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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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정복, 수 6-12장


 본문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여러 족속과의 치열한 전투를 기록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기간은 약 7년간이며 전쟁이 끝날 즈음 여호수아의 나이는 85세였다(수14:10).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를 얻기까지 이스라엘 선민들은 귀중한 교훈을 피와 눈물을 통해 얻게 되었으니,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이 선민들의 삶의 무기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여호수아서는 반복하여 강조한다.


1. 여리고와 아이 성 점령사(수6-8장)


 본문은 유명한 여리고와 아이 성 점령에 대한 기사이다. 이 두 성에서의 전투는 선민과 가나안 족속과의 첫 전투로서, 전투의 성패를 가늠 짓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 두 전투에서 선민들은 기적적인 승리의 기쁨과 뼈저린 패배의 경험을 동시에 얻었다.


 1) 여리고 성의 승리와 아이 성 첫 전투

 첫 변방 요새인 여리고 성에서의 전투는 의외로 쉽게 끝을 맺었다. 즉 7일간 법궤를 앞세우고 그 성을 돈 후 함성을 지르니 성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짐으로써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사기 충천한 선민들은 벧엘 근처의 아이 성을 공격했다. 그 성의 이름은 '황폐한 작은 성'이라는 뜻이다. 여리고 성을 정복했으니 그 작은 성은 더 손쉽게 얻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외로 패배를 당한다. 그 원인은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을 몰래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마땅히 전리품을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했건만 그것에 사사롭게 욕심을 낸 것이 이스라엘 군대의 패인이 된 것이다.


 2) 절대 믿음과 성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큰 교훈을 얻는다. 선민들의 승리의 근거는 그들의 힘과 전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말씀 안에서의 의와 성결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여리고 성을 점령한 요인은 '믿음'이었다. 히11:30은 "저희가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증언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믿고 성을 돌았기에 승리를 얻은 것이다. 즉 성도들의 힘과 무기는 믿음임을 교훈 해 준다. 다음으로는 '거룩함'이 성도의 삶의 무기이다. 아간처럼 불의와 죄와 타협할 때 성도들은 사단 마귀에게 패배 당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이처럼 여리고와 아이 성 전투를 통해 선민들은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요인을 똑똑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2. 남방족속과의 전쟁사(수9,10장)


 여호수아 9,10장은 남방 지역 족속과의 전쟁사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중심이 된 남방 아모리 다섯 족속 연합군과의 전투는 가나안 전쟁의 압권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선민들은 가나안 정복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전쟁사를 통해서 인간들의 과오와 또 그 과오를 초월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다.


 1) 기브온과의 화친과 하나님의 권능

 선민들은 남방 족속과의 전투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는데 바로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서 화친 협정을 맺은 일이다(수9:14,15). 기브온 족속은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임을 숨기고 여호수아와 화친을 성사시켰다. 선민들은 그들로부터 '공물'을 받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속아서 화친했는데, 이는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위배하는 불찰이었다. 이로써 후에 가나안 잔존인과 혼합됨으로써 이스라엘의 타락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남방 연합군에 대해 승리하게 하셨다. 10장에서는 유사이래 태양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베푸심으로 전투에서 승리케 하신 기사가 있다(수10:12-14). 이스라엘의 승리는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로 얻어진 것이다.


 2) 교회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은혜

 선민들은 기브온 족속에 속아서 화친한 일은 교회의 불완전성을 교훈해 준다. 지상에 있는 교회는 비록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 안에 거할지라도 완전할 수는 없음을 말해 준다. 때로는 사단의 불의와 유혹에 오염되기도 한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과 교만과 음란한 요소가 있었으나 그래도 사울 바울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고전1:2)라고 불렀다. 이는 교회의 불완전함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긍휼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이다.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선민들을 큰 기적으로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흠 많은 우리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사 영생 언약을 성취 받도록 해주실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하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신실하시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소망이다(히6:13-18).


