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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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가 날로 변화되는 모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도나 불신자나 그 하루하루의 삶이 보다 발전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후퇴요 낙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명제는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지금 성화(聖化)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보다 새로워져야 하고 발전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성도에게서 그런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 성도와 변화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옛사람의 본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不淨)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5, 6절).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옛사람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이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음란인데 이는 부정한 관계에서의 성적 결합을 가리킵니다. 둘째의 부정은 육적인 부정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실상은 정신적인 불결 상태까지도 의미합니다. 셋째, 사욕은 무절제한 욕망을 뜻하고, 넷째, 악한 정욕은 부끄러운 욕심이라는 말고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다섯째의 탐심은 무엇이든지 욕심나는 것은 무조건 갖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 탐심이 우상 숭배라고 말했는데 이는 올바를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탐심은 하나님 대신 이익이나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심을 가지면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므로 결국 주를 떠나게 되고 맙니다. 한편 바울은 본문 8, 9절에서도 옛사람의 행동, 곧 육에 속한 자들의 행위를 지적했는데 그 내용은 '분냄, 악의, 훼방, 거짓말, 부끄러운 말'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웃을 해치려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어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여기에서 '부끄러운 말'이란 추한 음담패설이나 욕설을 의미합니다. 이런 말들은 이웃의 영혼이나 정신을 오염시켜 병들게 하는 것으로 결코 성도의 할 말이 아닌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은 모두 성도들이 피해야 할 것인데 바울은 본문 5절에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강력하게 명령했습니다. 즉 그런 성품들을 묵인하거나 용서하지 말고 철저하게 근절시켜야 함을 역설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내용이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하여 간과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미지근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게 이런 모습들과는 절연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에나 어울리지 결코 거듭난 자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옛사람을 벗지 못한 성도의 모습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7절). 땅에 있는 지체, 곧 옛사람의 성품을 지니고 사는 것은 거듭나지 못한 자에 국한되어야만 합니다. 성도는 성도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몸이 거룩한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는 사실을(참조, 고전 6:19) 기억한다면 음란과 부정한 생각을 근절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얄팍한 시기심 때문에 더 큰 범죄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만 합니다. 시기 때문에 가인은 아벨을 죽였으며, 사울은 다윗을 괴롭히다가 망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시기와 음행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 커다란 문제입니다. 아니 더 큰 문제는 그런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입니다. 진정 이런 사람은 그 혼자뿐만 아니라 주위 성도들까지도 오염시키므로 격리시켜야만 합니다. 주를 믿은 기간도 오랜 사람이 시기와 사욕에 이끌려 교회의 문젯거리가 된다면 성도라 부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들은 스스로에게 그런 부분이 없는지 자신을 적나라하게 내어 놓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3. 새로워져야 할 성도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8절). 성도는 과거 옛사람의 모습을 제하고 벗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과거의 성품이 근절되는 대신 그 빈자리를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채워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이 성도들을 채우지 못한다면 육신을 지니고 사는 이상 옛 모습이 다시 고개를 들 것입니다. 성도가 하루하루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희망 사항이 아니고 의무입니다. 변화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참지 못하던 것들이 오늘부터는 인내할 수 있게 되어야 하며, 어제까지 자그마한 이익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위선된 모습을 보이던 것들이 오늘부터는 진실 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성도 각 개인에게 일어날 때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모습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타인만을 비난한다면 진정 무책임한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변화에 주력하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을 창출해 가는 모습이 성도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지은 자를 무조건 용서하셨지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고 하셨습니다. 성도에게는 삶의 변화가 요구됨을 명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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