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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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예화 모음



크리스마스에 생각나는 것

미국에서의 일이다. 어떤 심리학 교수 한 분이 40명여명의 학생들에 게 단어 연상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한다. 즉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적어보게 한 심리 테스트였다. 그런데 그 대답은 "추리", "가시나무", "선물", "칠면조", "휴일", "캐롤", "산 타클로스" 등등 모두 각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를 적어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 혹 예수가 빠져있는 크리스마스는 아닌가?



이상한 성탄절 이브

미국의 어느 화려한 예배당. 한 흑인 여인이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했습니다. 흑인은 입장이 곤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기도를 하려니 눈물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럴 수가 있으냐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쫓겨났소." 그 흑인 여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얘깁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 전야에 어느 교회에서 아이들끼리 선물을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 상자들을 가운데에 쌓아 놓고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사회자가 한 사람씩 불러내 그것을 뜯어보게 했습니다. 과연 무슨 선물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며 다들 포장을 뜯는 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저능아인 한 아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지만, 그래도 산타클로스만큼은 자기를 기억해 주리라 고대하며 앉아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제일 나중에야 산타클로스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커다란 상자를 건네주자, 아이들이 또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 아이를 놀려 주려고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아이는 상자를 거꾸로 들고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아이는 텅빈 상자를 안고 바닥에 앉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을 안고 큰소리로 웃으며 하나씩 밖으로 나갔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찬송가를 부르며 말입니다. 오색등이 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 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아이의 눈물처럼 말이죠.


성탄절 전야는 우리의 가슴을 늘 두근거리게 합니다. 학창시절, 교회에서 학생 회원들과 밤을 새우며 선물을 주고받던 일이 생각납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제비를 뽑아 파트너를 정하고 상대가 모르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어서 두고두고 추억 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상한 선물에다가 짓궂은 벌칙을 써넣어 선물을 받는 사람을 당황시키기도 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성탄절 전야가 되면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명동으로 나가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새벽에야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성탄 전야에 잠을 자지 않고 놀다가 정작 성탄절 예배에는 참석을 하지 않거나, 예배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탄절 아침에 걸인으로 변장을 하고 몇 몇 교인의 가정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더랍니다.


성탄절이 되면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속한 모임에서라면 여러 상자를 마련하여 고아원에 전달한 일이 있습니다. 라면 상자들을 쌓아 놓고 고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 한 아이가 우리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퍽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절 문화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화려한 날이 아닌데도 일년 중 가장 화려한 날로 바뀌었습니다. 백화점마다 요란스럽게 불을 켜 놓고 호화로운 선물을 파느라 야단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 12월24일 저녁은 환락과 술취함과 사고의 밤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일이 연인들의 만남의 날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없는 비신자들이 설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이상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수가 많습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선물 상자,올 나잇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코 '화려한 스타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6절 이하에 그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그런 화려한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분이 어디에 관심이 있었는지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를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 조용하고도 기쁜 성탄절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는 것이지 산타클로즈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표현방법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속성이 창조물에 심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잘 관찰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 로마서입니다.

“창세로부터 그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하지 못할 지니라” (롬1:20)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믿지 않으려고 결심한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라고 이미 성경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간절히 찾으려는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같지 않기 때문에 식언치 않으시고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민23:19) 여기서의 식언은 영어로 거짓말(lie)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말을 지킬 능력이 부족한 존재입니다. 시간 약속을 해놓고도 마음이 바뀌면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서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은 환경을 초월하지 못하고 시간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으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생각은 있어도 전심으로 힘쓰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기 실어서 숨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나타내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기 원하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를 기대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한도 내에서 수없이 많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친히 에덴동산에 내려오셔서 사람과 함께 동산을 거니셨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노아에게는 음성으로 나타나셨고, 모세에게는 폭풍 이후에 뒷모습을 보이셨고, 아브라함에게는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셨고, 다윗에게는 천군들을 보내서 전쟁을 이기게도 하셨으며, 욥에게는 폭풍 속에서 나타나셨고, 다니엘 시대에는 거대한 손가락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 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관심을 여러 모양으로 세상에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면서 까지 세상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먼저 세상에 보내셔야 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 가장 깊이 있게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사랑을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사랑을 이해하게 하시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십니다. 가난한 자도, 부한 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어리석은 자도, 지혜로운 사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빈민들도 상류층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도 꺼리는 것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신비한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

