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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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마라

출애굽기 20장 4~6절_ 하용조 목사

우상 숭배의 본질은 탐욕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은 ‘진짜 신앙’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이기적인 믿음, 탐욕의 믿음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선택 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면 저주는 물러가고 축복이

여러분의 가문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1,000대까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십계명은 축복의 법칙

십계명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영원한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행복의 법칙이요, 축복의 법칙이요, 번영의 법칙입니다. 십계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나라는 복을 받을 것이고 부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부강했다가도 쇠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에 대한 십계명의 요약입니다.

첫 번째 계명부터 네 번째 계명까지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인격적인 분이며,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매우 쉬운 것 같아도 막연합니다. 그러나 일계명부터 사계명을 정리해보면 ‘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을 섬기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고 망령되이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일주일 중에서 엿새는 자신의 생업을 위해 쓰지만 하루는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제사, 사탄의 전략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이 모든 계명을 지키는 사회가 바로 건강한 사회요, 축복받는 사회요, 기초가 잘 만들어진 사회요,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사회입니다. 예수님도 이 두 가지 계명을 똑같이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6~40절입니다.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되는 계명이다. 그리고 둘째 계명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오는 핵심 사상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계명은 지난주에 설교한 것처럼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 우주에서 오직 한 분이십니다. 신은 여러 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땅 가운데 여러 신,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한 신과 종교는 인간이 불안해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에 있는 신화와 종교의 신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직업, 가정, 결혼 등 삶의 모든 구조에 우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업할 때 거의 고사를 지냅니다. 현대 의학의 첨단을 자랑하는 병원을 오픈할 때도 고사를 지냅니다. 영화 한 편 제작하고도 돼지 머리를 상에 올려놓고 그 앞에서 절하며 성공을 빕니다. 제가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한번은 “목사님, 영화를 개봉하는데 와서 예배 한 번 드려주세요”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초청받은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1부에는 예배를 드리고, 2부에는 고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저는 화가 나서 “고사를 지낼 거면 왜 예배를 드렸냐”고 물었더니 “영화계는 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야 흥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대기업은 고사를 담당하는 전무까지 있는 것도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 일하는 크리스천들이 고민과 갈등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왜 조상을 거짓 신으로 만듭니까? 조상을 존경하고 경외해야지,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의 전략이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마라

일본에는 신이 800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해, 달, 나무, 돌 등 모든 사물이 그들의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곳곳에 신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굿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한강변에 가면 고정적으로 징을 치고 굿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무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사보다 더 많습니다. 굿을 해서 액운을 제거하고 병을 제거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귀신을 내쫓겠습니까? 심지어 텔레비전에도 운세를 보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입니다.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우상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화되고 과학이 발달될수록 우상은 더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고,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뭔가 절대적인 힘을 붙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이고, 창조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부적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신학교 동기 중 한 명이 학교 옆에다 전세를 얻었습니다. 전세를 얻자마자 밤마다 귀신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성령 충만했던 그 친구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집 안을 살펴봤더니 대들보에 부적이 하나 붙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부적을 떼어내려는데 너무 잘 붙여놔서 잘 안 떼지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닦아서 부적을 떼고 나니까 그날 밤부터 귀신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상이란 거짓 신이요, 인간이 만든 신이요, 사탄이 속이는 신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가짜 신을 형상화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사람들은 손에 잡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잘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품에 안을 수 있고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으로 대신해서 찾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도 십자가를 믿음의 고백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상처럼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부적처럼 들고 다닙니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면 교통사고도 나지 않고 액운이 없어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상은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기적인 믿음, 탐욕의 믿음

4절 말씀입니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무슨 형태로든 우상을 만들지 마라.”

인간의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자꾸 찾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내가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찾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 진짜 영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진짜는 물질이 아니고 인격입니다.

하나님도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달라는 것입니다.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하나님, 부적 같은 하나님, 그런 신을 사람들은 더 가깝게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섬기는 놀랍고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탐욕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너는 너를 위하여 무슨 형태로든지 우상을 만들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은 ‘진짜 신앙’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이기적인 믿음, 탐욕의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음행하는 사람이나 더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나 탐욕을 가진 사람은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으로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음란한 생각을 계속하는 사람은 우상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쾌락이라는 우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일을 행하는 것도 우상 숭배 하는 것입니다. 탐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잘 입어도 부족하고, 많이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합니다. 더 가질 게 없어지면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

골로새서 3장 5절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들을 죽이십시오. 그들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인간의 죄성과 욕심입니다. 어떤 거짓 신이든지 우상의 형태로 만들어서 그 우상에게 절하고 빌고 주문을 외우고 음식을 바치고 그 우상 앞에서 춤을 춥니다. 우상의 형태는 돌이나 나무나 금이나 철이나 은과 같은 물질로 만듭니다. 대부분의 우상은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고 사탄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들은 민속신앙이나 종교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심지어는 예술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민족문화라는 이름을 내세워 성역화하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마음을 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어떤 예술은 사람들의 정신을 해치고 마음을 어렵게 만듭니다. 또 어떤 예술은 귀신의 존재를 느끼게 합니다. 예술이나 문화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집에 가보면 귀신 냄새가 나는 그림을 비싸게 사다가 붙여놓기도 합니다.

시편 115편 4~7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잡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그 목구멍으로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이사야 46장 6절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가방에서 금을 쏟아내고 저울에다 은의 무게를 재고 금 세공업자를 고용해 신상을 만들고서는 거기에다 절하고 경배하고 있구나.”

사람이 얼마나 웃기는 존재인지, 자기가 만든 우상에 자기가 절을 합니다.

우상의 동기 부여는 이기심, 탐심

오늘 본문 5~6절입니다.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예배하지 마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에게 갚되 3, 4대까지 갚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1000대까지 사랑을 베푼다.”

우상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것은 우상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바꾸는 것도 우상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의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도가 만들어진 다음부터는 ‘할례를 받지 않은 민족은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목적을 변질시킵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보물 지니듯이 지니는 것이라든지, 성경이 너무 중요하니까 거기다가 가죽을 입히고 성경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성경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우상화시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일 성수나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고,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렇듯 우상의 동기 부여는 이기심과 탐심입니다.

축복을 선택하라

하나님의 계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가 3, 4대까지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움찔했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이게 좋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주가 3, 4대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집에 저주가 흐른다’라고 생각한다든지 ‘왜 우리 집은 하는 일마다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3, 4대면 다 끝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손이 1,000대까지 축복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이 저주를 삼켜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선택할지, 저주를 선택할지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어떤 험한 일이 생기고, 사나운 일이 생기고, 감당 못할 일이 생기고, 고치지 못할 병이 있더라도 오늘 이 시간 “나는 축복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십시오. “나는 예수님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면 서서히 저주는 물러가고 축복이 여러분의 가문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1,000대까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요한 1서 5장 3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런 것이 아닙니다.”

요한 1서 5장 20~21절입니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서 참되신 분을 알게 하시고 또 우리가 참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들이여, 우상들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지키십시오.”

새해에 여러분의 주변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삶 가운데 모든 우상이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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