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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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하지 마라

출애굽기 20장 15절_ 하용조 목사

성령충만하면 도둑질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먼저 말씀으로 하루를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영을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축복된 사회로 만드는 방법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비결은 십계명 중 오계명부터 십계명까지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일계명부터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싸우게 돼있고, 본능적으로 남을 죽이게 돼있고, 본능적으로 강간하게 돼있습니다. 그런 죄인들이 모여서 함께 살다보니 얼마나 문제가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인들이 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몇 가지 원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원칙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간단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에는 더 이상 붙을 얘기가 없습니다.

죄책감을 상실한 세상

오늘 말씀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도둑질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말합니다. 소유의 개념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사회는 내 것, 네 것이 없어지고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사회입니다. 빼앗긴 사람은 가만있겠습니까?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 대고 싸우는 짐승들과 똑같습니다. 복수하고 분노하고 억울해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렸다면서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입니다.

소유물뿐만 아니라 인격도 도둑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결혼을 통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망가뜨려놓기도 합니다. 우리가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마는 어떤 나라에서는 어린아이를 장애인을 만들어서 성을 팔고 살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고도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를 훔쳐서 성 노리개로 팔면서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러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마음의 성을 쌓습니다. 마음 가운데 철조망을 치고 유리조각을 세워놓고 선을 그어놓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둑질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신뢰가 깨집니다. 신뢰가 깨지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소통이 없어집니다. 대화가 단절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대화의 단절은 나와 내 자신과의 단절입니다. 양심이 있거나 죄책감이 있으면 내 자신과 단절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심과 죄책감이 없으면 내 자신과의 대화가 안됩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뿐 속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속에 꽁꽁 묻어놓습니다. 두려워서 자기 속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유대인 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저서 <나와 너(Ich und du)>에는 수백 번, 수십 번 책을 읽어도 좋을 만큼 아주 좋은 말씀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 세상은 ‘나와 너’가 아닌 ‘나와 그것’이라는 관계로 설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내가 필요한 사물로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인격적인 대접을 하지 않고 돈으로 취급합니다. 또한 계급으로 취급합니다. 계급에 따라 대우하는 것이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거기에는 대화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의 극치는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빛 속에 어둠이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라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의 단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질은 원죄의 결과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축복된 사회, 열린 사회로 만드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일찍 들어간 나라에서는 대부분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것을 큰 죄로 봅니다. 우리는 6·25때부터 새치기 하는 훈련이 생겼습니다. 새치기를 안 하면 먹고 살 수 없어 죽기 때문에 그저 남을 짓밟고 새치기를 했습니다. 이제 잘살게 되었는데도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서 어디서나 로비하고, 새치기를 하는 것이 문화가 돼버렸습니다. 습관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GNP가 아무리 올라가도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단순한 윤리 같지만 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위험천만한 일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도둑질의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요? 바로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의 영이 내안에 들어오면 예수님도 팔아먹고 헌금도 도둑질합니다. 또한 도둑질의 배후에는 인간의 죄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 인간의 야망이 있습니다. 사탄의 영은 간음의 영이요, 살인의 영이요, 도둑질의 영이요, 거짓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도둑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네가 먹을 수 있으나 단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6~17).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마시지 왜 병 주고 약 주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선을 다룰 능력은 있었지만 악을 다룰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냥 악에게 그대로 당하는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만이 다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심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심판할 수 있습니까? 악을 심판하고 악을 다룰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너희는 악을 관리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악은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악이 못 들어오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악에다 손을 댄 것입니다. 그 순간 악이 만드는 모든 죄의 씨가 인간 안에 뿌려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사탄의 말, 사탄의 생각을 할까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악을 다룰 수 있다는 오만 때문에 손을 댄 것입니다.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선악과의 결과입니다. 원죄의 결과입니다. 단순하게 남의 것이 좋아서 훔친 것이 아닙니다. 이 안에는 사탄의 영이 있고 원죄의 영이 숨어있어서 나도 내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내심과 절제로는 막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도둑질입니다.

