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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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주제별 예화모음)

▣ 주님의 군사

나는 과연 주의 군사인가. 전쟁이 없을 때도 칼을 갈고, 나를 훈련시키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군사라면 날마다 나를 쳐 복종시켜야 할 것인데, 내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거창한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이요셉의 ‘요셉일기’ 중에서-

주님의 군사는 말씀과 기도를 방패삼아 매일을 승리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삶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그것은 순간을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 이 순간, 그리고 오늘 군대의 지휘자 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용사

‘용맹함’(heroism)은 오늘날 기독교가 상실한 음(音), 잃어버린 화음이다! 용맹함이 없는 군사는 실전에 참가하지 않는 군인, 곧 초콜릿 군병이다! 초콜릿 군병은 초콜릿처럼 물에 닿으면 풀어지고 작은 불기운에도 녹아 버리고 만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막대 사탕과 사탕 과자 같다. 초콜릿 군병은 전쟁 생각만으로도 갑작스런 오한이 들고, 전투 소집 명령에 온몸이 마비된다. 그러나 진정한 군사는 모두가 용사다! 그는 평안을 약속하는 부드러운 유혹의 손길도 거부할 수 있다. 고난과 질병, 죽음을 회피하라고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목소리도 거절할 줄 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보좌에 동석하는 전투병이 되려는가, 아니면 토해 내쳐지는 초콜릿 그리스도인이 되려는가? 그대는 인색한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요청된 영예를 보류하려는가? 아니면 다음의 글에 나타난 영광스런 업적을 두 배로 성취하려는가? “전쟁에 나온 이들은 모두 예수님이 온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심을 전하려는 온전한 마음으로 나아왔다. 이들은 모두 용기 있는 강한 자들이었다. 적어도 일당백, 일당천은 감당할 만했다. 이들은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이들의 얼굴은 사자의 얼굴 같고,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사슴처럼 발 빠른 자들이었다”(대상 12:8, 33, 38). 그대는 지난 시간 동안 예수님을 좇아 그분을 그대 삶의 왕으로 모셔 왔다. 그렇다면 이제도 그리 하라!

자, 이제 기독교의 ‘잃어버린 화음’인 용맹함을 회복해 온 세상을 그리스도께, 면류관을 그리스도께 드리자.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대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꾀병을 부릴 것인가, 전투병이 될 것인가?”

- 「초콜릿 군병」/ C. T. 스터드

▣ 돌격 앞으로!

여러분은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전략으로 많은 땅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한번은 아주 적은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한 도시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곳의 왕을 직접 만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그 도시의 왕은 제아무리 알렉산더지만 그 적은 군대로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냐며 항복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자신과 그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겠노라고 공언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군대를 일렬로 세워 낭떠러지를 향해 행진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알렉산더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한 사람씩 낭떠러지로 행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 도시의 왕은 저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도자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들에게는 제아무리 강한 요새도, 큰 군대도 견디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한낱 인간을 따르는 군대에게도 목숨을 건 담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모신 우리가 순종의 결단과 의지를 지니지 못해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적극적으로 거역하는 것은 물론, 능력이 모자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것 역시 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에, 능력이 모자라 순종하지 못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고 순종하고자 몸부림치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청종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 아니라 죄입니다. 그 죄에서 떠나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 또 하나의 고향

중국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가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10만 군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가을 달밤에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퉁소로 구슬픈 초나라의 가락을 불게 하였습니다.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퉁소 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인 추석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깊은 향수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아늑한 품과 같고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동심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찾으면 허무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고향을 가보아도 내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이유는 우리에게 또 다른 고향, 영원한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이 우리의 본향이요, 돌아갈 나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신령한 싸움을 하도록 부름받은 영적인 군사들입니다. 군사는 이 세상과 자기 생활에 얽매어서는 안됩니다.(딤후2:3-8)

