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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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설교 - 누가복음 10장 17절 ~ 22절, 중요한 것만 못가진 사람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막 10:21)


 서양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두루미가 개울에서 우렁이를 잡아 먹으려고 찾아 다니고 있는데 아름다운 백조가 가까이 와서 말을 건네려고 하자 백조를 본 적이 없는 두루미가 먼저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더니 백조가 '나는 백조요'했습니다. 두루미가 또 '어디서 왔소?' 하고 묻자 백조가 '하늘 나라에서 왔습니다' 하자 두루미가 물었습니다. '하늘 나라요? 그것이 뭐죠?' 그러자 백조는 하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곳인지를 곧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성은 순금으로 되어 있고 백옥과 진주문이 있으며 수정과 같이 맑은 생명수가 흐르는 곳이지요'. 두루미가 백조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러면 하늘 나라에도 우렁이가 있는지 말해보시오' 라고 하자 백조는 '없지요. 아마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두루미는 '그렇다면 갈 필요가 없구먼. 난 우렁이를 좋아해!' 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아름다운 부자 옷을 입은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부요하고 유능한 사람으로만 보았으나 예수님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기갈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 청년은 별 것을 다 가지고 있었으나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와 갈증을 해소할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하늘 나라의 영원한 축복 대신에 어리석게도 분토와 같은 세상의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늘 나라 가는 길을 막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간직하고 간직해야 할 것을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요하고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또 어떤 이는 매우 학식이 높고 인품이 있고 어떤 이는 그와 정반대로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형편없는 학식과 인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세상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맵니다. 세상 쾌락에 빠져 보기도 하지만 거기엔 참 만족이 없습니다. 죄의 쾌락을 좇아 다니다가 지쳐 공허해진 가슴과 기갈한 영혼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잘못된 곳에서 만족을 찾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말씀하시기를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오직 한 분 하나님 밖에는 선하신 분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시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히 선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선하신 분이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청년에게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요, 하나짐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씀했더니, 그 청년은 자신만만해서 머리를 들고 '오! 선생님, 그것은 이미 다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의 삶의 중심 부분을 찔렀습니다. 그는 도둑놈도 아니요, 강도도 아닙니다. 그의 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을 보십시오. 슬픈 기색을 하고 왔던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죄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돌아가는 발걸음마다 슬픔이 가득한 것을 보십시오. 그의 고개는 아래로 떨구고 어깨는 축 늘어졌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자살 행위였습니다. 구원을 배척하고 지옥행 길로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부자 청년의 선택을 중심으로 우리가 참으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청년이 소유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면 다 되는 줄 압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돈이 많은데도 불행하고 비참합니다. 부자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두 청년이 하루에 1달러를 벌기 위해 고생하다가 한 사람은 목사가 되고 한 사람은 계속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그 목사는 가난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25년 후에 그 목사는 거부가 된 친구에게 '너는 하루에 1불씩 벌며 고생할 때만큼 지금도 행복 하냐?'고 물었더니 '아니야, 절대로 행복하지 않아. 내 마음에는 평안도 없고 기쁨도 없고 무거운 짐과 책임감만이 나를 짖누르고 있어'라고 하더랍니다.

 부요한 사람들 중에 노이로제 환자가 더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돈을 저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돈을 정직하게 벌고 바르게 쓴다면, 돈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천국에서의 영생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한 여왕은 침상에서 죽어가며 부르짖기를 '한 시간만 더 살게 해준다면 백만불을 내 놓겠다'고 하다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지구상의 모든 돈을 다 가지고도 단 일 분의 생명을 연장할 수가 없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살 수가 없습니다.

 둘째, 도덕심이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흠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훌륭한 인격이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청년은 도덕적으로 한 군데도 흠잡을 데라고는 없는 당시의 훌륭한 시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시장을 뽑는다면 이런 사람을 뽑을 것이고 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을 사위로 얻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없는 인간의 선행은 진정한 선이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이래 인간은 누구나가 그 죄성을 물려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셨듯이 인간의 속에는 온갖 악독과 더러움이 가득하며, 바울의 고백처럼 선을 행하고자 원할지라도 선을 행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선행이 구원 받는 조건이 된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절대적이며 완벽한 선을 행할 자가 이 세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을 만한 완전한 선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종교의 형식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하면서 종교 의식을 행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교의 형식만 가지고는 내면의 영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종교의 형식이 우리를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또한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 합니다.

