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어버이주일설교 3편[곽선희 목사]모음

어버이주일설교 3편[곽선희 목사]모음

-------------①------------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에베소서 6:1-4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Ninety-three"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 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부대 하나가 이동하면서 군인들이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기아에 지친 아주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상사
한사람이 빵 한 덩이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 한 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크게 기뻐하며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상 사랑은 차원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을 헬라 사람들은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화끈한 사랑,
이것을 '에로스'라고 합니다.
남녀간에 사랑, 애정이라고 하는
사랑을 이렇게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에로틱' 할 때는,
'에로티시즘' 전부 그런 뜻을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스토르게' 라고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입니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이 부모의 사랑은
철저한 끈질긴 피로 연결된 그러한 사랑입니다. 이걸 스토르게라고
그러고요 그리고 친구간에 사랑, 이 수평적인 사랑, 심지어는 나라를
사랑하든 형제를 사랑하든 친구를 사랑하든 '필아델피아' 혹은,
필아델포스 이렇게 '필'자를 붙여서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친(親) 이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것이 인간입니다. 한평생 우리는 사랑 속에
살 뿐더러 사랑을 배우며 삽니다. 사랑 공부하며 삽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배웠느냐
몇 학년이나 되었느냐 얼마까지 배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간 됨이란 사랑 이해의 수준에 있는 겁니다.
아직도 에로스적인 데 매여 있습니까? 아니, 필로스든지 그런데 매여
그 정도입니까? 아니면 끈질기게 스토르게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건 그 정도입니다. 사랑 이해가 높아져서 아가페를 이해해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아가페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될 때,
그게 바로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에 응답해야 됩니다. 자, 이제 보세요.
한 남자의 사랑에 응답해서 여자가 응답하고 결혼을 합니다.
자, 부모님의 사랑에 응답해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친구의 사랑에 진실하게 응답해서 친구가 되고,
신의를 지키는 인간관계가 됩니다. 또 인격이 되어갑니다.
자 이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에 응답해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응답하는 것은 곧 베푸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을 또 실천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서 남편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사랑 속에서 친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카도스 헤가페사 휴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랑이 아가페다.
"아가파테알렐루스" 아가페의 사랑을 하라. 베풀어라.
여러분, 여러분 생에 '이것은 아가페였다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을 한 것이다' 몇 번이나 있습니까?
몇 번이나 그런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저는 북한에 갈 때마다 좀 듣기 거북한 인사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만찬을 할 때에 꼭 서서 정식으로 아주 엄숙하게 연설을 하듯이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꾸 바뀌니까 그들이 나에 대한 관계를
다시 수립을 해야 됩니다. "동무,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원에
의해서 총살되었는데 그 때 동무가 옆에 있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하여 오셨으니 조국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럽니다. 가끔 묻습니다. "목사 동무는 분명히
우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왜 이 북조선을
그렇게 도우려고 애를 쓰느냐?" 그럴 때마다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당신들과 다른 것이요. 우리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여기에 이유 없습니다. 당신들의 아무 대가성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 사랑의 수준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정말 아가페적 사랑을 해 본 일이 있습니까?
거기서 내 인간의 인간됨의 수준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높은 사랑, 하도 귀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러나 사랑 받고 미워하고 특별히 고상한 사랑을 받고 배신한다면
죽어 마땅한 것이죠. 아주 어렸을 때
제 어머니가 제게 일러준 이야기입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정성을 다해서
그 힘든 일을 해가면서 돈을 벌어서 이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답니다.
이 아들이 보고싶어 못 견디겠어요. 편지도 쓸 줄 모르고 요새처럼
전화도 안됩니다. 그저 아들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을 보러
서울로 왔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문에 서서 하루종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기 애인하고 같이 손을 잡고 나오고 있더랍니다.
반가워서 "얘 아무개야!"하였더니 그 애인이 남자에게 묻기를
"저 여자 누구야?" 이 남자, 이 아들 하는 말이 "어, 그 우리 집에
오래 전에 있던 식모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만요. "사랑을 배신하지 마라."
사랑에 대한 배신은 죽어 마땅한 거예요. 그 아들이 살아서 뭘 하겠어요.
성경은 이런 죄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한 200년 전에 중국에 선교를 할 때, 아시는 대로 중국은 그 당시 유교,
유교 문화에 꽉 젖어 가지고 있는데 이제 기독교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는데 그게 마음이 열리기가 어렵죠. 그럴 때에 그 때에 만들어진
전도지를 보니까 그 전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어느 종교보다도 가장 높은 효도의 종교입니다"
그랬어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1장17절을 인용합니다.
부모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출애굽기 21장15절,
레위기 20장9절에는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무조건 쳐죽여라.
신명기 21장 18절로 21절에 보면 패역한 자식,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고
징계도 듣지 않는 자가 있거든 공회에 끌고 가서 증거를 내고 끌어내서
돌로 쳐죽여라 그랬어요. 패역한 자식은 죽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라.
이 무서운 성경구절을 전도지에 써 놓았어요.
그리고 다시 긍정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아버지가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그 때에 나이, 이삭이 스물 일곱살이에요.
