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막 14:3-9

제    목 : 향기를 발하는 신앙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막 14:8)


 베다니라는 동네에 문둥병에 걸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시므온이 불치의 병을 고침 받았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시므온이 예수님을 청해다가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에 한 여자가 굉장히 비싼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한 방울만 뿌려도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향유인데 그 많은 향유를 모두 부었으니 얼마나 향기가 진동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옆에 있던 가룟 유다가 그것을 보고 '어찌하여 그것을 허비하느뇨'하면서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가룟 유다를 책망했습니다.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일에도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다른 여자들이 무덤에 가서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만이 아낌없이 옥합을 깨뜨렸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향유를 발라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옥합에 든 나드 향유는 남자가 1년동안 꼬박 벌어야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로써는 아마 결혼 자금으로 모아 둔 돈으로 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 여자의 정성을 아시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 2:15, 16에 보면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되어야 하고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꽃이 향기를 발할 때 벌과 나비가 날아오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향기를 발할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옥합의 향유같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향기를 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인생의 가장 큰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오늘 이 옥합의 향유와 같이 향기를 발할 수가 있습니까?




 1. 자신이 깨어져야 됩니다


 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결코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는 절대로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적게 깨어지면 적은 향기를 나타내고 많이 깨어지면 많은 향기를 나타내어 깨어진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육성과 고집이 깨어져야 향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만도 깨어지고 아집도 깨어져야 향기가 나타납니다. 육성과 고집이 깨어지지 않으면 향기 대신 악취만 나타납니다.


 본문에 보면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향기를 온 집에 가득하게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지만 가룟 유다는 욕심이 깨어질 줄 몰랐던 사람이라 악취만 뿜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뜨리시기 위해서 여러가지 고통과 시련을 주십니다. 질병의 고통이나 물질의 고통이나 사업 실패의 고통이나 식구들을 통한 고통과 슬픔으로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많이 깨어지면 그만큼 향기를 많이 발하는 유용한 사람이 됩니다.



 2. 자신을 허비(헌신)해야 됩니다


 가룟 유다는 비싼 향유를 깨뜨려서 주님께 붓는 것을 보고 '왜 허비하느냐, 300데나 리온에 팔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면 더 좋지 않느냐'고 했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타산적인 가룟 유다를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의 마음속에는 도적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이해 타산을 초월하여 헌신할 줄 아는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향기를 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님께 허비할 때에만 주님은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허비의 원리가 곧 능력 있는 힘의 원리입니다. 허비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의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허비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천원만 써도 될 데에 만원을 쓰는 것이요 만원의 가치도 없는데 백만원, 천만원을 쓰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좋은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우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큰 아들은 아버지가 가치없는 아들을 위해서 재산을 허비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창기와 함께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너무 큰 재산을 허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은 허비하는 사랑이요 참다운 사랑은 허비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이 허비하는 사랑이 아니면 우리도 다 소망이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것을 허비함으로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허비할 줄 아는 만큼 유용한 사람이 되어 큰 향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는 허비할수록 좋은 것이지 '지나친 허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이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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