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가 보잘것없는 인물로 이스라엘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이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점차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들을 위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는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들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18절). 이것은 사울 왕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이 말씀에 순종치 않고 적의 좋은 것을 탈취하는 데만 급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아니한 사울 왕은 자신을 책망하는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변명을 하였습니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고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습니다(20 -21절).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이러한 추한 변명을 이해하거나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의 의도를 망각한 사울 왕을 책망하였을 뿐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무엘의 책망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 그것은 더 높은 가치의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다른 이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전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우리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릴 때 그것은 곧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모든 것을 바치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란 우리들이 소유하고 우리의 땀으로 얻어 낸 모든 물질들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은밀한 것과 육신의 모든 능력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희생과 제물은 아담과 예수님에 의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하나님과 가졌던 교통 관계가 바로 이러한 전인적인 제사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의지 앞에 자신을 포기하셨으며 다가올 고통의 공포 앞에서도 피하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구원은 마침내 성취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희생은 매우 차원 높은 희생이며 값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산을 덮는 수천 마리의 숫양이나 강물처럼 많은 감람기름보다도 순종으로써 드리는 희생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는 영적인 제물이며 도덕적인 산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2.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드릴 수 있는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이 지켜 내려온 율법을 보면 제물은 어느 일정한 장소에서만이 드려지도록 요구되어져 있습니다.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자 하는 자가 율법에 규정하여 지정된 장소로 가서 드릴 때만이 그 제물이 유효한 제물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헌하는 자의 예물은 어느 정도의 시공에 의하여 제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순종이라는 제물은 어느 곳에서든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드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제물은 빈함과 부함의 구별 없이 모든 자가 다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너무 가난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나올 때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뜻에 복종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봉헌하는 제사입니다. 이러한 봉헌에는 제 삼자로서의 개입이나 중제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3. 그것은 다른 어떠한 제물로써도 만족 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드리거나 마음이 함께 동반하지 않은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그 자신이 빈곤하고 가난하여 우리들에게 제물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동물과 모든 기름진 것들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성의한 제물과 부득이한 의무로 드리는 제물은 그야말로 가증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사 1:13). 거룩하고도 신령한 영으로서 드리는 예배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