아버지 나이 127세. "너를 재물로 바치란다" 할 때에
"100세가 넘더니 노망했구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죠.
그러나 이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공경하고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한 것이요.
이것이 기독교다 그것이에요.
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철저한 효도의 종교다 이렇게 전도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문이 열린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티마라고 하는 말은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요새는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자식들이 많아요. 안되었다 싶다나요.
이런 망언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하나의 친하는 친분정도의 그런 사랑을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라.
높이 섬기라 이거예요. 이것은 존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국교회에서도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이 어머니 주일을 지킬 때에 늘 학생,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요한 Illustration이 있습니다.
중요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미국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것은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기 때문이죠.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아는 조지 워싱턴, 1대 대통령 워싱턴이 어렸을 때 그의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마침내 선장이 되고 바다를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바다의 사람이 되겠다 생각을 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짐을 다 꾸려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줄줄 우는 겁니다.
워싱턴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 다시 짐을 풀어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에 유명한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서 선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나보다 지혜로우니까.
나보다 어머니에겐 경륜이 있으니까. 어머니의 명예를 높이고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어요.
그를 높이고 높여 순종한 것이에요.
그리고 공경이란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런가 하면 공경이란
대가성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질투 없는 사랑은 오로지 효(孝) 하나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올시다.
또한 이 사랑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에 응답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의 기도,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많더라도 아니요,
그의 소원을 우선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선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의로운 것입니다. 때로 부모님이 "공부하라 공부하라"
입버릇처럼 하지만은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제 때에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늘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고로 너는 공부하라' 이것입니다.
그래,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었습니다.
그 속에 소원이 있단 말입니다.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또한 부모님의 소원 중에 가장 큰 것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병들지 마세요. 병들면 불효자입니다.
건강을 잘 지켜서 건강해야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앓아 누워있는 자녀는 불효자입니다. 그것도 내 잘못으로 인하여
내가 병들었다면,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한숨쉬는 것 아니에요.
죽기 전에는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 앞에 탄식하고 괴로워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마음에 기쁨을 드려야겠으니까요. 그의 소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죠.
효는 가정 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할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아버지가 나이 많은 어머니를
내다 버리려고 지게에다 태우고 지게 지고 산으로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갔어요 꼬마 아이를. 깊은 산에다가 놓고
음식을 좀 내려놓고 요거 다 잡수시고 돌아가세요.
아 그리고 지게를 놓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 그 지게 가지고 가지." 지게를 거기 놔두고 가려고 했더니
"지게를 가지고 갑시다" 그래요. "왜냐?" 그러니까 "아버지 늙은
다음에 또 지어다 놔야지. "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쿠 안되겠다'
생각하고 그 어머니를 다시 업고 돌아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요새는 아이들이 효도를 하려해도 효도하는 방법을 몰라요.
효도하는 것을 못 보았거든. 언제 효도를 보았나?
못 본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못 배운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자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세요.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잊어버려요.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거예요.
오늘 성경말씀에는 장수하게 되고 형통하리라.
이건 통계학적 진리예요.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살아요.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혜로 가정으로 세계적으로 형통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 데에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경, 그것이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어요.
공경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 공경과 순종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영영 구제 불능이에요. 마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문답에서
부모란 네가지를 말합니다. 낳아준 부모,
나를 가르쳐준 선생부모, 나를 지켜주시는 왕부모,
그리고 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란 스토르게만이 아니에요. 이런 네가지 부모 속에 있어요.
부모에게 순종하라 순종의 덕을 익히고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건강하며 형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를 항상 새롭게 일깨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순종의 덕을 몸에 익히면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가정들이
효의 가정이 되고 주의 약속된 복을 다같이 받고 또 이어가는
거룩한 가정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②------------

