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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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로마서 2장 13절

제    목 : 말씀을 행하는 자



   옛날 유대 사람들은 절대로 종이를 밟지 아니했는데 그 이유는 혹시 하나님의 이름이 그 종이 위에 쓰여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떤 목사님이 시카고에 있는 한 공원에서 '아브라함 링컨'의 동상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다가와 한참이나 동상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모자를 벗어서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동상의 받침대 밑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담배를 피워 그 동상을 더럽히면서 퇴폐적인 시구를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다.


   '율법을 듣는 자.' 이 말은 단순히 '듣는다'는 단어와는 구분되는 단어로 '빈센트'(Vincent)에 의하면 율법을 듣는 행위, 그 자체에 충실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울서신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 단어는(비교, 약 1:22, 23, 25) 유대인들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우고, 또 회당에서 율법을 듣지만 그 이상의 행함이 없는 것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비교, 행 13:27). 이에 대해 '데니'(Denney)는 사람이 율법을 듣는다 해도 행함이 없다면 이는 헛된 일이라고 말하며, '알포드'(Alford)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율법을 듣고 읽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머레이'(Murray)는 본문의 '율법을 듣는 자'란 율법에 친숙한 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는 '율법을 소유한 자'로 번역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참조, 눅 4:16 요 12:34 행 15:21 고후 3:14 약 1:22).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도 바울의 칭의 교리와 배치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칭의가 아니라 율법을 수여한 근본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수여한 이유는 그 율법을 단순히 소지하라는 것이 아니고 율법대로 행하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된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말씀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여러 부류를 살펴보고 또 그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1. 듣기만 하는 자

   1)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몇몇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들을 때 이해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특징적 사실은 그저 습관적으로나 교회에 출석할 뿐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말씀을 이해하기는커녕 자신이 들은 말씀의 내용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자들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 버린 씨앗과 같은 자들입니다(참조, 마 13:4).

   2) 형식에 치우친 자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로부터 가장 크게 책망 받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정통하였고 또 겉으로 보기에는 그 율법에 충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내면세계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찼으며 행실은 탐욕스런 그들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성전에 올라간 어떤 바리새인들의 기도 가운데 잘 나타납니다(참조, 눅 18:11, 12). 이들이 남이 보는 가운데 행한 행위는 습관적이며 관례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행위였으며 위선이었습니다. 이런 자는 그저 말씀을 듣고 행동하지 않는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참조, 고전 13:3).


   2. 듣고 행하는 자

   1)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자

   말씀을 듣는 부류 중에는 앞에서 말한 대로 그저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말씀을 행하기 위한 첫 번째 준비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선포된 메시지가 품고 있는 모든 지적이며 영적인 부분들을 깨닫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완벽하게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에 관해 진지하며 열정적인 자들의 자세를 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2)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 자가 메시지를 단순히 인간의 소리로만 이해함에 반해 듣고 행하는 자는 이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포로 인정합니다(참조, 히 4:12). 그러므로 이들은 당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순종하는 자들과는 달리 자신들은 그분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인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3) 진리를 실천하는 자

   말씀을 듣는 자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공부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안팎에는 많은 성경 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여기서 중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즉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가시 떨기 위해 떨어진 씨앗과 같습니다(참조, 마 13:7, 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씨가 떨어져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옥토와 같이(참조, 마 13:23)듣는 대로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듣지도 행치도 않는 자

   비록 이 부류에 속하는 자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나 이런 자는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완전히 하나님과 무관한 자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가 바로 이 부류에 속하는 자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우리 성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그런 만큼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특권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행위대로 갚으시며 맡긴 대로 찾으시기 때문입니다(참조, 마 24: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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