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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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에는 무려 육천만 명에 달하는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천한 일만 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만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지나친 오해입니다. 그들은 의사, 교사, 음악가, 비서 등의 일도 했으며 가정에 따라서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따뜻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로마법에 의해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것 EH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법률적 권리도 가지지 못했으며 주인의 의지나 명령 등이 곧 그들의 법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노예들은 주인의 감정 변화에 따른 많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는 노예 출신의 성도들이 많았으므로 이들의 울분을 달래 주고 위로하기 위해 베드로가 기록한 말씀이 본문입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 구주 되시는 예수께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가르침을 통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죄와 허물이 없으신 그리스도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22절).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가 죄 없으신 분이었다는 것은 베드로뿐만 아니라 신구약성경 기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참조, 사 53:9; 히 4:15).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셨지만, 범죄나 입술의 거짓이 고난의 원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수도 없이 많은 고난에 처하는 성도들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받더라도 자기 허물과 죄로 인해서 받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자기에게 죄와 허물이 없이 고난을 당할 때 성도는 떳떳하게 되며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입증됩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그토록 많은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고난 앞에서 담대했던 것은 그들에게는 대적자들이 꼬투리 잡을 만한 죄와 허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로마법에 의해 처형당했으면서도 오늘날 모든 이들로부터 추앙받는 것은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생활에 엄격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우리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원인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죄나 과도한 욕심에 이끌려 고난을 받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웃을 위해 고난당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히 11:33-38에 증거하는 바와 같이 그토록 엄청난 핍박을 받았던 것은 어떤 이권에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과 억압으로부터, 그리고 거짓된 우상 숭배로부터 백성들을 해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오늘날은 '이웃'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대를 책임질 사명자로 부름 받은 우리는 '이웃 만들기'를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애매히 받는 고난도 귀중한 것이지만 이 땅에 평화롭고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은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3. 공의로운 심판을 하나님께 부탁하신 그리스도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23절). 저항 없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고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었지만(참조, 마 27:39-44), 예수께서는 끝까지 그들에게 무력이나 언변으로 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 하는 것이 폭력에 대응하는 그리스도의 지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대응 방법이 사실은 성도들이 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 세상의 유일한 심판자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생각이며, 그것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더욱이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인간은 자칫 보복적인 심판을 할 수 있으므로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참조, 롬 12:19).

   4.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시는 그리스도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의와 불의, 공과 사, 선과 악의 선택에서 유보적이며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늘날 사회인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어느 한쪽을 취함으로써 돌아올 막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데서 생긴 기회주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도들만큼은 이러한 기회주의 속성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와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주님이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안일하게 특권이나 누리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애매한 고난을 받아 가며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해 일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참조, 눅 9:23).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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