▶ 한 아버지의 통곡 ◀

사무엘하 18:28-33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 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 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 이다
29
왕이 가로되 소년 압 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 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 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 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30
왕 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 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 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 나이다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 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 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우리 나라에 젊은 가수 신 해철이라고 하는 가수가 있는 데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 중 에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제 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의 노래가 반주가 너 무 크고 박자가 빨라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됩니다마는
이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노래 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 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 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의 어느 곳에도 이제
더 이상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 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 내와 다 커버려 집을 나간 자 식들....."
그런 노래입니다.

지난 4월 23일 날자, 우리 나라 신문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U. S. Today"라고 하는 미국 신문에
난 것을 보고 가 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금년 정월로부터 3월까지 한 국에서 2,248명이 자살했습니 다.
2,248명의 아버지가 죽었 습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세운 아버지 상이 어떻습니 까?
이 아버지에 대한 이미 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변 한다고 합니다.
네 살 때는 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힘 도 참 되게 세다.'
생각을 합 니다. 열 두 살이 되면은
'아 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 열 네 살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모두 구식이다.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고, 스물 한 살이 되면 '아버지는 영 골동 품이다.'
스물 다섯살이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제법 아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생 각을 합니다. 서른 살이 되 면은 내가 결정할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싶다.' 오십 세가 되면
'역시 아버지는 훌륭했다.'
육십이 넘으면 '나는 아버지만 못하 다.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하 고
모든 것을 아는 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 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운 아버지 상만큼
여러분의 존재는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격하시키면 내 자신 이 또 격하됩니다.
아버지를 높은 분으로 높이는 순간 내 존재의 위치도 높아진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버 지 이미지라는 것은 요새 와 서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습니 다.
그러나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사실입니다.
아버지 이미지에서 우리는 공의와 선 과 질서를 배웁니다.
우리는 어머니 이미지에서 사랑을 배 우고, 은혜를 배우고,
자비를 배웁니다.
이렇게 배워서 한 평생 그 배운 바대로 살아가 는 것이올시다.
여기서 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하나님 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 버지라는 단어를 하나님을 설 명하는 계시적 용어로 사용합 니다.
그렇기 까닭에 우리가 가진 Father Image 아버지 이미지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아버 지가 엄했답니다.
너무 엄해 서 그저 재깍하면 때리고 호령하고
폭군적인 아버지였다 고 기록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나와도
그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거예 요.
그래서 루터의 신학을 연구할 때는 'Wrath of God',
하나님의 진노 개념을 빼고는 루터를 연구할 수가 없습니 다.
하나님은 아주 무서운 하나님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그가 지닌 아버지 인상에서부터 그 러한 철학, 그러한 신학,
그러 한 신앙구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 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서는 탕자의 아버지로
하나님 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 님은 이러한 분이다. 탕자의 아버지를 보라.
이 탕자 비 유에서 나는 늘 생각을 합니 다마는
그 아버지 참 훌륭한 아버지요.
좋은 아버지입니 다. 보세요.
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내 놓으라는 겁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왜 돈을 주어서 집을 나가게 했나?
안 주면 못나갈 것 아 니요.
뻔한 일인데 왜 유산 까지 나누어주었던가요?
그 아들이 그 돈 내 놓으라고 얼 마나 못 되게 놀았겠습니까?
성경에 없지만 알만해요. 그 렇지 않아요? 얼마나 못 되 게 놀았으면
"그래그래. 나 죽은 다음에 줄려고 했지만 까짓 거 지금 가지나
그때 가 지나 마찬가지다. 가지고 나 가봐라."
아버지 세상 떠나 기 전에 유산을 잘라서 줍니 다.
그리고 내 보냅니다.
천 하에 못된 자식에게 왜 재산 을 주어서 내 보냈는가 말이 요.
아버지의 마음은 이러했 을 겁니다. '이 돈 다 없애도 좋다.
뭐 돈이 대수로운 거 냐? 제발 다 없애도 좋으니 깐 착한 아들이 되어
돌아와 서 아버지라고 불러다오.' 이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집 을 내 보냅니다. 나가서 무 얼 했는지 뻔히 알잖아요.
어떻게 될 거 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아버지는 그 아 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대로 기다립니다.
꼭 돌아올 줄로 믿고 기다립 니다.
살아올 줄로 믿고 기 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세 요.
아들은 아버지를 못 알 아볼 때 오히려 아버지가 아 들을 알아봅니다.
