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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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 5장8절

제    목 : 성도가 가져야 할 눈


 마음이 청결단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번 귀로 듣는 것보다 한번 눈으로 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실제적인 경험을 갖게 합니다. 고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며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얼마만한 통찰력을 가진 눈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것을 보더라도 상당히 다른 입장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은 어떤 눈을 가지고 어떤 것을 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을 보는 눈


 어떤 사람이 택시를 타고서 택시 운전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기사님,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니까 이 운전 기사님이 하는 말이 '나 하나님 보여 주면 믿겠소' 하더랍니다. 그래서 꾀를 하나 생각해 냈답니다. 운전 기사한테 '아저씨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하고 갑자기 물으니까 내가 정신이 있으니까 이런 말을 하지요 하길래 '그럼 기사님 그 정신을 내게 좀 보여 주세요'하니까 그 운전 기사가 더 이상 말을 못하더랍니다.


 여러분 공기나, 전파나, 전기, 전자를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오히려 이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안믿겠습니다.


고후 6:18에 보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고후 5:7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달밤에 보면 구름 속에 달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름이 지나가는데 우리 눈에는 달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컵에 젓가락을 넣으면 곧은 젓가락이 구부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보는대로만 행하는 사람은 세상 물질이 끝날 때, 죽음이 올 때 공포에 사로잡히고 절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보이는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을 보는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보이는 것이다 없어져도 죽음이 와도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의 눈,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의 눈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청결'(카타로스) 하다는 말은 여러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깨끗하다(clean)는 뜻이 있습니다. 즉 혼이 묻은 옷을 빨아서 깨끗히 한다는 뜻이며 둘째는, 곡물에 껍질이나 겨를 까불어 내서 순 알곡을 만든다는 뜻이 있고 또 술에 물을 타듯이 금속에 비금속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unmixed) '순수한'(unadulterated)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렇듯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봅니다. 이중 삼중으로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쓴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즉 단순한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을까요?


 첫째로, 죄와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 상태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자신의 더러움을 회개하고 자복하지도 않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눈을 금덩어리로 가로막아 놓으면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이렇듯 탐심은 영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마 6:19-24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형식주의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형식과 외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겉 껍질만 보았지 속 알맹이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형식주의자는 뼈의 겉만 할을 뿐이지 정수와 골수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한 예로 미국의 신령한 교회로 큰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 중에는 꽉 짜인 프로그램도 없고 틀에 박힌 설교나 기도가 없이 그때 그때 은혜대로 찬송하고 말씀을 전하고 자유롭게 헌금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같이 형식주의자나 외식구의자는 참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교활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간사하고 교활해서 아무한테나 좋게 하고 양다리 걸치기를 잘하는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전도할 때도 생글 생글 웃으면서 '예, 예, 믿지요' 그러는 사람은 잘 안믿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순진하고, 소박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무섭게 반대하다가 믿게 되면 잘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까다롭게 트집만 잡고 의심하려고만 드는 사람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하고 어찌하든지 말씀과 믿음편에 서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라야 언젠가는 의심의 구름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어떤 대학생이 질문을 하는데 까다로운 질문만 자꾸 하길래 한번은 선교사님이 많은 손님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대학생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많은 사람한테는 맛있는 음식을 갖다 놓았는데 그 대학생 앞에는 생선 가시만 갖다 놓았답니다. 그래서 이 대학생이 선교사님한테 의아해 하면서 물었습니다. '왜 나한테는 이런 가시만 갖다 놓았습니까?'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자네는 성경을 읽을 때 맛있는 영의 양식인 고기는 다 빼고 꼭 소화 잘 안되는 것만 질문하는데 음식도 그렇게 먹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순하고 진실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운 모두 '나의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내가 내 죄를 고백하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히 씻어 주시옵소서 '하는 진실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겉보다 속을 볼 줄 아는 눈


 사람들은 겉을 보려고 하지 속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있듯이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이 형편없이 나쁠 수가 있습니다. 독사의 알은 알록달록하고 예쁘지만 그 속에는 독한 독사가 들어 있습니다.


