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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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 23:32-38

제    목 : 용서합시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어제가 바로 식목일이었는데, 여러분도 나무를 심으셨습니까? 우리의 삶이 자꾸만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삭막해져 가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들 곁에 푸른 나무와 지저귀는 새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산과 들에,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푸른 나무 한 그루씩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용서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제일 첫 번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없는 자신을 핍박하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목박는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못박는 무리를 저주하는 기도도 아니고, 자기를 고통에서 놓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도리어 저들이 알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어느 사본에는 헬라어 원어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Father, forgive them)하는 기도를 한번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되풀이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갈보리 산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셨고, 못박기 위해 십자가에 눕힐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굵은 못이 살을 뚫고 들어갈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십자가 형틀을 못박은 채 일으켜 세워 찢어지는 고통을 느낄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하셨고, 무리가 예수님을 조롱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의 옷을 놓고 제비뽑을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사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십자가에 피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목적도, 모두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영원한 지옥불의 형벌을 받아야 할 인간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마 5:43, 44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예수님은 이 설교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던 두 강도 중 하나가 회개하면서 구원을 요청할 때, 예수님은 그 강도를 용서해 주시면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복음이란, 이처럼 한마다로 죄를 용서해 준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이 극심한 가운데도 제일 첫 번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고 핍박하는 무리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서 몇 십년 감옥살이 해야 될 죄를 뜻밖에 용서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면 일평생 감사해도 못다할 터인데,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죄사함 받아 천국의 백성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값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 받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이제 어떤 자세로 생활해야 할까요? 바로 내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따라 남의 죄를 용서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란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촌에서 그들을 돌보면 목회하던 중, 여수·순천 반란 사건 때 한 공산당원 청년이 손목사의 두 아들 동신 군과 동인 군을 총살시켰습니다. 그후 반란이 진압된 다음 그 공산당을 체포하여 사형시키려고 할 때, 손 목사님은 그를 죽인다고 내 죽은 아들들이 살아나느냐고 하면서 구명운동하여 석방시키고, 그를 죽은 아들 대신 양자로 삼았습니다. 손목사님의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한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원자탄'이란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지 이제 몇 가지로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모르고 지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라고 기도하신 것은 뜻깊은 말씀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영적으로 보면 자기의 뜻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악한 마귀가 들어 있어서 마귀의 지배를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장차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 역시 알지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회개치 않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 참혹한 형벌을 받게 될 터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우리는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용서하며 그들이 구원을 받도록 전도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2. 나의 죄도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내게 죄를 범하는 자를 몇 번까지 용서해줄까요? 일곱 번까지 하면 될까요?"하고 물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490번만 용서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인 줄 압니다.


 그리고 나서 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갚을 것이 없어 애원하기에 탕감해 주었더니, 그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니까 당장 갚으라고 하면서 아무리 애원해도 듣지 않고 옥에 가두는 것을 보고, 그를 다시 끌어다가 옥에 가두면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18:2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지옥 갈 죄인인데 용서함 받았으면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다시 지옥간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인 줄 압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만큼 우리 역시 헤아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못보는구나"하신 말씀대로, 결국 우리도 같은 죄인이면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남을 흉볼 때 손가락질 하는데 그때 세 손가락은 자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1946년 독일 변방에서 고트레브스키란 깡패가 한 농장에 들어가 하멜만이란 사람의 10식구를 다 죽이는 가운데, 하멜만 씨는 총 네 방을 맞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 살인범 고트레브스키는 20년 형을 마치고 출감하게 되었으나 갈 곳이 없어 내보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멜만은 그를 자기가 보호하겠다고 자기 집에 맞아 들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하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용서해 주셨으니 나도 이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3. 용서함이 나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 십년 전에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옥에 갇힌 뒤 그 강도의 가족들이 밥을 굶는다는 말을 듣고, 피해자의 아들이 쌀을 한 가마 사다 주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쌀을 사다 준다고 비난하는 말을 듣고 그는, '만일 내가 그 자식들에게 원수를 갚으면 그 자식들은 우리 자식들에게 원수를 갚고, 자식의 자식이 또 원수를 갚게 되면 악순환이 계속될 것 아닙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복수가 끝나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용서할 때 참으로 악한 자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첫번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회심 전 사울(바울)이 거기에 찬성하고 지휘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머리가 깨지고 척추와 늑골이 다 부서져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무릎을 꿇고 큰 소리고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성경 주석가들 중에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강한 빛을 받고 꺼꾸러지기 전, 이때에 순교하는 스데반의 천사같은 얼굴과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면의 빛을 받고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스데반의 기도 때문에 대사도 바울 같은 인물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죄인인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나 또한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며 용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수를 용서할 때 어떤 축복이 돌아올까요?


 첫째, 남을 불쌍히 여긴 만큼 자기도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자기도 잘못해서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나와 내 가정에 평안을 얻습니다. 내가 아는 친구 목사 한 사람은, 미국에 유학간 사이에 아내가 실수하여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나중에 알게 된 그 친구는 몇 달 동안 고민하다가 '나도 하나님 앞에 잘못이 있는 사람인데 용서해 주자 더욱이 호세아는 몇 번이나 집을 나간 창녀같은 고멜도 데려다 살았는데 나도 용서해 주자'하고 용서해 주고 살았는데 후에 그 가정이 엄청나게 축복을 받고 자녀들도, 교회도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혼했다면 그 아내는 폐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고아원에 들어가 거지같이 되었을 것이고, 자신도 목회를 못하고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욥기 42:9이하에 보면 욥이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며 독설을 퍼붓던 친구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릴 때, 그 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했습니다.



 4. 죄의 심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상대방이 회개도 하지 않고 극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할 때에도 우리가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증오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롬 12:17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했고, 19-21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증오심이나 복수심을 갖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단이 우리 마음 속에 집어 넣는 독소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사마리아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그들이 예수님과 제자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 야고보와 요한이 격분해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어떤 소년이 '용서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그의 어머니는 '그것은 꽃이 짓밟힐 때에도 내뿜는 향기와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짓밟힘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억울함을 당해도, 독소를 내뿜지 말고 사랑의 향기를 뿜어야 합니다. 아예, 악한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모라비안(Moravian) 선교사들이 에스키모인들에게 '용서'라는 말이 없어서 길게 설명하기를 '이쑤 마기중 나이 마이너마크'(Issu magijou nai mainermik)라고 설명했는데, 그 뜻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것'(Not able to think about it anymore)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증오심이나 복수심 자체를 갖지 않는 것이 용서하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악한 생각을 품지 말아야 겠습니다. 잊어버려야 겠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회개하고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을 때, 우리 죄를 깨끗이 용서하시고 기억도 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 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하셨고, 사 44:22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게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남의 죄를 용서하되 생각과 마음 속에 기억도 하지 않고, 잊어버리기까지 용서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죄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  멘-


용서합시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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