상거가 멀 때 알아보고 나가서 끌어안는 아버지를 보세요.
이것이 아 버지요.
이 못된 자식을 무 엇이라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 까?
또 그를 영접합니다.
잔치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내 아들이 살아왔 다.
잃었다 얻었다 죽었다 살았노라
그리고 잔치를 베푸 는 그 기뻐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 역시 탕자의 아버지이 기에 탕자임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의 탕자입니다.
구약으로 올라가보면 다윗 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로 대표적인 분으로 오 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여러 분 맥락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윗은 본래 목동이였습니다 마는
사울 왕에게 발탁되어서 충성된 장군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울 왕을 위해
서 충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서
그는 쫓겨나야 했고 광야 를 헤메고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서 유대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와 서는 또 아들이 아버지를 배 반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성경맥락을 연구해 보면은요 압살롬은 셋째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형 둘이 죽었습 니다. 실질상 지금 첫째아들 입니다.
맏아들이요. 그 인 물도 잘났답니다. 출중해서,
머릿결이 좋아서 아주 축 늘 어졌는데 모두가 칭찬하고,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었답니 다. 온 백성이 추앙하는 그 런 아들이었어요.
인기가 있 는 아들이요. 가만히 기다리 면 아버지 죽으면서 왕이 될 텐데
무엇이 바쁘고 초조해서 아버지를 배반하는 겁니까? 악당들과 작당을 해서
이 아 버지를 죽이겠다고---. 아버 지는 그대로 왕의 보좌를 내 놓고
광야로 피난길을 떠납니 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방황 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대열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 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 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 하냐?
내 아들 압살롬이 무 사하냐? 불효는 고사하고
이 런 패륜아들이 어디 있습니 까?
세상 어느 역사에 이런 아들이 있단 말입니까?
용서 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 지만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 어요.
모든 사람이 다 대적 으로 생각했고, 원수로 생각 했지마는
아버지는 여전히 저 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
그가 죽 었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머 리채가 나뭇가지에 달려서
매 달려 있는 것을 장군이 찔러 서 죽였습니다. 통쾌하게 죽 었습니다마는
이 죽었다는 말 을 아버지에게 못합니다. 이 거 얘기했다가는 자기도
살아 남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 만큼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침내 구스사람이 기어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는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 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 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 을...
"하면서 계속 통곡을 하 는 아버지의 통곡을 볼 수 있 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하에 죽일 놈이요. 못 된 사람이요.
패륜아라고 했 겠지만, 원수라고 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했습 니다.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왜 그는 피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까? 왕의 보좌를 내놓고
피난을 가는 이유가 뭡니 까?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에 신앙적으로 이 사건을 받 아들인 겁니다.
왜냐하면 그 가 밧세바라는 여자에게 취해 서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일 이 있거든요. 자기 밑에 있 는 충성된 장군을
그 아내를 뺏기 위하여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나단선지자가 책망하 시면서
"너의 집에 칼이 떠나 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 월이 흘렀습니다.
형제들간 에 다투면서 죽이는 일이 있 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 고요.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
그가 피 난의 길을 나설 때에 시므이 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저 주합니다.
옆에 있던 장군이 그대로 칼을 들어서 목을 내 려치려고 합니다.
"아서라. 그러지 말라. 하나님이 저를 저주하라. 하기 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앞에 서 받는 채찍이요.
심판이니 까 나무라지 말라."고 그리고 훌쩍 떠나서 정처 없는
피난 의 길을 광야로 들어갑니다. 이대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 리고 그 하는 말 좀 보세요.
"자, 일어나 도망가자."
그래 도망갑니다. 다윗편에 장군 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압살 롬과
그 일당을 전멸할 수 있 습니다마는 그리하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 보좌를 놓고 그는 도망갑니다.
왜요? 중 요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 다.
이 아들에 이와 같은
패 륜이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았 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 니라, 내 죄 때문에 저 아들 이 이러한
아들이 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 려 아들이 어렸을 때
잘못된 것을 보았고, 내가 좋지 못한 본을 보여 주어서 그 결과로
이 같은 일이 있다고 믿고
있 기 때문에 그는 아들을 나무 라지 않았어요.
'너도 피해자 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집을 나서게 된 겁니다.
어떤 집의 아들 아이가 속 을 어지간히 썩여요. 말썽도 많이 부리지만
공부도 안하고 집을 나가고 걸핏하면 가출이 에요. 그의 어머니는 속이
상해가지고 심지어 제게까지 찾아오면서 너무 답답해 가지 고
"또 가출했습니다. 또 말 썽입니다. 이 자식이 언제 사람될까요?
"
그저 괴로워하 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자
"이 젊었을 때 이 중요한 나이에
공부 안하고 저러고 다니면 어떻합니까?"
그러고 발발 떱니다마는 아버지는 태 연합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 다.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말없는 것이 속상하대 요.
"책임은 나 혼자 지는 거냐? 어째서 당신은 말이 없느냐?"
아버지는 여전히 말 이 없습니다.
"아들이 나갔 어요!"
그러면
"
그래? 그랬 구먼."
"돌아왔어요"

