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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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0:22-23>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잘못해 주면, 이내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 동안 잘해 준 수많은 일에 대해서 감사하기는커녕, 아예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더욱 불행스러운 것은 이런 현상이 가장 중요한 사랑을 주고받는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들은 열 달 동안이나 입덧 등으로 고생하고, 목숨이 걸린 진통 끝에 낳아 주고, 수십 년 동안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학교에 보내는 등 온갖 사랑을 쏟아 부어 주지만, 자녀들은 어쩌다 한두 번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그 모든 사랑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께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어 출생하였고, 또 우주 만물을 거저 소유하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생명과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사랑의 하나님께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생각하라

창조주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배은망덕은 불신자나 이교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때부터 선민의 영광을 누렸고, 열 번씩이나 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능에 의한 출애굽의 은혜를 체험했으며, 그 하나님 덕택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갔고, 추격하던 적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보았으며, 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 여행길에서 기적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복들 이외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우상 숭배와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불행해지거나 망했을 때에도, 그냥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기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곧잘 하나님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만 주신 율법이라고 “율법! 율법!” 하다가 율법주의에 빠지면서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마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 취해서 장난감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와 같이 유대인들은 각양각색의 하나님의 은혜와 복, 또는 용서의 사랑에 취해서 만복의 근원이시며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50:22)라고 강력하게 경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다가 잊어버린 선민들에게 이제라도 사랑의 본질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찢을 텐데 아무도 건질 수 없으리라는 겁니다. 아닌게아니라,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징벌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잘 알고 있다가도 정작 필요할 때에는 생각나지 않아서 망신을 당하거나 곤혹을 치르거나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금요일 밤늦게 진기한 경험을 고백하는 내용이 방영되어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젊은 사람이 술이 취한 채로 잠을 자고는 새벽에 목욕탕에 갔습니다. 벗은 옷을 다 옷장 속에 집어넣은 뒤에 수건을 들고 욕탕 문을 열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여자가 돌아서서 머리를 감고 있는 겁니다. 기겁을 한 그 사람이 허둥지둥 옷을 챙겨 들고는 다른 층에 있는 탕으로 옮겨갔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한숨을 돌린 그 사람이, 여유 있게 속옷마저 벗어서 옷장 속에 넣은 다음에 수건을 들고 욕탕 문을 열었습니다. 막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에 여자들의 비명 소리와 욕설이 들리면서 젖은 수건들이 날아오고, 플라스틱 의자와 대야들이 날아오는 겁니다. 혼비백산한 그 사람이 대야 둘로 앞뒤 중심부만 가리고는 줄행랑쳤습니다.

몸을 가릴 옷을 얻으려고 대문이 열린 집에 들어섰는데, 하필이면 개가 있는 겁니다. 으르렁거리는 개를 짖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면서 개집에 깔려 있는 담요를 빌렸습니다. 그러자 재산을 뺏긴 개가 마구 짖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왜 이렇게 시끄럽게 짖냐?” 하는 아주머니의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그 사람이 급한 김에 대문 옆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려고 실랑이하던 아주머니가 바깥쪽 고리를 걸어 버리고는 경찰을 불러 왔습니다. 결국 두 경찰과 동네 사람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허리에 담요를 걸친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욕탕 문을 열었을 때, 요즈음에는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출연하는 남자 연예인들도 있고, 단발머리를 하고 다니는 남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거나, 문에 ‘여탕’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그런 곤혹을 치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에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심심찮게 기독교인 공직자들이 뇌물 수수와 비리 등으로 구속되어 망신을 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곤 하는데, 그때 그 유혹의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했다면 ······.

여러분, 기쁠 때에나 슬플 때에나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로 예배하는 자의 유익

신앙생활의 집약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주시고, 우주 만물을 삶의 터전과 삶의 방편으로 주신 창조주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 죄의 종으로 타락한 우리에게 독생자 그리스도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구원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은 바로 감사 예배입니다. 이 감사 예배는 모든 옳은 행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온갖 형태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감사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문제이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복음신문에 다음과 글이 실려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중간에 강도를 만나 소지한 여행비용을 모조리 털리고 말았습니다. 알거지가 된 부자는 잠도 거리에서 자야 했고, 밥도 식당에서 구걸을 해서 먹어야 했습니다.

부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막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모래 바람과 싸우며 걷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오냐.”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나으니라.”

얼마 뒤에 모래 언덕에서 묘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통곡을 하면서 “누구도 이 길을 통과하지 못했군요. 다 죽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다. 이곳에 묘지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부근에 마을이 있다는 증거다. 이제 우리는 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인생의 열매 중에서 가장 귀한 열매는 고난 속에서도 나오는 감사이다.”라고 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유명한 기도문인 ‘태양의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별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달을 주시고, 달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

스펄죤 목사는 “가진 것이 없으나 감사하는 자는 넘치도록 받을 것이요, 가진 것이 있으나 감사치 않으면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 버린다.”라고 했습니다.

신학자인 니버는 “믿음, 소망, 사랑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감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4. 맺음말

사람들은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은 잘도 잊어버리고, 잊어야 될 것은 잊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곧잘 곤혹을 치르고 불행을 끌어들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창조주시며, 만복의 근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온갖 하나님의 구원을 보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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