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성경본문 : 신명기 22장 5절-8절

제    목 : 신앙의 순수성



   '여자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의복이란 말은 <ylK] 켈리>로서 비단 의복뿐만 아니라 이성에게 관계되는 도구, 연장, 무기 및 용구까지 포함한다. 이것은 도덕성을 위한 윤리적 규제로서 하나님이 구별하여 정하신 남녀간의 성을 신성하게 보존키 위한 것이다. '스펜서'(Spencer)는 이러한 율례가 신명기에서만 급작스럽게 도입되는 이유가 당시 이방인 사이에서 남녀가 서로 바꾸어 분장하고 음란한 종교적 축제를 가짐으로 해서 이스라엘 중에 그러한 음탕한 풍습과 우상 숭배의 의식이 도입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남녀의 구별을 흐리게 하고 서로의 의복을 바꾸어 입는 행위는 방탕과 음란으로 흐리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이것은 단순히 새의 보호를 위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은 뒤에 따르는 축복이 있음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복과 장수에 대한 약속은 제5계명에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규례 역시도 그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에게 관계됨을 보여 준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보호와 아울러서 동물들의 관계에서도 그 어미와 자식에 대한 신성한 관계를 고려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자비와 효'를 함양케 하는 것이다.



   신앙의 진정한 의미는 대단히 큰 것보다는 적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적은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겨자 씨'와 '누룩'(참조, 마 13:31-33 막 4:30-32 눅 13:18-21)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부피의 것들을 가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사소한 것을 통해서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시는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외형적인 신앙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가분수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본문 6, 7절의 말씀은 특별히 작은 새의 보금자리, 즉 안식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본문이 주는 깊은 영적 의미는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어지럽고 고통만 뒤따르는 이 시대에 주시는 교훈적인 말씀으로 생각하면서 '신앙의 순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다이아몬드를 감별하는 데는 수중 감별법이 가장 정확하다. 인조 다이아몬드를 물속에 담그면 그 빛이 사라지지만 진짜 다이아몬드는 물속에 담가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데에도 구별법이 있는데 그것은 시련을 견디는 힘이다. 불신자는 고통과 시련이 오면 대부분 빛을 잃고 방황하지만 신자들은 그러한 시련 아래서 더욱 보석처럼 빛나게 되는 것이다.



   1. 적은 일에 충성하라는 의미입니다.

   계시록 2장 10절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모든 계명 중 가장 작은 것에 대한 순종입니다.

   본문 6, 7절의 규례는 어미 새와 그 새끼, 또는 새끼가 되는 알을 동시에 잡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즉 비록 말을 못하는 짐승이라도 약한 자에 대한 동정심과 자비와 긍휼은 오히려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마 5:7). 분명히 새끼와 알은 지극히 약한 것 중에 약한 것입니다. 이 약한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8:3-6). 진실로 가장 약한 존재를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기본은 원대한 그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기에게 가장 적절하게 주어지는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은 일에 대한 순종을 부언하시는 것입니다.

   2) 사소한 율법이라도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작은 새에 대한 언급은 극히 적은 율법에 속하는 규례입니다. 그러나 이 적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는 복과 장수의 능력을 허락하신다고 하십니다. 즉 제2계명에서 나오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는 축복의 근원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3) 의에 대해서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의라는 개념은 '거룩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는데, '거룩'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적게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영광이요' 크게는 '만물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는다는 사실은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처럼 작은 새에 대한 규례는 가냘프고 애처로운 동물을 아름다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심령으로 보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2. 신앙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고전 14:40에서는 '모든 것은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적당하게 하고'라는 의미는 강압적이며 억지를 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본문에서처럼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엄밀한 의미로 볼 때 어미까지 목숨을 취하는 일은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우주의 모든 일들은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간에 매우 합법적이며, 조직적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이 자연계를 파괴할 때마다 일어나는 역설적인 부작용의 예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한 마리의 작은 새의 포획은 율법을 떠난 이면에서 볼 때는 엄연히 자연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질서'라는 두 글자를 새겨두시고 '인격적으로' 그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3. 탐욕과 정욕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6:10에서는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탐욕이나 정욕이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은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약 1:14)고 하였습니다. 이런 미혹됨이 존재하고서는 결코 순수한 신앙이 정립될 수 없으며, '양자의 영'(롬 8:15), '하나님의 후사'(롬 8:17)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새에 대한 율례에 대해서 설명하여 왔지만 '작은 새에 대한 규례'는 곧 '우리의 적은 주님의 일'과도 같은 것입니다. 적은 일에 청지기 사명으로써 의로써, 거룩한 십자군으로써, 복음의 나팔수로 임한다면 분명코 성도의 앞길에는 무궁한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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