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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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이유 하박국3:16-19   [맥추감사절]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이다. 예배도 인간관계도 감사에서 시작해서 감사에서 끝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감사에서 크고 깊은 감사까지,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행동은 기독교의 영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려면, 그 사람이 감사하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감사가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영적으로 깊은 사람이고, 감사가 적고 불평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 틀림이 없다.
  강철왕 카네기는 가난한 철도국원으로 있을 때 털실로 짠 내복을 한 벌 선물로 받고 그것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하라! 서양 속담에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집에 세 살배기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갖고 싶어 했다. 아이는 반 년 전에 교회 집사님이 준 헌 자전거를 타면서 너무 행복해 했었다. 그러나 몇 대째 내려오던 그 자전거는 너무 낡아서 그만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자전거를 붙들고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면서 아빠는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생일 선물로 사 주어야지 하다가 지나쳐 버리고, 성탄 때 사주겠다고 결심했다가 더 급한 일 때문에 뒤로 미루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교인이 자전거가 남는다면서 아이에게 자전거를 주고 갔다. 아이는 두 번째로 갖는 자전거를 타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아빠가 무슨 일로 자정에 가깝게 들어왔는데, 아이는 그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있다가 아빠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빠의 품에 안겨서 “아빠, 땡큐!” 라고 하였다. 아이가 진심으로 하는 감사의 고백을 듣자 갑자기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좀 더 일찍 사 줄걸…’ 그러면서 이 아빠에게 깨달음이 왔다.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하는 말은 “아빠, 땡큐!” 라는 말임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기뻐하실 것이다.

  본문은 하박국 선지자가 드린 감사로 너무 잘 알려진 유명한 말씀이다. 본문에는 “없을지라도” 라는 말이 무려 6회 등장한다. 조건이나 이유가 없는, 절대적인 감사를 말한다. 만약 무엇을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조건적 감사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감사하겠다는 이유가 붙은 감사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감사한다는 절대적 감사이다.
  사람들이 감사의 이유를 말할 때 거의 부분적인 감사에 불과한 것들이다. 날씨가 더울 때 에어컨을 틀거나 시원한 빙수를 먹으면 고맙게 여기고, 추울 때 불이 따뜻하게 들어오면 등을 지지면서 감사한다. 그러나 에어컨도 난방도 필요 없는 봄과 가을 날씨에는 별로 감사한 느낌이 없이 살아간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로 가득하다. 목사는 매일 심방을 가지 못하고 병들었을 때, 특별한 일에 한두 번 심방하게 된다. 그래도 거의 매주 병원에 며칠 씩 가게 된다. 그런데 평소에는 감사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병들어서야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동안 건강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했다고 하거나, 병에서 나아 퇴원하게 되면 아직 약해서 파리하면서도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감사해요!”라고 고백한다. 아무 일도 없이 평소에 건강할 때 건강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하였다.
  노인들이 청년들이 수련회에서 뛰어노는 것을 보고 “좋을 때다!” 하며 부러워하는 것이나, 나이 많은 부인들이 과감하고 색깔 있는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처녀들을 보며 “아이고, 한참 때네!” 하며 시샘어린 눈으로 보는 것도, 젊어서는 모르다가 늙어서야 비로소 젊음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이다.
  케네디의 남편 재클린이 남편의 1주기 때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늙어 가리라고 꿈꾸었던 것이 지나친 소망이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라고 울먹였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고맙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가 남편이 죽고 나면 그제서야 남편의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내도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다가 잃고 나면 아내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사할 조건이 된다. 일본에서 올림픽을 열려고 할 때 집을 개조하기 위해 공사를 하는데 거기에 도마뱀 한 마리가 못에 박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집을 지은 지 3년이나 되었는데도 도마뱀이 못에 박힌 채 그 세월을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관찰해 보았다. 이 도마뱀이 3년 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겠는가? 저녁이 되면 다른 도마뱀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래서 못 박힌 자리만 반질반질한 자국이 났을 뿐 다른 곳은 아무 어려움이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어로 감사(thank)라는 말과 생각(think)이라는 말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가? 여기 우리가 나와 앉아있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라. 못에 박힌 도마뱀 같은 나를 가족이 사랑하고 이웃이 도와주고, 돌보시는 부모님, 가르치는 선생님, 사회가 지켜주어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생각해보고 감사를 회복하라!

  하박국 선지자는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데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고 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때문에,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를 드렸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불안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 불안이 우리 삶은 근본에서부터 흔들어놓는다. 믿음이란 이 근본적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 지옥에 대한 불안, 허무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된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로 말미암아 안심하고 위로를 받는 믿음의 사람들은 복이 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 하련다! 나는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17-18절, 표준새번역) 바울처럼, 스데반처럼, 하박국처럼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 주어진 것을 감사하라! 어떤 목사님 말씀, 자기 교인 가운데 어떤 남자는 예배를 드리면서 한 번도 웃지 않고 기뻐하는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교인들도 해당되는 사람 있는가?) 그래서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어느 땐가 선교회에서 윷놀이를 하는데 모가 나오니 좋아서 펄쩍펄쩍 뛰더라는 것이다. 그때 목사님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저분에겐 하나님의 말씀이 윷놀이의 모만도 못하단 말인가?’ 하고. 우리 중에도 윷놀이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 있는데, 말씀 주심을 그만큼 좋아하시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위로와 평안을 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심을 감사해야 한다. 성령 때문에 감사해 보셨는가? 인천 모교회의 목사님은 폐결핵이 심하여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병원에서 이제 절망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그러자 그는 죽어도 기도하자 죽자 하여 교회로 가서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때 그에게 강한 성령이 임하여 질병도 이기고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다.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의 위로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예배 때마다 찾아오시고 매일 우리 삶에 개입하심을 인하여 감사하라. 미국 워싱턴에서 목회하신 어떤 목사님 이야기다. 그 교회는 당시 대통령 루즈벨트가 나오는 교회였다. 그런데 자주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이번 주에 대통령이 나오나요? 거기 가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나요?” 그때마다 목사님은 “대통령이 오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하나님이 오시는 것은 확실합니다. 여기 오시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복되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도 감사의 이유가 넘친다.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을 가진 사람이다.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절대적 감사의 사람이요, 평안과 고결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독일의 마르티 바덴이라는 그리스도인이 하루는 지방 출장을 갔다가 싸구려 모텔에서 묵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누가 구두를 훔쳐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구두를 살 곳도 없는데 구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날이 마침 주일 아침이었다. 교회를 가야 하는데 구두가 없으니 불평이 터져 나왔다. 모텔 주인이 빌려 준 헌 구두를 신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갔다. 예배당에 나가 앉아 있으면서 감사와 기쁨은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는 얼굴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분의 얼굴과 표정을 보니 너무 은혜가 넘쳐 보였다. 소리만이 아니라 그분의 표정에서 은혜가 넘쳐나는 것을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다리가 없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감격스런 모습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바덴은 가책을 느꼈다. ‘나는 신발을 잃고 불평하며 앉아 있는데, 저 분은 두 다리를 잃고도 감사가 넘치는구나.’ 그 후로 그는 감사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훗날 재무장관이 되었다.
  감사는 벽에 공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고 한다. 감사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감사하는 영혼은 평안하고, 감사하는 사회는 발전한다. 가정에 감사가 넘치면 문제가 해결되고 아픔이 치유되며, 행복한 가정이 되고, 교회에 감사가 넘치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감사함으로 우리 삶을 능력과 기쁨으로 채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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