▣ 여름철 군인들

1776년 겨울. 미국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가 펜실베이니아주 포지 계곡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식량은 떨어지고 옷은 찢어졌으며 전염병이 창궐했다.군인들은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워싱턴은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여름철의 군인과 햇빛 날 때의 애국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고통과 역경의 밤을 극복한 사람들만이 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 희생의 피를 흘린 사람만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오늘 여러분의 땀과 눈물이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고난이 없는 평안한 상태의 군인, 태평성대에 나라 사랑을 부르짖는 애국자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땀과 희생과 피를 쏟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편안한 곳에서 싹튼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시작됐다. 예수가 쏟은 붉은 피는 인류의 죄를 씻어냈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나이팅게일과 외로운 군인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간호원 한 분이 있다. 후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그 분은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문화적인 교육을 받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부모는 그 딸에게 좋은 가정을 갖도록 행복한 결혼을 권유했지만 나이팅게일은 다 거부했다. 그는 31세 때 허무감에 젖어 일기에. “살아갈 의욕이 없다. 텅 빈 공허감,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썼다.“ 삶의 가능성이 무엇인가." 공허 속에 살던 그는 31세 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31세에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만류도 뿌리치고 이 젊은 여인은 전쟁터를 찾아갔다. 피 흘리며 쓰러지는 전상자들을 붕대로 싸매어주고 닦아주고 붙들어주고 사랑으로 돌보아주며 3년 동안을 도왔다. 외로운 군인들은 나이팅게일만 지나가게 되면 마치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처럼 인사하고 경배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희생을 거쳐서 그는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후 병원마다 간호원이 없어서는 안되도록 제도화시켰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 그의 시체를 영국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모시려 하자 나이팅게일은 그런 자격이 없으니 가족묘에 묻어달라고 했다. 31세 때 더 나갈 수 없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였던 나이팅게일은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찾고야 말았다.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참고 견디어 우리의 인생 경주장에서 승리를 하여야겠다.

▣ 국군이여 힘을 내라

올해는 한국교회 군 선교 63주년, 군목 파송 6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다.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의 이면에는 군 선교를 위해 땀 흘린 이들의 헌신이 자리잡고 있다. 군 선교는 대학 복음화와 손을 잡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을 견인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생활과 군복무 중에 복음을 접하고 새로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군 선교 현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현장 사역자들의 일관된 보고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군 선교를 잃어버리면 한국교회는 미래를 잃어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해병대 병영 내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를 보며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두렵기조차 하다. 그뿐인가. 군내에서의 종교 차별과 동성애 논쟁이 가속화되면서 군 선교 현장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6·25전쟁 중 무명용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우리 군에도 성직자가 들어와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가슴에 신앙의 철판으로 무장시키고, 기도로 죽음의 두려움을 없게 하여 주시고, 믿음을 갖고 죽게 하옵소서”라는 편지를 띄워 군종 제도가 실현된 것처럼 이제 장병 복음화를 향한 열정이 다시 활활 타올라야 한다.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 목숨을 건 싸움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즈 장군은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열한 척의 배에 700명의 병사들을 태웠습니다. 이렇게 적은 수로 멕시코를 정복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코르테즈 장군은 비장한 각오로 멕시코의 베라쿠르즈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 전쟁은 순박한 양이 호랑이 굴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습니다. 코르테즈 장군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타고 온 배 열 한 척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습니다. 700명의 군사들은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사는 길은 오직 이기는 것뿐이다. 지면 죽는다. 승리가 생명이다.’

병사들의 눈에는 불이 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은 목숨을 건 싸움이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출발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은 아무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지하는 것은 끊어버립시다. 싸움을 이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 기도: 주님, 이김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 묵상: 당신은 영적 전쟁터에 무엇을 가지고 나갑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거룩한 병사

몇 년 전, BC 300년경 고대 그리스에 혜성처럼 떠오른 25세의 전사를 다룬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그를 가로막는 모든 적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승승장구한 알렉산더는 당시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알렉산더가 속한 마케도니아 군대가 당시 가장 막강한 나라였던 페르시아 군대와 맞붙기 직전, 멋진 장면 하나가 영화에 등장한다. 알렉산더는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는 부하들에게 “오늘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라고 말한다. 한 군사 앞에 멈춰 서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묻는다. “자네는 지난 올림픽 경기에서 상대편 선수를 얼마나 멀리 집어 던졌는가? 오늘 그 기백과 힘을 발휘하겠나?” 그 군사가 알렉산더에게 결의에 찬 목소리로 “예!”라고 소리치자 군사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리며 환호한다.

