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본문에서는 자신은 엄청난 빚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지극히 적은 빚을 진 동관을 옥에 가둠으로 자신이 받은 용서를 스스로 무효화시킨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심은 곧 우리도 그와 같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1) 우리는 빚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모든 성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빚을 하나님께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깨끗이 탕감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은 죄로 인한 모든 부채입니다. 그리고 빚의 탕감이란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엄청난 부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탕감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2) 우리는 엄청난 빚을 탕감해 준 사실에서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세계에 심어 준 원리로서 이것을 통해서 사회는 선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백 데나리온을 받으려고 했던 사람도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주었던 주인을 본받았더라면 그처럼 포악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옥에 가두거늘.' 엎드려 간구하는 목소리를 채주는 외면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자기는 일만 달란트라는 거금의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자를 괴롭히며, 옥에 가둔 자에게 주인은 탕감의 약속을 파기하고 오히려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정죄하기를 즐겨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입니다.

   3. 우리가 하는 일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1) 세상에 알려지는 악한 일이 행악자에게는 곧 심판을 의미합니다.
   불의한 채주의 악한 일은 그 주인에게 알려졌습니다. 불의한 일은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에게 심히 민망한 감정을 유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권세를 지닌 주인에게로 달려가서 알렸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죄는 비록 어둠 속에서 지은 죄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게 됩니다(참조, 욥 12:22; 시 90:8; 전 12:14). 그리고 그는 마땅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34절).
   2) 선한 일은 은밀한 중에 행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은밀한 중에 행한 일이 드러나는 것은 죄악뿐만이 아니라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은밀한 중에 행한 죄악이 우리를 더욱 경악스럽게 하는 반면 은밀한 중에 행한 선행은 그 영광과 칭찬을 더욱 크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선행을 은밀한 중에 행하라고 교훈 하셨습니다(참조, 마 6:2-4).

   4. 우리는 중심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중심으로 용서하는 사람만이 긍휼의 심판을 받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일만 달란트 빚은 그 탕감 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그 실효성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을 그와 같이 용서해 줄 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무자비하게 용서치 않음으로써 자기에게 내려진 주인의 무죄 선고를 무효화시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악을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긍휼히 여기는 용서를 베풀지 못할 때 그 용서는 얼마든지 무효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참조, 마 6:14, 15).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2) 중심으로 용서하는 사람은 영광을 얻게 됩니다.
   만일 그가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였다면 그에게 내려진 일만 달란트에 대한 주인의 무죄 선고는 여전히 유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주인의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영광이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참조, 잠 19:11). 하나님의 용서는 전적으로 은혜에 의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의무가 따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의무요 용서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일생을 빚진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엄밀한 면에서 모든 빚을 탕감 받은 성도입니다. 다만 우리의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크게 빚을 진자의 태도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며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