"오.. 그랬구먼."아무 말이 없어요.
왜? 그 아버지는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 속 을 어지간히 썩였거든요. 이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속을 썩인 것을 생각하기 때 문에 자식을 보면서
자기 모 습을 보는 거예요. 그런고로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것 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아버 지의 모습입니다.
자녀의 모 습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보 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참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쓰리고 괴롭지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말 없는 아버지라 고 나무라지 마세요.
저 속 은 더 썩고 있는 겁니다.
이 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래 서
"일어나 도망가자."
그랬 어요.
"일어나 도망가자."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이 있 습니다.
자, 아들을 죽여서 해결하겠습니까?
내가 죽어 서 해결하겠습니까? 다윗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 요.
저 아들을 죽이면 아들 을 죽인 아버지가 됩니다. 그냥 앉아 있다가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면 아들을,
아버 지 죽인 아들을 만드는 겁니 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피난 의 길을 떠납니다.
이런 전해지는 중요한 얘 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공자 선생님의 제자 증 자라고 있는데
그 증자는 효 자로써 소문이 난 분입니다.
어느 날 친구 한 사람이 공자 에게 증자에 대해서 말했습니 다.
"증자는 이렇게 효도하 는 분입니다."하고 효도한 한 사건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공자 선생님은 효도는 고사하 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런 불효자가 있나?"
그러더랍니 다. 무슨 사건이냐 하면, 증 자가 어떤 날 아버지와 같이
참외밭을 맸어요. 참외밭을 매다가 실수해서 참외의 뿌리 를,
참외의 넝쿨 뿌리를 끊어 버렸어요. 아버지가
"이 따 위로 하면 되느냐? 아니 김 맨다고 하다가 참외를 죽였잖 아."
그래 가지고 얼마나 나 무라는지 때리기 시작을 했습 니다.
증자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못했고 화가 나는 아 버지니까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십시오. 화가 풀릴 때까 지 때리십시오.'
하는 마음으 로 맞았습니다. 아 거기 몽둥 이가 있었어요.
몽둥이로 두 들겨 팼습니다. 결국은 기절 했습니다.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까 일이 이렇게 됐거든 요.
아버지가 화가 나 있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그는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 아버 지 화를 풀어 드려야지.
그 저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서 그래서 화가 풀어질 수 있다 면
얼마든지 때리십시오.'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히려 아프지 도 않고
마음도 괴롭지 않습 니다하는 뜻으로
거문고를 치 면서 노래를 불렀대요.
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효도 아니냐?"
해서 얘길 했 더니 공자 선생님은 아니라 고, 나쁜 놈이라고
"증자 자 네 이리 오라우."
불러 놓고 얘기를 합니다. 순 임금의 이 야기를 하는데
"봐라, 중국 역사에 나오는 순 임금은 효 자다.
그는 그 아버지가 못 되가지고 그저 발끈하면 화를 내고 발끈하면
때리는데 때릴 때마다 그저 자 고마운 마음 으로 맞았다.
그러나 때리다 가 아버지가 옆에 몽둥이가 있어서 몽둥이를 들면
그러면 재빨리 도망을 갔다. 왜 도망 간 줄 아느냐?
내가 이제 아 버지로부터
몽둥이로 맞아서 피가 나면, 상처가 나면
나를 때려 놓고 그 다음에 아버지 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뒤에 아버지가 얼마나 후회하 며 마음이 아플까?
그 생각 을 해서 도망갔느니라. 어느 쪽이 효자냐? 너는 불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때리는 사람 앞에서 '나 죽여라.'
하 면서 맞는 거 맞아 싸요. 왜 때리는 사람을 만들어?
왜 나 쁜 사람을 만드느냐 이 말이 에요. 생각해 보세요.
때릴 때는 재빨리 도망가서 착한 사람을 만들도록 힘써야지
부 모가 화났기로서니 화 풀릴 때까지 맞겠다고
대드는 요런 사람이 나쁜 거죠.
자, 생각해 보세요. 다윗 이 왜 떠났느냐구요?
내가 여기에 있다가 아들을 죽이겠 습니까?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여기서 내가 죽으면 천하에 용서할 수
없 는 죄를 아들로 짓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를 죽 인,
죽이는 아들을 만드는 거 예요.
내가 안 죽으면 못 죽 이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 는 피난의 길을 떠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들은 악 합니다마는 그러나 더 악한 아들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처 없이 어디 가서 죽더라 도
이 길을 떠나야 했다는 말 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 불효자 자식 을 만드는 것도 때로는 부모 라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 오늘 사무엘하 18장 5절 에 보면
이 전란속에서 계속 다윗은 말합니다.
"나를 위 하여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 하라."
이 불효자식, 이 패륜 자식을 놓고도
"나를 위해서 내 아들을 너그럽게 대하라"
고 그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아들 이 죽었을 때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는 기다린 겁니다.
이런 와 중에서 돌아오기를 믿고 있었 습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 었습니다.
참 아들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 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 음이었습니다.
1997년 8월 31일자에 중앙 일보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미화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인 데, 청소부란 말입니다.
어떤 날에 보니까 그 아들이 아주 높은,
고급 브랜드 청바지를 입었어요.
자기가 돈 준 일이 없는데... 그래서
"너 어디서 나서 이것을 옷을 입었느냐?"
호되게 나무라니까 사실대로 불었습니다.
"전철역에서 남 의 돈을 훔쳤습니다."
아버지 는
"그래,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기로서니 남의 돈을 훔쳐 서야 되느냐? 이놈아!"
붙들 고 울고
"그래선 안 된다."
이걸 끌고 파출소에 갔어요. 자수했습니다.
자술서를 쓰면 서 보니까 이게 처음이 아니 에요.
그전에 또 한 일이 또 있었어요.
이걸 아버지가 알 게 되어 너무 기가 막혔어요.
"그래, 내가 가난하고 어려워 서 옷을 못 사준 죄다.
그걸 입고 싶어서 했겠지만 어째 이럴 수가 있느냐?
이놈아 그래서야 되느냐?"
하면서 그 냥 죽어버렸어요.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재판정에서 얘기했습니다.
"이놈에게 중 죄를 내려주세요.
이놈은 나 쁜 놈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중죄를 내려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판정은 판사는
"무죄"
그랬습니다. 무죄선언을 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판사의 말 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처 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 절대로
잘못될 수 없음을 믿 고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 한 아버지가 있으면 그 자식 은 잘못될 수가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버지 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워 놓은 아버지의
위상만큼의 내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③------------