영화에서 알렉산더는 병사들을 한 명 한 명 보면서 몇 번이고 멈추어 서서 페르시아 군대와 맞붙어 싸우겠다는 결의로 이글거리는 그들에게 싸움의 이유를 확인시킨다. 문득 나는 필요했다면 알렉산더가 부하의 마지막 한 명까지 다 찾아가 그리스의 영광을 위해 싸울 이유를 알려 주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각자 거룩한 분노의 힘으로 살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완벽한 그림이었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 빌 하이벨스

▣ 영적 싸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사탄의 공격에 대적해서 승리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탄과의 이 영적 싸움은 그리스도인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싸움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다가 처절한 패배를 맛보면서 가정을 갈등과 고통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탄이 부부의 생각 속에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면서 부정적이고 악한 생각을 따라 상대 배우자를 대적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사탄은 부부사이의 갈등을 부채질하는가 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들도록 부추깁니다. 직장상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부하직원을 괴롭히고, 범죄자들을 통해 삶에 공포와 아픔을 주는 일에도 관여합니다. 또한 인간의 평안과 기쁨을 공격해서 삶의 허무와 자포자기 하는 마음을 조장하지요. 그런가 하면 불신자들을 이용해서 그리스도인을 공격함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봉쇄해 버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 영적 싸움에서 사탄의 공격에 말씀으로 대적해서 승리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고통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사탄의 유혹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삶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 결과 매일 경험하게 되는 영적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해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강안삼 장로

▣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본 문 : 디모데후서 2:3-6

주후 32년 경 겨울에 로마 황제는 군인들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은 이교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칙령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그 직분을 잃을 뿐 아니라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300년 동안 무적의 사단이었던 12사단의 대장은 자기들의 부하를 불러모아 놓고 그 칙령을 읽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2사단 군사들이여, 여러분은 여러 전투에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황제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제국의 가이사에게 충성을 다 하는데 앞장섭시다. 내일은 우리 사단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얼마 뒤 두 명의 군인이 장군을 찾아 와 12사단에는 40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그들은 이교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장군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시오, 만약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무기를 압수 당하고 그 직책에서 쫓아 낼 것이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리 알고 깊이 생각하고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시오,"