 처녀 총각들 중매를 하다보면 처음에는 마음만 좋으면 된다고, 인물 잘나서 뭘하느냐고 하다가도 막상 중매하려고 들면 아무리 믿음 좋고 마음 좋아도 대부분이 겉모양을 제일 먼저 보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합니다. 속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카시아꽃이 활짝 핀 것을 보면서도 그 속에 꿀 몇 드럼이 들어있다는 것을 봅니다. 속을 볼 줄 아는 눈이 복된 눈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은 겉으로는 달콤해 보이나 그 속에는 멸망에 빠뜨리는 올무가 있는 죄악된 것들과 쓰디쓴 고난의 보자기 속에 들어있는 축복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3. 현재 보다 장래를 볼 줄 아는 눈


 사람들은 흔히 현재만 보고 장래를 볼 줄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 고모라성의 현재의 기름진 푸른 풀밭만 보았지 그 성의 죄악과 이후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소돔 고모라성이 불탈 때 비참한 운명이 되고 말았으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장래를 보고 선택했기 때문에 먼 장래에 큰 축복을 받고 잘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을 점령했을 때 아간은 당장 눈앞의 금덩어리, 은덩어리, 시날산의 멋있는 외투만 보았지 그 죄 값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 뿐 아니라 귀여운 처자식들까지 돌탕에 맞아 죽어 돌무더기에 장사 지내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음란하고 투전에 미친 사람은 당장에 말초 신경만 자극해서 쾌락을 누리는 것만 좋아했지 먼 장래에 임할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무서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많이 봅니다. 마귀는 언제나 먼 장래를 보지 못하도록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이 세상만 보고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현재보다 장래를 보는 눈, 이 세상보다 내세를 보는 눈이 복된 눈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보는 눈


 복된 눈은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봅니다. 할 수 없는 것만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보는 눈이 복된 눈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신문에 이런 만화가 실렸다고 합니다. 산 밑에는 그가 태어나서 자라난 작은 오두막집을 그리고 그 산 위에는 백악관을 그렸는데 그 오두막집과 백악관 사이에 사닥다리를 그려놓고는 그 밑에 글을 쓰기를 '이 사각다리는 지금도 놓여 있다'고 하였답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할 때 그 성공의 확률이 500분의 1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전투가 역사상500번 있었는데 그 중에 노르만디 작전이 한 번만 성공했기 때문에 500분의 499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옵시다. 그러나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맥아더 장군은 한번이라도 성공한 사례를 보고 적극적으로 '그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작전을 시도한 결과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어서 친구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그의 친구가 그만 수렁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수렁에 빠지면 죽는 줄 알고 절망에 빠져 울부짖기만 하더랍니다. 이때 비스마르크가 엽총을 그 친구 머리에 겨누고 '자네를 건지려고 손을 내밀었다가는 나까지 빠져 죽고 말겠네. 그렇다고 내가 자네를 그냥 놔두고 가면 심한 고생을 하다가 죽을 것이 아닌가. 내가 자네 고생하는걸 덜어주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겠네. 그러니 저승에 가더라도 내 우정을 잊지 말게 '하고 당기려는 체하니까 그 친구가 그제서야 죽을 기를 써서 반쯤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가 손을 내밀어 건져 주고 나서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그 친구에게 말하기를 '내 총은 자네의 머리를 겨눈 것이 아니라 자네의 생각이었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엇이나 부정적인 면만 보고 절망하고 실망 낙담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해결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처칠(Churchil) 수상이 한번은 옛날 어렸을 때 다니던 고향 학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과 교수들이 모인 강당은 조용히 처칠 수상의 성공의 비결에 대한 역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얀 은테 안경을 쓴 처칠 수상은 강단에 올라서서 말씀을 하는데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라고 딱 3마디의 말만 하고 내려갔지만 그 강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복된 눈을 가지고 복된 것을 바라보며 사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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