3. 전쟁의 종결과 그 결과(수11,12장)


 이스라엘은 7년간의 가나안 족속들에게 전쟁으로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전쟁의 종결과 함께 새로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1) 멸절과 약탈의 윤리적인 문제

 본문은 남은 북방 족속을 진멸시킨 사실과 가나안 전쟁으로 얻은 가나안 거민의 성읍에 대한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며 용서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가나안 거민들을 진멸하도록 명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땅 거민들의 재산을 선민들이 약탈했다는 사실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2) 거룩한 전쟁의 당위성

 첫째, 그 전쟁은 민족간의 이해 다툼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그 배경이 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명령에 정면으로 배치된 가나안 족속의 타락성은 근친 상간, 온갖 우상 숭배, 동물적인 방탕함, 인신 제사,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 등 고고학을 통해서도 증명된 바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선민들을 번성케 하시려는 의지 속에 전쟁의 의미가 있다. 그 전쟁은 신약교회 성도의 영적 전쟁의 모형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인들은 언젠가는 멸망된다는 사실 그리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역사가 가나안 전쟁의 멸절과 약탈의 역사이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가치를 크게 신봉하고 순종하는 선민들만이 맛볼 수 있었다. 성도들의 삶의 방향도 그 믿음과 순종함에 따라 결정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애굽 후 약 40년이 흐른 주전 1407, 1406년쯤 약 200만 명의 선민들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 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본 서 1-5장은 가나안 땅 입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와 같은 내용을 입성 전, 입성 과정, 입성 후의 일들로 나누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입성 전의 준비(수1,2장)


 1장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진군할 것을 명하심과 신앙적인 위로의 내용이 그 중심이다. 선민의 가나안 땅 진격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란 인물은 누구인가? 왜 하나님께서 그를 가나안 정복 역사의 기수로 삼으셨는가?

 그리고 2장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진격 준비 명령과 함께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데, 그 정탐꾼을 환대한 기생 라합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여호수아에 대한 명령과 위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였다. 말하자면 모세의 사상과 신앙으로 성화된 자이다. 그래서 수1:1에 여호수아를 가리켜 '모세의 시종' 이라고 부른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신다는 진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담대하고 용맹한 지도자의 기질을 지녔다. 물론 인간적으로도 용장의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으며(신25:18), 가나안 땅 첫 정탐 때 다른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더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그 신앙의 담대함이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기수로 선택받은 것은 당연하다.


 2) 정탐꾼과 라합의 가족

 정탐꾼들은 자신들을 환대한 라합과 그 가족들에게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후에 그 악속을 지켰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윤리성을 문제삼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근거를 얻는다. 즉 가나안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맹목적으로 '멸절'을 명하시지 않으신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어느 민족이든 생명의 반열에 참여하게 해주신다는 복음 진리를 여호수아서 초두에서 읽을 수 있다.


2. 입성의 과정(수3장)


 3장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따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을 다뤘다. 약 200여 만 명의 선민들이 레바논 산의 눈 녹은 물과 봄비로 인해 창일하는 요단을 건너기는 불가능했다. 그와 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이 권능이 여호수아 3장에는 어떻게 나타나 있나?


 1) 법궤가 앞장섬

 '법궤'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과 언약이 담긴 성물이다. 그 안에는 율법을 새긴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 있다. 광야 행군 중에도 그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제사장들이 멘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즉 가나안 땅이나 천국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입성 불가'라는 것을 교훈해 준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과 뜻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과 언약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세계와 우리 인간을 이어 주는 영생의 가교가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절대 신뢰와 순종이 요구됨

 언덕까지 넘치던 요단 강물이 끊어진 것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후부터였다. 출애굽 때에는 홍해가 갈라진 후에 건넜으나 가나안 입성에서는 흐르는 강물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던 것이다. 즉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건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그 상황은 동일하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언약을 절대 확신하고 전진하는 성도만이 저 영원한 요단강을 건너 영생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입성 후에 행한 일들(수4,5장)


 4,5장은 가나안 입성 후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취한 조치에 대한 기록이다. 먼저 선민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으로(수4:6,7) 돌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라고 한다. 계2:17에는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즉 주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늘 승리하도록 해 주신다는 뜻임을 요단 도하의 기념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념비를 세우고 난 후 그들이 행한 중요한 규례와 절기는 무엇인가?


 1) 첫 할례를 행함

 하나님께서는 길갈에서 지친 선민들에게 할례를 명하셨는데(수5:1,2), 할례는 더러운 육신을 벗고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제 가나안 땅에 진입한 선민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지녔던 옛 세계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명실상부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영혼을 할례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더 나아가 길갈에서의 할례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서 신령한 존재로 변화될 성도들의 미래상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2) 첫 유월절을 지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거둔 곡식들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는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동안 40여 년간 내리던 만나가 그쳤다(수5:11,12). 유월절은 그 옛날 출애굽의 시효가 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이다. 새로운 땅에 진입한 첫 축제로 유월절을 지켰던 것이다. 이는 천국에 가서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유월절 어린양의 속죄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임을 상징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기간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들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 그 백성들을 가나안에 입성시키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은 경외하며 신뢰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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