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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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믿음
(약 2:21-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미국에 성실하게 노력하고 일해서 큰 부자 된 김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에게 한 60세 된 노인이 '그렇게 큰 돈을 벌게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김손씨가 대답하기를, '나에게는 세 가지 생활 비결이 있는데 첫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60세된 노인이 '그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인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김손씨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데 60세 되신 노인이 아직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되겠습니까?'라고 했답니다.

 본문에 보면 야고보 사도는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독자라도 아낌없이 번제를 드리는 행함이 따른 믿음이며, 기생 라합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들을 잘 접대한 것과 약속을 믿고 붉은 줄을 창문에 드리우느 행동이 배후에 있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이 야고보서를 보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사상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복음과 반대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복음이 결여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아주 가치없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저 자신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확신을 얻게 해서 구원하려는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목회하고 부흥회를 이끄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보다 행함을 더 강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함은 도외시한 채 믿음만을 강조하고, 또 복음만을 강조하다 보면 입술로만 공허하게 고백하는 것으로 온전한 신앙에 이른줄로 알기 쉬우며, 실천과 생활이 없는 위선과 가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사상적으로 배치되지 않았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How to be saved)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고, 야고보는 '어떻게 사느냐'(How to live)하는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결코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구원은 어디까지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값없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는 선물인 것입니다. (롬 3:28, 갈 2:16, 엡 2:8)


 1. 믿음대로 행함의 중요성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행함과 실천히 굳이 왜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믿음을 꽃이라 한다면 행함과 실천은 열매와 같습니다. 꽃만 피고 열매가 없으면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행함과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도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행한대로 축복을 받고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3:15에 보면 죽기 전에 간신히 구원받고 믿음을 생활로 열매맺지 못한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고 축복이나 상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함으로 받게 되는 것이며, 능력과 은사는 사모하며 간구할 때 받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라고 했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거룩하라고 했습니다. 행함과 실천으로 거룩해지며, 완전을 향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우선 배운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한 번은 강가에 나갔다가 머리를 보면 한 30살 되어 보일만큼 머리통은 징그럽게 큰데 손과 발은 대여섯살 난 어린이 상태로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어서, 머리의 무게를 손과 발이 감당을 못하고 뒤우뚱거리며 걷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신자들이 설교는 많이 듣고 아는 것은 많은데 손과 발로써 실천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때, 머리통만 크고 손과 발이 작은 저 사람과 같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아느냐도 중요하지만 배운대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약 1:23, 24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한 말씀과 같이, 듣고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빌 4:9에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믿는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믿는다면 행동으로 그 믿음이 옮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믿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실천에 옮길 때, 믿음에 대한 체험이 생기고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생활로 실천하지 않으면 확신이 생기지 않고 믿음에 따른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은 생활화할 때 생겨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실 고기가 잡히리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싶은 마음은 있었기 때문에 '밤새도록 수고했어도 한 마리 못잡았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실천에 옮길 때 뜻밖에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에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펄펄 뛰며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회개했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해 보기 전에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것이라"(약 2:15-17)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고 십일조를 해야 체험적인 신앙이 생길줄은 믿지만, 말은 하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체험할 수도 없고 확신도 생기지 않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실천이 있어야 되고 행동으로 옮겨져야 되는 것입니다.


 2. 실천에 필요한 요소들

 첫째, 결단이 필요합니다.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단 1:8에 보면 다니엘은 외국에 포로로 잡혀간 처지에 그것도 황제가 특혜를 베풀어서 왕의 진미 고급 음식을 먹게 됐는데,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했습니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왕의 진미를 거절하기로 결단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전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실천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확신이 생기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실천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 방탕하여서 재산을 다 허비하고 돼지 먹이를 먹으며 고생할 때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많은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제 아버지께 돌아가자' 하고 돌아갈 결심과 용기를 가졌습니다. 볼트만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도 신앙은 순간 순간 결단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믿는대로 실천에 옮기려면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따르는 고통과 희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다니엘이 외국인인데도 왕의 총애를 받고 신임을 받는 것을 보고 질투한 방백들이 다니엘을 없애려고 왕 외의 다른 신에게 빌거나 절하는 사람은 다 사자 굴 속에 던져 넣도록 법령을 만들어서 왕의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다니엘은 목숨이라도 버릴 각오를 하고 평소 하던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슬픈 마음으로 사랑하는 다니엘을 사자 굴 속에 던져 넣었으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믿음을 실천했을 때 그는 사자들의 입도 봉하여져 살아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희생과 헌신의 값비싼 대가가 없이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된 일이 없고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대로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실천하지 못하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할 때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하는 엄청난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모험이 필요합니다.

 모험이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정처없이 출발해 간 것도 모험이요, 하나밖에 없는 독자 이삭을 잡아 바친 것도 엄청난 모험입니다. 그런 모험을 가지고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엄청난 축복도 받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면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왜 시험해 보라고 하셨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손해날까봐 실천을 하지 못하고 모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하셨습니다.

 어떤 손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단행해 보지 않은 사람은 체험과 확신을 가질 수가 없고 큰 축복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사도 말씀을 믿고 실천할 때, 그 말씀에 위력이 있고 듣는 이의 심령을 변화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했듯이 설교하기도 힘들지만, 설교하기보다 설교 준비하기가 더 힘들고 설교 준비보다 설교 말씀대로 내 자신이 생활화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믿는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앙은 정신 생활의 사치품이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인생의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신앙은 모험이요, 피나는 투쟁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했습니다. 배우고 아는대로 실천하고 믿음대로 행하는 성도가 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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