도둑질은 어려서부터 막아야

여호수아 7장 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진멸시켜야 할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며 삽디의 손자이며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진멸시켜야 할 물건의 일부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분노가 이스라엘에 대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아간의 도둑질에 대한 기록입니다. 전쟁에서 전리품은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아간이 중요한 외투와 몇 가지 전리품을 훔쳤습니다. 그래서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를 하게 됩니다. 여리고성에서는 승리를 했는데 여리고성과 비교할 수 없이 약한 아이성에서는 참패를 당합니다.

여러분, 도둑질하면 여러분의 사업, 여러분의 인생이 참패를 당합니다. 도둑질해서 잘 먹고 잘 살 것 같죠? 아닙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비참해집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가룟 유다는 헌금을 도둑질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게 습관이 되니까 결국 예수를 팔아먹게 됩니다.

도둑질을 어렸을 때부터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인생의 황금기에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요즘은 논문도 베끼는 세상입니다. 도둑질은 절도범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학자들에게도 수없이 많습니다. 아주 고상한 도둑질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도둑놈으로 몰려 죽은 사건이 기록돼 있습니다(행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러움 때문에 자기 집을 팔아서 헌금을 했는데 그중 일부를 빼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는 헌금을 많이 한 것처럼 박수를 받았지만 성령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안식일·십일조를 도둑질하는 것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안식일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7일 중 6일은 너를 위해 쓰고 하루는 나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거룩하게 지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0:8~11).

그런데 요즘은 주일날이 두 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오는 시간, 가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이 두세 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늦게 왔다가 일찍 갑니다. 고작 1시간 드리는 예배도 별 핑계를 다 대가면서 하나님의 것을 직접 도둑질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것을 직접 도둑질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수입의 90%는 자신을 위해 쓰고 10%는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가 돌려주는 것은 잘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십일조를 떼먹는 것은 도둑질한 것과 같습니다.

말라기 3장 8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칠 수 있을까? 그런데 너희는 내 것을 훔쳤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훔쳤다고 그러십니까?’라고 말하는구나. 너희가 내게서 훔친 것은 십일조와 예물이다.”

주일을 훔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직접 훔친 것입니다. 십일조를 훔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돈이 있어서 헌금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예 십의 일을 드리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웃의 인격을 도둑질하는 사회

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훔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하나님이 해준 것도 내가 한 것처럼 도둑질해 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기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 바로 목사입니다. 교회 부흥을 내가 시킨줄 압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가로챕니다. 예배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육계명은 이웃의 생명을 훔치지 말라는 것이고, 칠계명은 이웃의 순결을 훔치지 말라는 것이고, 팔계명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것도 있지만 부정한 상거래를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부정한 일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둑질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않는다”(시 37:21)는 말씀이 있습니다. 남의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또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사채처럼 고리대금을 놓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출애굽기 23장 8절에 “뇌물을 받지 마라.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인의 말을 왜곡시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웃의 것을 도둑질하고, 이웃의 시간을 도둑질하고, 이웃의 인격을 도둑질하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보니 사회 전체가 일상화 돼버렸습니다.

영혼이 깨끗한 사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도둑질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대로 씁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재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라고 재물을 주신 것입니다. 시간과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아픈 것은 내 몸 관리를 잘못해서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내가 도둑질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욕심도 욕심입니다. 육신을 지나치게 학대한 것입니다. 내가 아픈 체질이기 때문에 아프겠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픈 것입니다. 안 먹어야 될 음식을 먹고, 바라보지 않아야 될 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내 몸을 학대하기 때문입니다.

도둑질의 원인에는 사탄이 있고, 인간의 죄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빌 2:3)는 말씀과 정반대입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들이 모두 도둑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둑질을 피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도둑질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비어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속을 비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속을 비우면 사탄만 들어갑니다. 여러분의 내면을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비어 있으면 다른 게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영이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으면 다른 영이 못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비우는 것은 기초적인 얘기고,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큐티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으로 하루를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영을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잡생각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딤전 6:10). 돈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약 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100% 깨끗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 말씀처럼 도둑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일평생 죽을 때까지 영혼이 깨끗한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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