▶ 어버이의 즐거움 ◀

잠언 23:19-25

몇 해 전에 신문에 기고되었던 내 용입니다.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아홉살에 그는 열네시간을 기 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부인이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그는 문 밖에서 무려 열네시간을 기 다렸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려서
아 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리고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른일곱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 걸 액자를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 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을 입학한다고 입 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 는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 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된다하는 얘기입니다.
쉰세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 버지 내의를 하나 사왔을 때,
쓸데 없는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 만은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만져보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순한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 음을 짓고있는데, 나는 멀찍이 서서
나이 들었지만은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마음입니다. 그저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있 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귀한 것 입니다.
유명한 기독교인인 맥아더 장군, 그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제가 이 시간 에 다 소개하지는 않습니다만은

"A Father's Prayer"
by MacArthur 라 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첫마디가
"Build me a son"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 오."라고 말이 시작되고 긴 기도문 이 있고
맨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 다.
"그리하여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속삭이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아주 유 명한 이야기입니다. 난 늘 이게 기억 이 됩니다.
"그리하여 나로 '한 생 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게 해 주십시오."

보람과 의미가 바로 그 자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만이 어쩌면
남는 일이기 때문 에, 그가 세계를 위하여 위대한 일 을 많이 했지만은
그건 그렇고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 고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 입니다.
한국사람은 역시 한국사람이기에 한국적 효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 것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다분히 유교적 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 가 젖었으니깐 그 속에서 가지는 생 각입니다만은
소위 한국적 효가 무 엇인가 한번 정리해 보십시다.
한 국사람으로서 우리 문화 속에서 생 각하는 효도,

첫째가
부모님을 장수 하도록 모시는 겁니다.
이유야 어 쨌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자식에 게 있겠습니까만은
부모가 일찍 세 상을 떠나게 되면 그건 자식 탓이 요,
그래서 자식은 죄인이 됩니다. 내가 잘못 모셨고,
내가 속을 썩여 드렸고 내가 어쨌고…… 그래서 장 례식에
가 보면 제일 많이 우는 자 식이 불효자예요. 나 때문에 돌아
가셨다고 가슴을 치는 거예요. 그 래서 그 상복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 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오래 살도록
모셔야 효자지 어쨌든 일찍 돌아가셨다면은 자녀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됩니다.
그것이 바 로 한국사람의 효의 기본개념입니 다.
두번째는 편안하게 모시는 겁니 다.
그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또 거처하는 곳,
평안하게 특별 히 마음을, 마음을 평안하게 모셔야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 들이 이제 자식의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자식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하 고 싶지 않은 게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말 세 마디가 있는데,
첫 째가 뭐냐 하면은 어떤 일이든지 아 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발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자꾸 아프 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자녀들이 귀찮을 까봐, 자녀들이 걱정할 까봐 아프다는
말하는 거 그렇게 싫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안 하고 싶은 데
그러세요. 이것이 부모님의 마 음이에요. 자식을 괴롭힐까봐…….

두 번째는
외롭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아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해요. 그러나 사실은 외로워요.
자 식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운 건 외로 운 거죠.
그러나 내가 외롭다고 하 면 저들이 뭔가 어머니를 잘못 모셔 서
외롭다고 하지나 않나, 할까봐 그 말을 하고싶지 않은 거예요.
외 롭지만은 외롭다고 못 하는 게 부모 의 마음이에요.

세 번째는
배고프 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또 어 느 때 좀 궁진해서 뭘 잡숫고 싶어 도
혹시라도 귀찮게 여기지나 않을 까 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세 가지가 하고싶지 않은 말이요
조심스러운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입 니다.
이제 이 분의 마음속에 슬픔 을 드리고, 고
통을 드리는 것은 불 효입니다.