서양 사람들보다 동양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표현을 잘 하지 않습니다. 동양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가장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고, 특히 한국 남자들이 가장 심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근엄한 사람을 존경하는 유교의 풍습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이지경이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수 십 년을 살아도 자기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의 남편들이고, 자식들에게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할 때까지는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아들을 앉혀놓고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하면 죽어 가는 아버지를 끓어 안고 통곡하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일상적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한국의 가정들이 훨씬 따뜻할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아내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서양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동서양의 남자들이 주로 문제가 됩니다.

캘리포니아 토종 식물 연구학회의 연구위원인 한 남자를 알게 된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은 세상에서 이런 남자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자존심도 버리고 청혼을 해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의 짐작과 같이 이 남자는 일생을 가족에 대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였고 단 한 번도 가장으로서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불이 난 지역에 식물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갔다가 같이 간 동료가 급한 일로 먼저 돌아간 상태에서 좀 더 떨어진 곳의 식물을 촬영하기 위해 3키로 미터 정도를 더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열십자로 왼쪽 다리에 놓여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그는 허리띠를 풀어서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왼 쪽 다리에 묵고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12시간을 기어서 산 아래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알 수 없는 계곡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혹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있을까 해서 소리를 쳐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소리쳐보고 죽음을 기다리기로 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는데 누군가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것은 메아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일생동안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이 아버지는 눈물과 함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있는 곳을 외쳐댔습니다.

아들은 구조대가 아버지의 차를 찾기는 했는데 아버지는 찾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다음날 수색을 다시 하자는 말을 거절하고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선 것이었고 결국 죽어 가는 아버지를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인 엘리자베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오자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구해주지 안으면 자신이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돌을 집어 들고는 근처에 보이는 평평한 바위에다 유언을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부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엘리자베스 당신을 사랑하오.”

이 말을 듣자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곤 남편을 걱정하던 눈물이 그의 사랑을 고마워하는 감동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이 남자가 자기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좀 더 일찍 표현했더라면 그 가정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 그 효과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심리학자들은 가족들에 대한 자기감정을 자주 표현하라고 합니다.

한국 남자들은 좀 많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목소리도 좀 더 가벼워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연구해야하고,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사회와 가정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크신 사랑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다시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해야합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표현된 것이고, 그 하나님의 사랑 표현에 의해서 성탄절이 세계 최대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하루만이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가난 한 사람을 생각하며 다툼을 그치고 평화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성탄절이 살린 사람

미국의 최대의 부흥사였던 무디와 함께 사역했던 쌩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의해서 현대 복음성가가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19세기 미국의 상황에서 혁신적인 음악사역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노래와 간증을 듣는 사람들은 설교를 듣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생키가 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생키가 배에 탔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노래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이 12월 24일이어서 “목자의 노래”라는 성탄캐럴을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한 남자가 그의 앞으로 오더니 생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남북전쟁 때 북군이었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생키의 대답을 듣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1862년 12월24일 저는 남군의 수색대원으로 북군의 진지 깊이 침투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북군의 보초병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오늘 당신이 부른 노래였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며 가족과 교회,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고향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노래를 다 들은 나는 당신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거룩한 날 만큼은 사람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쌩키는 그의 손을 잡고 성탄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탄절이 자신을 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성탄절에는 특사로 풀려납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성탄절에 가장 큰 선물을 받습니다. 성탄절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는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랑의 크기만큼만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별로 길지 않습니다. 이 길지 않은 인생을 엉뚱한 일에 매달려 쫓기며 살지 말고 사랑을 표현하며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트럭 운전사의 유언