 스탠리 죤스(Dr. E. Stanely Johns) 박사는 '나는 세계의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과 12년 동안을 한 책상에서 교제해 왔습니다. 그들이 설파하는 교리들은 다 들어보았는데 예수님만이 인간의 불행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종교가 인간에게 만족과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인격적 교제를 가질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넷째, 좋은 지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젊어서 적합한 때에 자기 인생에 있어서 마땅히 구할 것을 찾으러 예수님께 나아오는 지각있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쾌락이나 부귀 영화가 아니라 영생을 찾았습니다.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부도, 건강도, 명예도 다 찾아야 되겠습니다마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영생을 찾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만난다고 했습니다.

 한편 이 청년은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채움 받기 위하여 올바른 장소에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왔습니다. 영적인 도움을 구하러 세상을 찾아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 직접 나아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이 부자 청년은 이처럼 부와 도덕과 종교심과 좋은 지각들을 다 갖추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도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다 못가진 것과 같습니다. 막 8:36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2. 예수께서 청년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구주 되신 자신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과 신학을 논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친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시고 모든 질문의 응답이 되시고 모든 필요의 충족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사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아 주십니다. 그 뿐 아니라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나중에는 천국에까지 데려다 주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청년을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원하시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구주가 되시기를 원하며 지금도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나름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인류에게 지대한 공헌을 끼치는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해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오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들의 발걸음 역시 세상의 악인들과 다를 바 없이 영원한 지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물었던 그 부자 정년에게 먼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은 청년에게 영생을 얻는 길을 주시되 그에게 십자가 질 것도 요구하셨습니다. 그 청년의 십자가는 그의 많은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재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재물이 예수님과 그 청년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고 결국엔 그 청년을 영원히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과 예수님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게 하겠습니까? 그것을 포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몇만배 귀한 것으로 여러분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스미스(Gyssy Smith) 목사님이 미국의 보스톤에서 대집회를 가질 때의 일입니다. 어느 여자가 자기의 5살난 아들에게 스미스 목사님과 악수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5살난 소년은 목사님과 악수를 하는데 오른손을 내밀지 않고 왼손을 내밀더랍니다. 그래서 왜 소년이 오른손을 내밀지 않는가 이유를 알고 보니까, 오른손 안에 공기돌 3개를 꼭 움켜 쥐고 있더랍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영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천국에까지 인도해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헛된 쾌락과 가치와 죄된 습관을 붙잡고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을 버려야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구원과 기쁨과 참된 만족을 얻게 되는데도 말입니다.

 셋째, 하늘의 보화를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나를 따라오면 하늘의 보화가 주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행로가 끝날 때, 지옥으로 떨어지는 대신에 천국으로 올라가고 눈물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주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소유를 이웃에게 나누고 주님만 좇으면 하늘에 보화가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이 청년은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첫째, 구주를 거절하고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자기의 선행과 자기의 방법대로 구원받으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행실과 공적과 자기의 의로써 구원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예수님을 등지고 가버렸습니다. 한 순간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천국을 버리고 지옥을 선택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둘째, 슬픔을 가지고 걸어갔습니다.

 부자 청년은 그의 생애에 가장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자기의 소유를 더 사랑함으로 포기하지 못하여 결국엔 영생의 길 대신 자기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돌아가는 모습이 어떻다고 했습니까?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기뻐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웃지도 못하고 슬퍼하면서 지옥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오늘날도 죄를 버리지 못하고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서 구원 얻기를 원하면서도 멸망의 길을 택하여 가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외면하면 아무리 세상의 좋은 것을 다 겨졌다해도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자 청년은 모든 것을 소유했으나 참으로 중요한 것을 잃은 어리석은 부자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이 다 내 것이라해도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늦기 전에 버려야 할 죄를 버리고,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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