또 한국적 효도의 세 번째
개념은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그 래서 대를 이어가는 것이에요. 요 새 세계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비혼 이요, 둘째가 불임입니다. 바로 며 칠 전에는
로마 카톨릭 교황까지도 나서서 제발 자식들 낳으라고
아주 사정을 하드만요. 자꾸 인구가 주 니까요.
바로 이것이 망조입니다. 효도요? 누구든 좌우간 시집,
장가 안 갔으면 불효요. 부모님의 마음 을 아프게 했으니까.
또 갔으면 또 이제 뭐 어찌 못 낳는 거는 할 수가 없을지
몰라도 자식을 안 낳는 거 그거 불효입니다.
그런 줄이나 알 고 사세요. 그런데 이게 문제라고 요.
부모님의 마음은 그저 이유 불 문이야.
자기가 한평생 고생했어도 그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서
아들, 딸 낳고서 그 손자, 손녀를 품에 안 겨드리는 거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그리고 무슨 공부 많이 해 가지고
큰 일하겠다고 밖으로 나도 는 거 부모님의 마음 반갑지 않아 요.
효도는 시집가야되요. 그리고 가서 자식을 낳아
이게 효도라는 거, 이게 한국적 효입니다.
또 하나 는 가문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거 지요.
그래 옛날에는 과거를 보는 일이 있었지요. 가서
과거에 급제 하면 효자요, 허구헌 날 낙방하면 불효자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도 안 돼. 가문의 명예를 높여야지 요.
그래서 오늘도 자식들이 공부 를 잘하고 하면은
그 아버지 어머니 는 그거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실례 가 안 될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우 리 아들이 공부……. 어디 가서 뭘……",
그러지 않습니까? 이게 효도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 아들 이요 삼수했는데 두고 봐야 알겠어 요."
이거는 불효라고요 이렇게 되 면은
그러니까 가문은 명예는 높여 드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개념으로 집약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부모님 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해 드려라.
그리고 내 자신이 부모님의 길을 즐 거워하라.
기쁘게 해 드리라고 말 합니다.
역시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이 효도일 것입니다.
이런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 날 이조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 을 떠나서
개성을 좀 방문하게 됐습 니다.
개성에 거우동을 하게 됐는 데 온 방에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 니깐 어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 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내가 나라 임금의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 도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 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그리고 죽었 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 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 십리길을 어머니를 업고 거기 길가 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 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이렇게 해 드렸어요.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 머니를 업고있던 그 사람 좀 불러들 여라."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나서
"너는 효자다."
그래서 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 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다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또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또 불러서 상을 "금 백냥을 주라"
그랬는데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 님이여, 그놈을 불효자랍니다. 효도 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 았다는 말을 듣고 이거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 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 습니다."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
그랬어요.
"흉내 내었더라도 좋은 거니 줘라"
결국 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 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괜찮은 이 야기이지요.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 다.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라고요.
존재의 가치를. 그의 지혜, 그의 경 험, 그의 사랑 그리고 그 깊은
잔소 리 속에 그 많은 잔소리 속에 중요 한 교훈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겁니 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 다.
측은히 여기던가 불쌍히 여기 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부모는 공경하는 겁니다.
존경이 없는 사 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귀찮게 여겨도 안됩니다. 일 본 동경에서 모였던
국제 심포지움 에서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거 동이 어렵게 된 부모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학 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옵니다.
"양로원 에 보내야 됩니다."
그게 일본이 24%, 영국이 25%, 미국이 19%, 중 국이 9%, 한국은 0.4%.
한국, 소망 이 있습니다. 거동하기 어려운 부 모는 양로원으로 보내라.
이게 일반 적으로 25%입니다만은 한국만은 아 직도 0.4%.
그래도 한국은 아직도 효에 관한 한 모범 국가입니다.
그 래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 는 오래 살겠다고 보약을 먹고 운동 을 하고 발광을
합니다만은 그러나 여러분 잊지마세요. 성경은 오래 사는 비결
오직 딱 하나 가르쳐 줬 어요. 그것은 효도하라 그랬어요.
부모 박대하면서 오래 살길 바라지 마세요. 그건 비성서적이요.
사업 에 성공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나? 부모님 마음 슬프게 하면서
사업 잘 되리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40년 목회 하면서 수없이 보아왔습 니다.
오래 사는 집, 거기에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아주 성공 한 사람은 비록 잘못도 많지만은 그 분은 효자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여러분 불효하면서 잘 되고,
불효하 면서 건강하고, 불효하면서 오래 살 고…… 기대하지 마세요.
효가 장 수와 형통에 철저한 비결이에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제가 뉴욕 에 갔을 때에 제가 잘 아는 친구 분 이 계세요.
거기에 한번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세요.
제가 이 서 울에 있을 때에 그 분, 그 어머니를 가까이 지났거든요.
잘 아는 터이 라서 가자마자 어머니 어디계시냐고
그러니까 아 저 골방에 계신데 뵙지 말라고,
냄새나고 그런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이야기하고 있 는