트럭 운전사가 산골자기에서 사고를 당해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아내에게 마지막 고백을 기록한 편지가 있습니다. 그는 일평생을 트럭과 함께 살다가 차가운 트럭과 함께 인생을 마치면서 일생동안 하지 못한 말을 그의 편지로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남자도 이런 편지를 쓰고 싶지 않을 것이오,

나는 평생 트럭과 함께 한 시간이 당신과 함께 한 시간보다 많았소,

당신은 내가 당신보다 트럭을 더 사랑한다고 날 놀리곤 했소,

그러나 나는 트럭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트럭을 잘 모는 것이라고 생각기 때문이오,

그리고 이 트럭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소,

내가 높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악셀을 힘차게 밟으면

트럭은 어떠한 언덕도 거뜬히 올라가 주었고

평지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내 주었소,

그러나 나는 내가 트럭을 잘 정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기도했기 때문에 나의 트럭이 원하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 해 주었다고 믿고 있소,

내가 이 트럭을 사랑하긴 하지만 지금 부상한 상태에서 이 차가운 쇳덩이는

나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지금 처음으로 나 혼자가 되었소,

지금 당신은 수 백 리나 떨어져있고,

나는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데 당신은 내게 올 수 없다는 것을 아오,

당신이 나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했던 마음을 지금 알 것 같소,

나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길을 달려가고 있소,

그런데 그 길을 나 혼자 간다는 것이 두렵소,

당신은 우리의 아이들이 나처럼 트럭을 몰며 생계를 유지 하도록 하지 말기를 바라오,

당신이 혼자 살아갈 앞날들이 걱정되오,

내가 이 찌그러진 고철덩어리보다,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라오,

지금까지 난 당신에게 사랑한단 말을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후회 되는 구려!

하지만 나는 항상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라오.

당신을 사랑하는 빌. 1974년 12월

인생은 짧습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준비하지 못한 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다 표현하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 된 성탄절을 맞이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넉넉한 사랑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 아멘 -


크리스마스 카드

기네스북에 의하면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가장 많이 보낸 사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워너 에어하드라고 합니다. 그는 카드를 무려 62,824장이나 보냈습니다. 그 시간하며, 비용, 노력 등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이 보낸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느 한해에 기록을 세우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천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알리시고, 주인공으로서 몸소 크리스마스카드의 원본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성경에 이를 자세히 기록하여, 세계 곳곳에 있는 민족의 언어로도 옮기게 하여 수억, 수십억의 손에 전달되게 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보다 더 바람직한 크리스마스카드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에는 카드에 단지 안부만을 전하지 말고, 꼭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예수님으로 인한 풍성한 삶을 나누도록 하십시오.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밤중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그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루터는 평소 어둡던 숲이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숲 사이로 영롱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어둡던 숲에 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었다.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도 저 전나무와 같다.한 개인은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그러나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루터는 이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그리고 나무에 눈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꼬마전구와 촛불을 장식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이다.

인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에 예수의 빛이 스며들면 보석처럼 영롱한 인생으로 변한다.

성탄 축하하다 죽을 수도 있는 나라들


캐나다의 한 일간지가 "성탄절을 기념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나라"라는 제목의 가사를 실었다.

지난 1997년 12월14일 `오타와 시티즌`지는 성탄절을 기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을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소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서 성탄절을 축하하며 기도를 했다가는 추방당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성탄절을 나타내는 어떤 표시도 불법이다. 지난 해 필리핀인 두 사람이 단지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칼에 목이 잘려 희생됐다."

"수단 북부 무슬림 지역에서는 성탄절 선물을 사러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경찰이 불시 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토 기독교 연구소의 폴 머셜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조용히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공공장소의 기도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성탄절 축하 행위를 하다가는 폭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나이지리아와 스리랑카이다.

이 나라들 외에 전 세계에서 15개국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고 있으면서도 성탄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을 꼽았다. 북경이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 상업 지구에서는 상탄 관련 상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818년 성탄절을 일주일 앞 두고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교회에 시무하던 26세의 젊은 신부 모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성탄절 연극을 준비 하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풍금이 고장이 났다. 수리공이 온통 분해하여 늘어놓았지만 성탄절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 신부 모올은 근심 중 마을의 밤 풍경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고요했다. 이전에 시를 써본 일이 없었던 모올이지만 그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썼으며 그 교회의 organist인 구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내 그 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이 노래는 오늘날 성탄절에 가장 많이 애창되는 성탄곡이 되었다.