그 날 밤 진영에서 4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시편을 읽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제사 참여를 거부하자 처형하라는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팔과 목이 묶인 채 제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얼어붙은 호수 근처로 끌려갔습니다. 해가 지자 그들은 벌거벗긴 채 호수 한가운데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세운 큰 전과(戰果)를 참작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호수 옆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고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한 사람을 위해 따뜻한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이들이 호수 가운데로 끌려가자 차가운 바람이 얼어붙은 호수 위로 불었습니다, 목욕탕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은 호숫가에서 장작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 보초병은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 가자 찬송 소리가 약해졌습니다. 그 때 보초병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와 함께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천사의 찬송 소리가 바뀌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39명, 순교자 39명, 그리고 39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때 그 보초병은 따뜻한 목욕탕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즉시 그 보초병은 무기를 놓은 채 소리 질렀습니다. "여기 내 옷을 입으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소!" 그리고는 그 보초병은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를 향해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다음날 아침 장군은 죄수들을 끌어내라고 명하였습니다. 얼어죽은 시체들이 호수 한가운데 쌓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보초병의 시체도 있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안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나라를 지키는 군사에 신앙생활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나라를 지키는 군대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군대는 적의 침략의 위협으로부터 국토를 방위합니다. 우리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나라를 지키며 고생하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죄악과 싸우는 것입니다. 환란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함과 기쁨과 삶의 보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는 이등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의 2등은 은메달로서 영광스럽습니다. 학업성적이 2등이라면 그는 우등생으로 칭찬을 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2등은 나라의 패망입니다. 국토와 자유와 평화를 빼앗기게 됩니다. 노예의 신세가 됩니다.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의 처지를 생각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이룩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자 끊임없이 우리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적과 싸워야 합니다. 이러한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주실 복까지 다 놓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1.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자기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군인의 특성은 개인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입영 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군인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든 부모 형제, 친지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눈물을 삼키며 입대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가정형편이 딱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영하는 장병의 발걸음을 붙들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국가가 있어야 평화로운 사회가 있고,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면 안됩니다. 세상의 어떤 것에 얽매여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의 영혼은 파멸에 이르기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저주로 멸망을 받을 때, 하나님은 롯의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빨리 이 성에서 도망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처는 하나님의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미련에 얽매여 뒤를 돌아보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돈의 유혹의 끈에 묶여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괴력의 소유자 삼손은 미모의 여인 들릴라의 유혹을 끊지 못하다가 블레셋 군대에게 붙잡혀 양 눈이 뽑혔고, 처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하셨습니다.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2:1 말씀에��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나아가는 길에 나를 붙들어 얽어매려는 유혹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이 유혹의 끈에 얽매이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승리자가 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유혹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제공되는 왕의 진미였지만, 그것이 신앙양심에 어긋나는 물질이므로 먹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하나님의 남다른 은총을 받았습니다. 군인은 ‘생업’이나 ‘사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얽매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본분을 수행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그 분께서 맡겨주신 일에만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갈1:10)

2.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명령에 복종합니다.

군대의 가장 엄한 규율은 상관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군인이 만일 상관 명령에 불복한다면 그 사람은 감옥에 가야합니다. 전시 상황인 경우에는 사형입니다. 십자가의 군병인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 30:20)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시기를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순종이란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복종이란 이해가 되어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따라갑니다. 이것이 복종입니다. 일반 병사들이 지휘관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일반 병사는 전쟁 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휘관은 고성능 장비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지휘합니다. 그러므로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2차대전의 전범인 동조는 그의 전략에 의해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루고자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습니다. 진주만 폭격 후 미국의 반격에 의해 제동이 결렸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점점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 사령관은 발악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조종사들이 전투기와 함께 미 함대를 향해 돌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 조종사들은 이 명령에 복종하여 폭격기와 함께 미 함대를 격침시켰고, 그들은 장렬히 죽어 갔습니다. 이것이 곧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정신입니다. 하지만 지휘관의 명령에 따랐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일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처럼 투철한 군인정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망했습니다. 그것은 명령권자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하면 영광된 좋은 날이 있습니다. 신명기 10:12-13에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삶의 승리를 얻는 지혜입니다.��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하셨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무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기입니다. 반드시 싸워 이긴다는 확신에 찬 용기입니다. 이러한 사기가 충천할 때 상상 밖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4만의 군사를 이끌고 페르시아의 전쟁에 나갔습니다. 알렉산더와 그의 군사들은 물이 없는 사막에서 모두 지쳐있었습니다. 그때 용맹스러운 신하 한 사람이 죽음을 무릎 쓰고 적진에 들어가 한 통의 물을 길러와 대왕께 바쳤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 물을 마시려다 말고 전 군대를 집결시켰습니다. 이때 알렉산더는��우리 다같이 이 물을 먹고 힘을 얻어 싸움에서 이깁시다.��라고 하면서 물을 그릇에 담아 온 군대에게 뿌렸습니다. 이에 감동된 군사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파사의 100만 대군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토록 사기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목이 말라 지친 4만 군대의 사기가 충천했을 때 100만 대군을 이겼습니다.

