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우리가 사는 인생은 본문의 갈릴리 호수처럼 언제 풍랑이 불어 닥칠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나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야말로 인생의 모든 풍랑을 극복하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위태로운 인생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거닐던 중 일행은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갈릴리 호수는 홀연히 불어 닥치는 폭풍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생에 있어 폭풍은 예고치 아니하고 불어 닥칩니다. 갑자기 질병의 폭풍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실패의 폭풍도 옵니다. 슬픔의 폭풍이 뒤따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하고 맹렬한 폭풍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러한 인생의 모든 폭풍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폭풍 가운데서도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기도하는 인생
   1) 주님만을 의뢰하는 기도
   풍랑이 몰아치는 뱃속에는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 기후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풍랑시 배를 다루는 기술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힘으로 풍랑을 이겨보려 했으나 그럴 수 없음을 깨닫고 드디어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주님께 구원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위기를 만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 끝까지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인본주의라 하겠습니다. 또한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단편적인 시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깨어 주님을 발견하는 기도
   풍랑이 몰아치는 갈릴리 호수에 있는 제자들은 육신적으로는 깨어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침체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던 제자들은 옆에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리 곁에 계신 것도 모르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바로 성도의 실패입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발견키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영적 눈이 떠져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인생의 순경시나 역경시나 깨어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항상 보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

   3. 풍랑을 잔잔케 하심
   1)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심
   제자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치며 공포에 떨자 주님께서는 풍랑을 잔잔케 하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도 엄청난 기적 앞에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인생의 모든 폭풍이 잔잔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슬픔의 바람이 불어 닥쳐도 의심의 폭풍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 때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신 곳에는 안온한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2) 인생의 피난처가 되심
   본문의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감당하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한다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참조, 사 43:1, 2).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받으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게 모든 풍랑을 극복하는 용기를 주십니다(참조, 요 16:33). 주님은 인생의 폭풍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휩싸인 인생들의 진정한 피난처이십니다.

   4. 고난 속의 인생에게 믿음을 요구하심
   예수님께서는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일엽편주를 타고서 인생을 항해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먹장구름이 엄습해 오는 순간에도 그 구름 배후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만 믿음이 생겨나는 그런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으로써 실질적으로 삶 가운데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통해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는 관념적인 요소가 있으나 관념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질문은 '네가 어떤 신앙고백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네가 고백한 신앙고백처럼 행동하는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살아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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