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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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복받는 기회로

(창 32:22-32)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창 32:24, 25)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사는 사람은 반드시 한번쯤 절망에 부딪쳐 본 사람입니다.

물질로 실패하여 궁지에 처해 있거나,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거나, 가정 생활에 실패하거나, 사업에 파탄을 가져왔거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패배와 절망에 부딪쳐 하나님께 항복하고 무릎 꾾지 않고는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축복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곱이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노력으로 많은 재물을 얻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얍복 강 나루터에 왔을 때에 전에 자기에게 속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창칼을 번쩍이며 달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20여년 애써 모든 재산과 귀여운 처자식들도 다 잃고 자기도 죽에 되었습니다.

그때 약삭빠른 야곱은 좋은 꾀를 생각해 냈는데 그 생각은 많은 선물을 보내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형을 대면하자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암염소 200마리, 수염소 20마리, 젖나는 약대 10마리, 그 새끼 3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그 새끼 10마리를 각각 세 때로 나눠서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남은 모든 짐승과 처자식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자기는 강을 건너지 않고 만약의 경우에 처자식과 종과 많은 재산을 다 빼앗긴다해도 자기 자신만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강 이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불안한 야곱은 밤에 일어나 하나님께 간절히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야곱이 마지막 의지하던 환도뼈를 쳐서 절름발이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완전히 절망입니다. 형은 자기를 죽이려 달려오고 있고 자기는 도망칠 수도 없이 환도뼈가 위골 되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야곱은 하나님께 항복하면서 간절히 매달려 간구하여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과 더불어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형 에서도 불구가 된 야곱을 보고 죽일 마음을 버리고 목을 안으며 반가워했습니다.

우리 자신도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매어 달리면 모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문제 어려운 역경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야곱을 축복하시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축복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완전한 패배와 절망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와 능력을 늘 유지하는 방법도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일분 일초라도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패배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야 축복을 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를 패배와 고통과 슬픔의 방망이로 깨뜨리신 다음에 영원하고 참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속히 깨어지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내 자신의 건강이나 물질이나 학식이나 세상적인 모든 것이 다 쓸데없는 것임을 빨리 깨닫고 주님께 항복하고 무릎을 꿇는 사람이 빨리 축복 받고 문제의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세도 자기의 지혜와 무술의 능력을 믿고 의지했을 때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겨우 애굽인 한 사람 쳐죽이고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광야로 도망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면서 완전히 절망에 이르렀을 때 불꽃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시고 능력을 주시어 이스라엘의 귀한 영도자로 군림하게 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장 옳은 사람이요 의인인줄 알고 의기양양했던 사울은 하늘의 강한 빛으로 눈까지 멀게 한 후에 위대한 사도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사울이란 이름에는 '큰 자'라는 뜻이 있는 반면 바울이란 이름에는 '작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큰 자'라는 뜻이 있는 사울이란 이름을 집어치우고 '작은 자'라는 뜻이 있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자기가 크고 잘난 줄 알면 하나님의 종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자신의 잘난 체 하는 것, 고집, 욕심, 교만, 아집이 철저하게 깨지고 부스러져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망은 축복의 기회,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회, 하늘 문이 열리는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인 것입니다.

저희 형님 친구 중에 정신과 박사로 병원을 하고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청년 시절에는 성가대로 하고 또 집사도 지낸 분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님께서 그분을 만날 때마다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조금 있으면 자가용을 곧 살텐데 그때 나가지' 또 '지금 병원을 몇층으로 짓고 잇는데 이것 완공하면 나가지'하며 이런 식으로 계속 미루며 돈버는 데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집사가 교회도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후 세월이 조금 흐른 후에 형님께서 그분을 만났는데 혈색이 안 좋고 피곤해 보여 웬일이냐 물었더니 요즘 소화가 안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형님께서 달려가 보니 그분의 상태는 배가 점점 불러와 수술을 해보니 벌써 간이 울퉁불퉁 불거져 수술도 못하고 코로 입으로 피를 토하며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회개를 하면서 '내가 집사인데 돌만 알아 주일도 안 지키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세상에 도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하면서 애통해 하며 뉘우치더랍니다.

그가 죽은 후 시체실 앞에 가보니 그가 지니고 있던 박사 학위증, 의사 면허증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더랍니다. 죽을 때 그가 박사 학위를 갖고 갑니까? 빌딩을 가져갑니까? 다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평소 사업이 잘될 때 하나님을 잘 섬기지 왜 그렇게 된 후에 항복합니까? 우리는 미리미리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자면 어떤 가난한 사람이 믿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조그만 가계를 운영하였습니다. 그 가게가 점점 잘 되고 사업으로 확장되어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가난할 때는 교회에 잘 나오더니 큰 부자가 되니 바쁘다고 하면서 교회는 안 나오고 골프장에 간다, 쉬어야 겠다고 핑계만 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였습니다. 소방차들이 줄을 이어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불이 났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웬 속옷 차림인 사람이 뛰어와서 교회 문을 두드리는데 나가 보니 그 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큰 회사 사장이 됐는데 하나님을 멀리한 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화재로 알거지처럼 되니까 그제야 회개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달여온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미련합니까? 지혜로운 자는 무슨 일이 잘되고, 건강하고, 돈을 잘 벌 때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못산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절망과 패배 의식을 가지는 자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소망으로 삼게 하기 위하여 굶주리며 목마르며 고생하게 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하시면서 8:12에 말씀하시길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어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8:17, 18에 보면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고후 3:5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만 났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고후 1:8, 9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비극의 원인은 인간이 연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의뢰하는 데 있습니다.

저도 설교가 제일 잘 되고 은혜스런 때가 언젠가 하면 준비는 많이 못했어도 내 힘으로는 못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그 설교는 매우 은혜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멋있고 유창하게 하려고 하면 아무 감동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의 시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께 지배를 받지 말고 너도 저 선악과를 따먹고 지혜로워져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독립해서 살라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었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인간을 다시 복되게 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패배와 절망을 겪게 한 후에 완전히 무릎꿇고 항복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절망을 복받는 기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다시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아무리 펄떡거리는 큰 물고기라도 물 떠나서는 꼼짝 못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명예와 물질과 부귀와 아무리 좋은 것이 와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패배와 절망을 통해서 참된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겉 사람을 깨뜨리고 영원한 속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며, 거짓된 소망에서 벗어나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만 소망케 하기 위하심이며,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 신뢰케 하기 위해서이며,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심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괴롭고 고통스런 일들이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항복하여 큰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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