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복된 사람은 복된 말을 한다

(잠 10:11; 잠 15:2,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라(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라"(엡 4:29).

말이란 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말은 인간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사 소통의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한글날을 맞아 우리의 인생생활에 대해 생각해보고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말은 씨앗이다'하는 말대로 사람은 평상시 말하는 대로 그 환경이 조성되고 그의 삶의 모습이 이루어지기가 쉽습니다. 마치 누에가 그 입에서 300m나 되는 실을 뽑아서 집을 짓고 결국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크고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말이 뇌세포에 전달이 도고 뇌는 척수신경을 지배해서 행동을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잠 18:20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평상시 좋은 말, 복받은 말은 하는 사람은 좋게 되고 복받는 사람이 되고 나쁜 말,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그의 생애도 나쁘게 되고 악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벧전 3:10에 보면 "평생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복된 사람이 되려면 복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복된 말을 해야겠습니까?


1. 불신앙의 말대신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상시의 말 한마디 마디를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는 말 중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이 있고 괴롭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 2:17에 보면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하였고, 말 3:13에서는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대적하는 말이 어떤 내용입니까? 그것은 말 2:17말씀 후반부에 나오는 "모든 행악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말 3:14, 15에 나타나고 있듯이 "...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금식)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하는 말들입니다.

즉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도 소용없고 금식 기도하는 것도 소용없고 하나님 잘 믿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고 도리어 교만한 자와 악한 자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 불신앙의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악한 자가 더 잘된다고 말하는 불신앙의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며 괴롭게 하는 말입니다. 목사가 그런 말을 들어도 몹시 불쾌하고 괴로운데 하나님이 들으실 때 얼마나 노엽겠습니까?

이런 말들은 영생이나 천국의 축복을 믿지 않는 말이요,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않는 데서 나오는 불신앙의 말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말을 하는 자들은 자기의 죄와 허물로 인해 학대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런 악한 말을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만을 품게 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진노케 합니다.

하박국 선지도 당시 악하고 패역한 자가 잘살고 강포와 겁탈로 불의로 판을 치는 것을 보고 합 1:13에서 "주께게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니이까?"하고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아니하고 정녕 응하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 : 4)입니다. 죄의 심판은 반드시 있는 법이고 악인의 종말은 더딜지라도 반드시 있는 법이니 참고 끝까지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복음의 중심 사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복음 안에 사는 실로 복된 사람은 하나님을 괴롭히고 대적하는 말 대신 인내하면서 믿음의 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2. 불평의 말 대신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날 때 감사하고 찬양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감사치 아니하고 불평하기를 좋아합니다. 기적으로 홍해 바다를 건넜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을 인도하였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서 마시었고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져 배불리 먹었건만 그들은 울면서 이것저것 불평하곤 했습니다.

민 11:5에 보면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참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 등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하면서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기껏 구원해 냈더니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격분하셨겠습니까? 이제 잠깐의 고난이 지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터인데 그렇게 원망과 불평만하니 말입니다.

또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에 10명은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아낙 자손들은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지 우리는 거기에 대면 메뚜기이고 그 성읍은 심히 크고 견고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고 악평했습니다. 여호수아의 갈렙의 긍정적인 말은 듣지도 않고 밤새도록 소리높여 울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민 14:1-3)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에게 대하여 불평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괘씸하고 분노하셨겠습니까? 결국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이 말한대로 15일이면 들어갈 것을 40년간 광야를 배회하면서 그들은 모두 다 죽고 새로 태어난 자들과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나 사람에게나 불평, 원망의 말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잘사는 법입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재산과 10남매의 자식을 다 잃고 난 뒤에도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불평의 말을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그 입술로 범죄치 않았습니다. 결국 욥은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도 감사의 말을 잘 하는 자에게 더 잘해주시고 감사할 일을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3. 저주의 말 대신에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복받을 사람은 남에게 저주를 빌지 않고 복을 빌어줍니다. 눅 10:5, 6에 보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하고 축복의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에게 복을 많이 빌수록 그것은 자기에게도 복이 되는 말씀이 됩니다.