동안에 어머니가 자꾸 보고싶어 서 문을 열어요.
문을 여니까 또, 가서 "어머니 가만히 계세요."
문을 꽝 닫잖아요.
그걸 내가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웬만하면 내가 분위기를 위해서 그 냥 있으려고 했는데 안되겠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를 뵜더 니요,
그 어머니가요 얼마나 슬피 우는지요.
내가 곽목사님 온다는 말을 듣고 뵙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나를 못 만나게 했다고…… 그러면
서 우는 어머니를 보았어요. 여러 분 이렇게 업신여겨도
되는 겁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할 작정이 요.
구제 대상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지 마세요.
높이 존경하고 그 지혜와 경험과 그 거룩한 본을
우리 가 존중해야되요. 어느 사람은
논 문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스 라엘 나라가 강한 이유? 오직 하 나,
그들은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이 요.
그리고 전승을 중요하게 여겨 무슨 말하다가도
"이거는 조상 적부 터 내려오는 전승이요, Tradition"
하면 꼼짝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 에 강하고
그러기 때문에 지혜롭다 는 것이에요.
또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 니다.
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이 되 야 하는 거예요.
의롭게 살아야 됩 니다.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높은 도덕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이 잔소리가 많고 그들이 간섭
이 많은 이유도 사실은 다 그 깊은 곳에 심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나 는 선하지 못했다 그러나 너는 선하 라.
나는 공부를 열심히 못했다 너 만은 좀 열심히 해다오."
보상적 심 리가 있어요. 또 나는 의롭지 못했 다
그러나 너는 의로워야 한다는 거 예요.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은
언 제나 선한 것이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많고 조 금은 지나칠 때도 있어요.
말씀은 다 안하고 있지만은 그런 후회가 많 아요.
과거의 후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랬다만은 너는 제발 이래다 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요. 그 런고로 효의 지름길은
내가 의롭게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보상해 드려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자가 되야 한 다고 성경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오늘 20절로부터 보면 은
"술을 즐기는 자와 사귀지 마라. 게으른 자와 사귀지 말라.
단정히 행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그리 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듣는 지혜를 가져야 되요.
청종하는 지 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를 잘 믿는 것, 그리 스도인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효 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소원은 우리가 오래 사는 것이에요.
그런 고로 신앙생활 잘해서 영생의 기업 을 얻으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 드 리는 거예요. 우리가 지혜롭게 살 아서
모든 일에 실수없이 행하면 부 모님께 직접적으로
효도하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는 오늘 성경이 증거하 시는 것은
"내 길을 즐거워하라."
그럽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그의 선 택, 그의 철학, 그의 이상,
그의 살 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 은 마음속에 지금 무언가
잘못 살았 다고하는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만은 자식의 행위를 통하여,
"아닙니다. 부모님은 잘 살았습니다. 성공적으 로 살았습니다.
훌륭하게 살았습니 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뭐 그따위로 살았느냐고 말하지 말고요. 훌륭하게 살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듣고싶은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 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 브라함 링컨 자신도 초등학교
좀 다 니다 말 정도예요. 학문이 없는 사 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그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기 위해서 그 반대파에서 끝까지 괴롭히는 거예 요.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 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
어느 국회 의원이 그랬답니다.
"당신 같이 무 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의 다시없는 불행이라 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 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 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다"고
해놓고 구두를 벗어 서 들고,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아 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대단히 감사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고 구두를 잘 만드는 분이셨 습니다.
내가 어깨 넘어로 배운바 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 다."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여러분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 니다."
떳떳하게 자랑을 합니다. 이것이 효도라는 거예요.
"내 아버 지는 머슴이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머슴이요,
나는 그 아들입니다."
자 랑할 수 있어야 되요. 아버지의 직 업, 아버지의 선택,
아버지의 삶, 어 머니의 살아온 생에 대하여
"잘 하 셨습니다. 훌륭하셨습니다.
그 하 시던 일을 나는 존경합니다.
나 거 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 하려 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효도 예요. 부모님으로 하여금 살아온 생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어서는 안돼는 거예요. 그걸 자랑하게 만 들 수
있도록 부끄러운 일생을 자식 이 보상해 주어야 됩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는 없어요.
여러분 효가 복 그 자체입니다. 효가 있는 가정이 복됩니다.
효가 복의 근본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효도하세요. 그리 고 내버려둬도 자녀들은
저절로 훌 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 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마세요.
그런 일 은 없어요.
그런고로 부모님을 즐 겁게 합시다.
효는 문화의 유산이 아닙니다.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건 성경적 진 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