에 달려 있을 때는 누가 와도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비서가 알고 못들어 오게 하신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흰 카드가 달려 있는 동안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했습니다'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할 수 없는 시험이나 문제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 예수님 앞으로 가져 가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섯째로, 최후의 심판자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장차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모릅니다. 그가 머지않아 다시 오실 것을 안다면 세상 일은 좀 뒤로 하고라도 하나님을 꽉 붙잡고 하나님의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크리스챤을 심판대 앞에 모으고 그 행한 일에 대하여 심판하여 그 행한 공적에 따라 상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던 이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심판주로 보고 잘 믿어야 하겠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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