그리스도의 군병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사기란 무엇입니까? 이는 믿음과 소망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제외한 모든 것은 소망의 산물입니다. 소망이란 현재 없는 것에 대해 바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며 노력할 때 그 꿈들은 우리에게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백세에 아들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렇고, 가나안 땅을 소유한 이스라엘의 민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블레셋 나라 골리앗을 물매 돌로 죽인 다윗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모두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결과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가운데 더글러스 헤이그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전세가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묻기를 ��낙심이 되지 않느냐?��했습니다. 그러자 헤이그 장군은 ��낙심이라니!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하에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크리스천은 낙심할 권리가 없단 말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은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비록 어려운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나를 연단하는 과정일 뿐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비록 큰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그때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말하기를 ��돈을 잃는 것은 가벼운 손실이다. 명예를 잃는 것은 중대한 손실이다. 그러나 소망과 용기를 잃는 것은 보상받을 수 없는 손실이다.��라고 했습니다. 펄벅은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 힘이 있고, 의지가 강한 자에게 용기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고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의 과정 없이 성취되는 꿈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인 우리들은 단 한시라도 아름다운 소망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4.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은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좋은 군사란 훈련이 잘된 군사를 말합니다. 훈련이 안된 군사들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은 끊임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군대에서 쓰는 말 가운데��훈련에 땀을 많이 흘린 군사는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훈련을 잘 받은 군사는 적을 이기고 생명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하셨습니다. 용광로를 거치지 아니한 광석은 아직 보석이 아닙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후 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을 고난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다니엘도 고난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훈련에 통과한 후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렸습니다.

이 훈련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 5:7-9)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하셨습니다. 훈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달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농구 황제인 마이클 조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내 생애에서 나는 9,000개가 넘는 슛을 놓쳤고, 300번 넘게 시합에서 졌다. 26번 경기에서는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슛을 날렸지만 모두 놓쳤다. 나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의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그의 농구인생의 성공은 훈련과 인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입니다.(빌2:25, 몬1:2) 세상의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온갖 세상풍파와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들은 이겨야 합니다. 이겨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겨야 평화가 있습니다. 이겨야 참된 자유와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입니다.(롬8:17)

5. 군인정신과 군인의 사명

군인의 생활은 용감해야 합니다. 용기는 군인의 최고의 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실 때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이렇게 담대해야 모든 악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에도 ‘주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 고 했습니다. 군인은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그 일신을 온전히 희생할 각오를 가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군인의 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자기 몸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군인 정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우리 주님을 위해서 나의 욕심과 안일과 재물과 나아가서는 생명까지도 희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 따라서 그 서약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받을 때 주님께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적은 일에도 충성해야 합니다.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역경 중에도 충성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군인 생활에는 전우의 사랑이 있습니다. 소위 전우애가 있습니다. 전우애는 생명을 걸고 싸울 때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도 힘든 봉사를 할 때 서로 서로 도와주는 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 노릇을 잘 하고 있습니까? 군인 가운데 제일 부끄러운 군인은 도망병입니다. 도망병은 책임을 피하는 군인입니다. 군인으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라마다 군인이 있는데 왜 있습니까?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토를 지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적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삼으셨습니까? 첫째는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일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군사이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 교회 안에는 언제나 건전한 보수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많으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는 원수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악한 사상 악한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상을 격멸해야 합니다. 독재주의 사상, 무신론 사상, 인본주의 사상, 물질만능주의 사상, 세속주의 사상, 향락주의 사상 같은 사회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사사로운 생각이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소망을 굳게 붙잡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고난에 인내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대장 되신 주님, 우리를 십자가의 군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잘 훈련돼 하나님 쓰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마음을 닮게 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군사, 용사, 제자에 관한 성경 말씀

0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0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

0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 26, 27)

0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 33)

0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 군사. 용사, 제자에 관한 금언

0 그리스도인의 삶은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 삶을 '뚫고' 지나는 길이다.-빌리 그레이엄

0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분을 알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믿는 것이다.-존 스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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