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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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는 우리 인생에 대하여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안개와 같은 인생에 있어서 진정 참되고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살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가산 분배에 불만을 품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사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인간의 관심

   1) 먹고사는 데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좀더 나은 직장과 보수, 그리고 더 나은 집, 옷 등 남보다 비교하여 좀더 나은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끼고 모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러한 모습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위한 것이었는가가 의문시됩니다. 단순히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 그랬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우매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단지 인간 자신을 위한 삶만을 허락하지는 않으십니다. 인간끼리, 그리고 하나님과 조화 있는 삶을 살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세속적인 인간은 오직 그 관심을 먹고사는 데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땅에 속한 어리석은 삶입니다.

   2) 자신의 이익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유대의 풍습을 따라 재산을 분배받은 동생의 불만에 대하여 예수님은 '탐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으로 대답하고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예수님까지도 재판장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탐심으로 어두워진 눈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일시적인 쾌락이나 우월감을 안겨다 주는 재물에만 눈이 밝습니다. 이는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눈앞에 보이는 유혹에 넘어감으로 인해 결국 낙원을 상실한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2. 예수님의 관심

   1) 이타적인 삶입니다.

   자신의 옳음을 확인키 위해 찾아온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 사람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는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 오지 않았다'는 뜻이 담긴 강한 부정의 말씀입니다. 늘 인간의 편에서 오늘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서 어찌 인간의 삶을 무시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매사에 자신 위주의 이기적 욕구만을 충족시키려는 자에게는 엄격하십니다.

   2) 인간의 영혼 구원이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15절의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참된 관심과 진정한 목표와 목적,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그에게 호흡을 주신 목적이란 뜻입니다. 즉 인간은 이 땅에서 재산이나 모으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영혼은 육신적인 문제나 물질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이고, 육신의 안일함보다도 영혼 구원이 더욱 시급한 것입니다. 우리는 탐심으로 인하여 멸망한 아합이나 하만(참조, 왕상 21:2-16)의 경우를 통해서라도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육신적인 부요함은 아무 소용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도 예수님의 관심처럼 영혼 구원에 최선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참조, 롬 13; 14).


   3. 중생한 자의 자세

   1) 자족할 줄 압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처럼 비천하건 풍부하건 간에 자족할 줄 압니다(참조, 빌 4:11, 12). 이 자족은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참조, 전 2:1-11) 물질에서와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참조, 사 65:22-24) 영적 만족, 양자에게서 느끼는 자족입니다. 적게 가졌으면 적게 가진 대로, 풍부하게 가졌으면 풍부한 대로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생각하는 자는 진정 풍요로운 자요, 동시에 중생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합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의 우선 조건은 '중생'입니다(참조, 요 3:3, 5). 중생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생한 자는 세상일에만 얽매여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참조, 요일 5:4). 그러한 삶은 결국 신령한 생활의 열매(참조, 요 15:1-8)를 맺으며 의를 행하고(참조, 요일 2:29), 더욱더 주의 형상을 닮아가는(참조, 고후 3:18), 하늘나라의 주민으로서의 삶입니다(참조, 고후 5:17).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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