'한 샘에서 쓴 물과 단 물이 같이 나올 수 없다'는 말씀대로 사랑의 원칙대로 살아야 될 우리의 입으로 남을 저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시려고 하지 사마리아인들이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했습니다. 즉 '벼락이 떨어져 죽도록 저주할까요' 할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하러 온 것이고(요 3:17). 하나님께서는 저주보다 축복을 즐겨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로 제자들이 저주하려고 할 때는 벌써 그 심령에 악령이 틈탔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던 일이 있습니다. 나를 억울하게 고통을 주고 핍박을 하고 못 살게 하는 사람들이 눈 앞에서 거꾸러지거나 저주받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나를 사랑하시고 내 편에 계시고 엄청나게 축복하시는데 왜 못본 체 하실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제가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은 내가 저주하고 싶은 악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나를 더 악하게 만들기 때문에 내가 증오심을 다 버리고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이 처리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5:43에 보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저주의 말을 하지 않고 축복의 말만 합니다.


4. 비판의 말대신 칭찬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 손가락 하나로 남을 가리키며 비판하면 손가락 세 개는 나를 가리키게 됩니다. 마 7:12에 보면 예수께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비결 중의 하나는 남의 결점을 들추어 내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결점을 들춰내기 좋아하거나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치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며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865년 4월 15일에 부드에 총탄에 맞아 눞혀졌을 때 스텐턴 내려다 보면서 '여기 누워있는 사람만큼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둘도 없다'고 말했는데, 이 스테턴은 전에 링컨 대통령에게 고릴라 침팬지라도 놀려대며 악평하던 사람으로서, 링컨은 그것을 알면서도 국방상이라는 요직의 자리가 났을 때 스텐턴을 그 자라에 앉힐 만큼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링컨도 젊어서 인디아니(Indiana)에 살 때 는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신문지상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제임스 쉴즈라는 사람한테 죽을 뻔한 다음부터 그 버릇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링컨은 측근자들이 남부 사람들을 욕하면 '너무 나쁘게 말하지 말라구. 입장이 바뀌면 우리도 틀림없아 남부 사람들처럼 행동하게 될꺼야'하면서 말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상대방을 칭찬해 주고 장점을 말해 주는 사람이 남에게 호감을 주고 성공하게 됩니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John Deey)는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은 소원은 인간의 가장 끈질긴 요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담슨(Adamson)이란 사람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오트만(Oastman)이란 사람에게 그의 두 빌딩의 의자 주문을 맡으러 들어갔을 때 주의 사람들이 5분 내에 말을 끝맺지 못한다면 쫓겨나게 될터인데 알아서 하라고 하더랍니다. 이담슨은 들어가자 한참 주위를 살펴보다가 감탄하면서 '아까부터 이 방의 훌륭한 장치에 탄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방에서 일하면 무척 즐겁겠습니다. 이런 훌륭한 방은 처음 보았습니다'하고 말을 시작했더니 그 까다로운 양반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해서 일어나 설명까지 해주더랍니다.

'이 벽은 영국산 떡갈나무기 아니라 이태리산 나무이고...'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온갖 설명을 다 해주더니 좋은 점심까지 대접해 주더랍니다. 그리고 9만불어치의 의자 주문을 거뜬히 맡아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남을 비판하고 결점을 말하는 대신 장점을 칭찬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복된 사랍니다.


5. 침묵대신 신앙고백의 말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의 말은 하남님이 기뻐하십니다.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때 믿음의 위력이 나타납니다. 캐넌(E. W. Canon)씨는 '믿음은 고백하는데 용기를 주고 고백은 믿음에 용기를 준다'고 했고, 데이빗 오눈(David. O. Nun)씨는 '믿음이란 당신의 고백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10년을 다녀도 확신이 안생기고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첫째, 구원도 고백에서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 10:8) 했고, "네게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의로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 10)고 했습니다.

둘째, 병 고침도 고백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고 했습니다. 그리고 벧전 2:24에도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신앙을 고백할 때 영육간에 병고침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마귀를 이기는 것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계 12:11에 보면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비결도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마귀를 이겼다고 시인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마귀를 꾸짖어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이루어진 줄 믿어야 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나는 마귀를 이겄다'고 날마다 외쳐야 합니다.


복된 사람이 되려면 복된 말을 해야 되는데 첫째, 불신앙의 말 대신 믿음의 말을 해야 되고 둘째, 불평의 말대신 감사의 말을 하고 셋째, 저주의 말대신 축복의 말을 하고 넷째, 비판의 말대신 칭찬의 말을 하고 다섯째, 침묵대신 신앙의 고백을 해야 됩니다. 부디 복된 입술의 열매로 축복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

본문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