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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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와 시내산 여정, 출 13장-18장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길의 행군 중에 거대한 홍해를 만나게 된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무리를 쫓고 있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체험한다. 이처럼 출애굽기 13-18장은 가나안을 향해 약속의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나큰 기적이었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직접 체험하는 역사적인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홍해를 지나 얼마 후 물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보게 된다(창17:1-12). 본 연구에서는 홍해 사건 이후 시내산까지의 광야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홍해를 건넌 사건(출13:1-15:21)


 바로는 마음이 강퍅해져서 전차를 내보내어 이스라엘을 추적한다. 한나라의 세력은 단적으로 군사력으로 표현된다. 병거와 전차는 그 당시 최신의 강력한 무시였다. 최신의 병거 중에서도 뽑아 선정된 병거 600승이 홍해가 갈라지면서 모두 몰살된다. 애굽 민족은 10가지 재앙으로 인하여 이미 기진하였다. 그중 애굽의 장자를 친 사건은 애굽의 세력의 기를 꺽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거기에다가 이제 애굽이 가장 자랑하는 병거를 몰살시킨 것은 다시 애굽이 강성해지고자 하는 희망을 가졌던 마지막 바램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


 1)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은 사단의 세력을 깨뜨린 하나님의 결정적인 승리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홍해 사건은 완전한 하나님의 승리의 상징이다. 홍해 사건을 유월절과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홍해 사건과 유월절은 하나의 사건이다. 쉽게 말하면 유월절이 하나님께서 애굽을 완전히 패망시킨 기념비였다면 홍해 사건은 패망한 애굽을 철저하게 진멸시키는 싸움의 승리였다. 즉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과의 싸움이며 유월절에서 완전하게 승리하신 하나님께서 사단의 세력을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쳐부수었다는 것이다.


 2) 홍해를 건넘의 의미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고전10:1,2에서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홍해는 옛 땅에서 새로운 땅,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또한 바다는 옛부터 죽음을 상징해 왔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다를 가르시고 죽음 직전에 있던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원해 내신 것이다. 이것을 고전10:1,2에서는 세례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세례는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긴 것을 상징한다. 이것을 볼 때 홍해 사건은 모든 옛 사람이 죽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더욱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구름 아래'라는 표현에 있어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다. 애굽에서 노예 상태로 있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인 죽음의 장소를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서 마른땅처럼 건넜던 것이다.


2. 광야생활(출15:22-18:27)


 광야는 먹을 물과 양식이 없는 곳, 즉 생존 수단이 없는 죽음의 땅이다. 사람이 자기 힘과 능력만 가지고는 살기 힘든 땅이다. 바로 그런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쓴 물(썩은 물, 먹으면 죽는 물)이 식수로 바뀌고 바위 속에서 물이 터져나오며, 하늘에서 음식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후 즉시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지 않고 혹독한 광야의 환경 속에 두셔서 고통받게 하시는가?


 1) 광야여행의 목적

 광야 여행의 목적은 dokimavzw(도키마조; 시험)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법도와 율예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출15:25)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험과 율례, 계명과 깊은 관계가 있다. 광야 기간을 주셔서 단련하시는 목적은 인간의 힘과 자연인의 능력으로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를 걷게 하심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속 함께하시고 양식과 물을 주심으로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함이다. 인간은 자기의 노력으로 뭔가를 얻게 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즉 내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절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련하시는 시험 기간으로서의 광야 생활에 율법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순종을 통해 단련하신다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순종은 믿음을 뜻한다.


 2) 광야에서의 삶

 광야에서의 삶은 성령으로서의 삶을 나타낸다.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다름아닌 성령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이다(롬 7, 8장). 사도 바울도 스스로 탄식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며 탄식하였다(롬7: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이 세상에서 신자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삶이 바로 생명의 삶이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의 삶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을 받아들임이 순종이요, 생명이다. 만나를 주시며 생수를 주시고 고난의 광야를 걷게 하신 것은 내가 너희의 구원자요,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믿음의 단련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은 주고받는 상업주의 의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이런 상업주의 의식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 대한 신자의 자세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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