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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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야고보서 1장 9절-11절

제    목 : 가난과 부의 시련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시련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 시련들 중 한 가지가 물질로 인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부한 사람은 부한 대로 문제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시련들을 잘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시련의 두 형태

   원시 공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점차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문화를 형성하면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자들과 물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양자간에는 알력이 형성되었으며,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상승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좀더 좋은 환경을 차지하려고 하며, 부한 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에 필요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은 살펴보면 양자 모두 고통스런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가난한 자의 시련

   가난한 자들의 시련은 무엇보다도 물질의 빈곤에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사회 계층 내에서 물질의 빈곤으로 인하여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의 산업 사회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단지 생계유지를 위하여 일해야 하며 사회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분만 아니라 그들은 어떠한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받기도 어려우며 혹 기회가 온다 해도 가난으로 인해 부유한 자들과 같이 그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고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2) 부한 자의 시련

   부한 자의 물질적 풍요함이 오히려 그들에겐 시련이 됩니다. 물질의 풍요함은 그들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거나 나태 속에서 자족하게 하기도 하며, 세상 일락에 빠져 영혼이 부패하도록 방치하게도 합니다. 부한 자는 모든 일에 자기 본위가 되기 쉽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데 소홀하며,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또한 도적과 강도, 혹은 재난의 위협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2.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

   1) 가난의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9절). 야고보는 여기에서 '형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가난한 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인내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비결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난한 자나 부한 자의 구별이 없고 모두가 한 형제입니다. 따라서 생활의 빈곤함이나 사회 계층의 격차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를 받는 데 차별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공생애 전 기간을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보낸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는 자기가 하나님에 의하여 부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맏형이 되십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복되고 훌륭한 사회로 이주한 신분을 가진 자이며,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부의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10절). 야고보는 부한 자들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부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자와 함께 한 형제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분명 낮아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야고보는 바로 그 점을 자랑하라는 말입니다. 부한 자가 낮아지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부한 자가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한다면 결코 세상의 물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일락에 자신을 내맡기지도 않을 것이고 갈급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물질을 풍성하게 수여하신 분의 뜻에 따라 물질을 재분배함으로써 오히려 세인의 칭찬과 하나님의 더 크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부가 가져다주는 행복의 한계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하리라'(10, 11절). 물질적인 풍요는 확고한 것이 아니며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팔레스틴 지방의 기후 현상으로 이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즉 팔레스틴 지방의 들에 피는 풀과 꽃은 비가 온 뒤 잠깐 동안은 화려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시 태양이 내리쬐고 사막의 열풍이 불면 그것은 곧 시들어 말라 버리고 맙니다. 그와 같이 부(富)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초개와 같은 허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리켜 주님은 부자가 많은 부를 축적하고 나서 안락을 누리고자 계획하는 그 밤에 그를 취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참조, 눅 12:20). 따라서 성도들은 없어질 부가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한 일에 열중해야 할 것입니다.



< 예화 >

고려 공민왕 때 한 형제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동생이 황금 두 덩이를 주웠다. 아우는 그것을 한 덩이씩 형과 나누어 가졌는데, 강가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에 왔을 때 아우가 갑자기 자기 손에 든 금덩이를 물속에 던져버렸다. 형이 이상히 생각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때 아우가 대답하기를 '금을 줍기 전까지는 형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나 금을 나누어 갖고 난 후에는 갑자기 형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형 역시 금덩이를 강에 던져 버렸다.



< 주해 >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낮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흔히 겸손한 마음씨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외적으로 낮은 신분을 나타낸다(Adamson). 그 이유는 본 절이 10절과 대구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높음'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말한다. 그러나 보다 특수하게는 환난의 영광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랑'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기뻐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자랑은 기쁨을 표시하는 최고의 행동으로서의 자랑을 일컫는다 하겠다(Manton).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이 구절의 원문에는 형제라는 말이 없이 그냥 부요한 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들을 불신자들로 본다. 그러나 '자기의 낮아짐을'자랑하라는 말을 비꼬는 말로 보지 않는 한 신자를 일컫는다고 보아야 한다(김철손). 그리고 '자기의 낮아짐'이란 '겸허함'을 의미한다(Tuck). 따라서 본 절을 믿는 형제 중 부한 형제는 겸손해야 할 것이며 그 겸손으로 기쁨을 삼으라는 뜻이 된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 여기서 '뜨거운 바람'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 '시로코'(sirocco)를 일컫는다. 이 바람은 팔레스틴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봄철에 주로 부는데 한번 불면 밤낮 끊이지 않고 분다(Adamson). 따라서 이 바람이 한번 불면 웬만한 풀과 꽃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다 말라 죽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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