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삼하 18:9-15

제    목 : 반역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세상에서도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중요시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된 것으로서, 하늘 나라의 모형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비슷해서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다윗 왕이 그 아들 압살롬을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가장 사랑하고 잘 생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궁궐에서 쫓겨나 허둥지둥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피난을 해서 요단을 건너 마하나님에 이르렀을 때, 압살롬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자기 부친 다윗 왕과 그 부하들을 진멸하려고 쳐들어 왔습니다. 이 때에 다윗 왕의 부하 요압 장군과 아비새 장군과 잇대 장군 등 몇몇 장수들이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때에 다윗 왕은 부하 장군들에게 '꼭 승전하고 돌아오라' 는 당부는 하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그 아들 압살롬을 위해서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고 신신 부탁을 했습니다. 패역무도한 자식이건만, 그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부디 죽이지 말고 너그럽게 대접하라' 고 한 것입니다.


 마침내 에브라임 수풀에서 접전이 벌어져 싸우던 중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숲 속을 달리다가 큰 상수리 나무 가지에 그의 머리털이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리고 노새는 빠져나갔습니다. 이때, 한 군사가 요압 장군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더니 '네가 그걸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그리 했었다면 은 열 개와 띠 한 개를 주었으리라' 했더니, 그 군사가 하는 말이 '은 천 개를 준다해도 왕의 아들을 죽일 수 없나이다' 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압 장군이 군사를 데리고 가서 작은 창 세 개를 압살롬의 가슴에 꽂고 부하 열명이 달려들어 쳐 죽였습니다.


 이때 다윗 왕은 두 문 사이에 앉아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승전의 소식보다도 그 아들 압살롬의 생사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올 때마다 '압살롬이 어찌 되었느냐?' 고 물으면서 혹시 그 아들이 죽었을까봐 걱정했습니다.


 마침 아히마하스란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오는 것을 보고 '내 아들 압살롬이 잘 있느냐?' 고 물었을 때, 왕의 그러한 심중을 헤아린 아히마하스가 엎드려 절하면서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구스 사람이 달려 왔을 때도 '내 아들 압살롬이 잘 있느냐?' 고 물었는데, 이에 대해 구스 사람이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보고했더니,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아' 라고 하며 슬피 울었습니다.


 얼마나 그칠줄 모르고 슬피 울었던지 요압 장군이 들어가서 '왕과 왕의 자녀와 왕의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십니까?... 이제 봤더니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 빨리 일어나서 왕의 신복들을 위로하시지 않으면 왕의 평생에 없었던 큰 화를 당하실 것입니다' 라고 위협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다윗 왕은 성문에 올라 앉아 백성을 위로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과 흡사한 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사랑을 통하여 반역하고 대적하는 인간을 사랑하시고, 목숨을 버리시키까지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역하는 자들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입니까?



 1. 찾으시는 사랑


 다윗은 그 불효막심하고 못된 자식이지만, 제발 죽지 않고 돌아오기만 간절히 소원하여 싸움터에 나가는 장군들에게 신신 당부하기를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고 간곡히 말하고, 문에 앉아서 그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신의 왕위를 빼앗고 자기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그 패역무도한 자식이건만 죽지 않고 살아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잃은 자,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난 죄인들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고 계시는 모습을 세가지 비유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세상에 찾아오시는 것을 의미하며, 그 다음은, 여인이 잃은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 들고 온 방안을 쓸며 찾는 비유인데 이는 성령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며, 마지막, 탕자의 비유는 성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놀라운 사랑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패역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멀리 떠났으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찾고 계십니다.



 2. 용서하는 사랑


 다윗은 자기(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으려는 그 패역무도한 아들이지만, 용서하는 사랑으로 그 아들이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두 문 사이에서 안절부절하며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어떤 부잣집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얼마 안가서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더 살 수가 없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도무지 아버지가 자기 같은 못된 자식을 용서하고 받아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눈물의 편지를 써서 보내기를 '만일 이 못된 자식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면 아무날 아무시에 기차를 타고 우리 동네 앞을 지날 터인데, 내가 지나면서 볼 수 있도록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흰 손수건 하나를 걸어 주십시오. 그러면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들어 가겠습니다.' 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 날이 돌아와서 기차에 몸을 싣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 갑니다. 점점 자기 집 동네가 가까울수록 이 아들은 초조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목을 길게 내밀고 자기 동네를 바라 보니, 대추나무 뿐만 아니라 앵두나무 할 것 없이 나무마다 가지마다 흰 손수건, 흰 보자기, 흰 홑이불, 이불 호청까지 전부 하얗게 눈과 같이 덮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부모는 혹시나 아들이 잘못 보고 지나칠까봐, 흰것이란 흰 것은 있는 대로 다 내다가 나무에다 걸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이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찬송가 317장의 가사를 되새겨 보십시오.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감당하고 못 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또한 사 1:18에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셨고, 한 강도는 죽는 순간에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를 용서하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3. 목숨을 버리는 사랑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 패역무도한 아들이건만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좋을 뻔 했다' 고 자기 목숨까지 주고라도 아들의 생명을 살리기 원하는 부모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홍역을 하거나, 몹시 아파서 괴로워 할 때는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 생명을 대신해서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죄를 위해서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주시고 죽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 다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님만 믿으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그 죄를 대신 갚아주사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기로 결심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어버이 날을 하루 앞둔 오늘 다시금 한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동시에 더 크고 넓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반역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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