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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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립보서 1장 9절-11절

제    목 : 바울의 기도


   두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밀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노인이 뒤에서 미는 사람에게 '앞에서 끄는 분이 댁의 아버지이십니까?'라고 묻자 '예, 그렇습니다.'라고 뒤에서 미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앞에서 끄는 사람에게 '뒤에서 열심히 미는 분이 댁의 아들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아니요.'라고 끄는 이가 말했다. 그것은 뒤에서 열심히 미는 사람이 딸이었기 때문이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지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뜻하며 '총명'은 판단력을 의미한다. 대개 사랑으로 표현되는 열심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그 사랑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꾸준한 지식이 겸전되지 않을 때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사랑에 분별력이 없으면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다. 맹목적인 사랑은 오히려 진실을 흐리게 하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까마라'(Camara)는 '사랑이란 가엾은 자를 마땅히 불쌍히 여기고 악을 행하는 자는 분별하며 꾸짖을 때 참되게 행하여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사랑'에 지식과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분별하며.' 이 말의 의미는 '시험하다'는 뜻으로서 원래 금전렝봉晥동전의 순수성을 시험한다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결국 이것은 성도들이 인간과 세상의 일에 대하여 옳게 볼 줄 아는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진실하여'라는 헬라어 <eijlikrinei'"  에일리크리네이스>는 '햇빛'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동기나 행위에 있어서 사심 없는 순수하고 맑은 삶을 가리킨다. 공명정대한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임을 밝히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기도는 우리의 목적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큰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번에 심판에서 자유하고 우리가 죽을 때 천국으로 인도함 받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 속에서 재창조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입니다. 기도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빌립보 교인을 향한 바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 되며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풍성한 사랑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 풍성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참조, 고전 13: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지식이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막연한 사랑도 값싼 동정의 사랑도 아닙니다. 이 사랑의 지식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총명입니다. 즉 통찰력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통찰력 있는 눈으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 역시도 그러한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는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분별력 있는 사랑이어야 하며 선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악에 대해서는 징계로 나타내는 분별력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2.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진실이란 빛에 비추어 보아 한 점 티끌이 없는 순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는 불완전합니다. 육체도 불완전하고 생각도, 행위도 불완전하며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완전해야 한다고도 하지 않고, 인간은 본래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허물을 방임해도 좋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인위적으로 위장하여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범죄하고 숲 속에 숨어서 자신을 위장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감추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허물을 감추기를 좋아했던 바리새인을 일컬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처녀가 신랑을 위해 순결을 보존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순결성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의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호의호식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의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내적인 열매뿐 아니라 외적인 열매도 맺어야 합니다. 그 외적인 열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의 원줄기인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요 15:1-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됩니다(11절).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이 기도를 통해 더욱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착근시켜야 합니다.


   4.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지고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에 순종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고난도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에 혈안이 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진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기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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