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사 66:1-4)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화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사 66:2)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여러분들의 가정은 얼마나 서로 서로를 돌보는 일에 힘쓰셨습니까?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무관심할 수 있다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아픔과 연약함을 돌보아 주지 못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오늘 본문의 권고(眷顧)라는 말은 바로 '돌봐 준다' 라는 뜻입니다. 특히 2절 말씀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을 하나님이 돌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처럼, 아니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자상함과 풍성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돌봐 준다고 해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돌봐 주신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천지의 주재가 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고 돌봐 주시는 사람이 된다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돌봐 주신다고 했는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빈 마음, 겸손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마음이 겸손한(humble)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분이지만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을 돌봐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66:1, 2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고 하시며 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높고 넓은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에 지나지 않고 천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인데,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집을 짓고 무슨 처소를 만들어서 거기 거하게 하겠느냐 아무리 좋은 예배당이나 좋은 집을 지어도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사 57:15에도 그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존귀하고 거룩하신 분이지만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겸손은 하나님을 모시는 비결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는 비결입니다. 이에 미 6:8에도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라" 고 하셨습니다.

 델리취(Delitzsch) 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에게 높은 곳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너무 좁은 곳도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비어 있는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높으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돌봐주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서 8복을 말씀하실 때 제일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의 첫째가는 마음의 자세는 가난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이에 스펄젼(Spurgeon) 목사님은 '심령이 가난한 것은 축복 창고의 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으로 꽉 차 있고 그런 사람은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이 모두 돌보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빌 2:5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곧 겸손한 마음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그를 돌봐 주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교만한 자는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약 4:6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고 했으며 벧전 5:5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고 했으며, 잠 16:18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소유할 수가 있고 교만하면 하나님이 다 거두어 가십니다. 겸손이 결핍되면 아름다운 것도 우아한 것도 모두 가증한 것이 됩니다. 교만하면 수고와, 봉사도 다 가증한 것이 되고 맙니다. 겸손은 가장 고상한 덕행이며 모든 축복의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겸손의 결핍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며 상실과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2. 통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인하여 심한 영적 고통을 느끼는 자를 돌봐주시고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 심한 고통을 느끼는 자가 결국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끊어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사역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를 하고 음행죄를 지으면서도 도무지 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시고 큰 재난과 고통을 가하신 것입니다. 렘 3:3에 보면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고 하였고 렘 6:15에서는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니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고 탄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라는 말씀과 같이 죄를 지을지라도 그 죄를 인하여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자비로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사 57:15에도 보면 지존무상하시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8복 가운데 두 번째를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눈을 뽑듯이, 발을 찍듯이 아픔을 느끼며 간절히 회개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돌봐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통회하는 사람은 결단성 있는 행위로 죄를 끊고 돌아설 수가 있고, 죄의 값을 받을 때에도 달게 받습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구속의 은총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시 51:17에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했고, 사도 바울은 롬 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탄식했습니다. 진정 죄 때문에 탄식하는 가련한 영혼에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그를 돌봐 주십니다. 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보혈에 대해서도 정말 의지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죄를 슬퍼한다고 해서 회개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죄에 대한 슬퍼함이 없이 진정한 회개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는 죄에 대해 애통한 나머지 기절할 뻔한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은 음란한 죄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기의 팔뚝을 물어 뜯으며 애통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힘입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된 것입니다.

 시 34:18의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라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3.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입니다. 참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떠는 사람입니다.

 효자라면 부모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고 순종하는 것 같이 훌륭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여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참된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 앞에서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자는 끝까지 놀라운 은혜로 돌보시지만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내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잠 13:13에 보면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름없는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두려워하며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회개하여 위대한 임금이 되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는 훌륭한 왕이 되었으나, 사울 왕은 사무엘과 같은 대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며 변명하고 핑계만 대다가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여 자기 아들은 전사하고 자기는 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대하 36:15-20에 보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들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백성들의 말로가 너무나 비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떨 줄 모르고 멸시하고 경홀히 여기면 이렇듯 타락하고 패망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대적하여 물리치는 비참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함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늘 돌봐주시는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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