전쟁터의 성탄절


2차 대전 차디찬 겨울에 있었던 실화다. 12월24일 성탄 전야에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살벌한 전쟁터는 아롱지는 별빛으로 인해 고요하고 적막해져갔다. 이 고요함 가운데 참호 속에 앉았던 한 프랑스 병사가 고향생각을 하며 무심코 낮은 휘파람 소리로 성탄 캐롤을 불렀다. 이 휘파람 소리가 적막한 강 주변을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 애닮프고 잔잔한 휘파람은 이내 건너편의 독일 병사의 마음을 향수에 잠겨버리게 했다. 독일병사가 그 멜로디를 따라 마음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후 아군과 적군의 캐롤 멜로디가 함께 강을 멤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의성탄을 그리워하던 모든 병사들이 이 합창의 멜로디를 듣고는 다 함께 부르게되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강은 캐롤의 향연이 되었다. 아군도 적도 없는 성탄의 밤이었다. 모두가 서로 피 흘려야 하는 병사로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성탄을 축하하며 그리워하는 애절어린 사람의 마음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가의 캐롤 향연은 적과 아군이 한 자리에서 드리는 성탄의 예배로 이어졌고 즐거운 파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파파노의 성탄절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절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 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 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다. 그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거리에는 눈이 소복 소복 쌓이고 있었다.




포로 수용소의 촛불


2차 대전 때 열대 밀림 한 복판에 있던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기 시설이 제대로 없어 늘 어둠이 가득했고 무더위와 굶주림 때문에 수용소 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어쩌다 쥐를 발견해서 잡아 먹게 되면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 남들에게 내놓지 않는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그는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겨 두고 있었다. 그 미국인은 절친한 친구 포로에게 이 양초가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 때는 이 양초를 친구에게 나눠주리라는 약속을 했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오늘이 성탄이야. 내년 성탄은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하고 말했다. 그러나 굶주림에 빠져 있는 포로들은 아무런 대구

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양초를 숨겨두었던 포로는 그 양초를 꺼내어 판자 가운데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갑자기 그 안에 밝음이 퍼져 나갔다. 그 불 빛에 포로들은 잠을 깼고 하나 둘 촛불 주위로 모여 들었다. 촛불은 어느 새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촛불은 점점 더 환하게 비추어 포로들의 마음까지도 비추고 있는 듯 했다. “우리 내 년 성탄절은 집에서 보내자고”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모두 들 환하게 웃으며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자며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 날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본 포로들은 어느 누구도 배고프지 않았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818년 성탄절을 일주일 앞 두고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교회에 시무하던 26세의 젊은 신부 모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성탄절 연극을 준비 하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풍금이 고장이 났다. 수리공이 온통 분해하여 늘어놓았지만 성탄절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 신부 모올은 근심 중 마을의 밤 풍경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고요했다. 이전에 시를 써본 일이 없었던 모올이지만 그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썼으며 그 교회의 organist인 구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내 그 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이 노래는 오늘날 성탄절에 가장 많이 애창되는 성탄곡이 되었다.

전쟁터의 성탄절

2차 대전 차디찬 겨울에 있었던 실화다. 12월24일 성탄 전야에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살벌한 전쟁터는 아롱지는 별빛으로 인해 고요하고 적막해져갔다. 이 고요함 가운데 참호 속에 앉았던 한 프랑스 병사가 고향생각을 하며 무심코 낮은 휘파람 소리로 성탄 캐롤을 불렀다 . 이 휘파람 소리가 적막한 강 주변을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 애닮프고 잔잔한 휘파람은 이내 건너편의 독일 병사의 마음을 향수에 잠겨버 리게 했다. 독일병사가 그 멜로디를 따라 마음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후 아군과 적군의 캐롤 멜로디가 함께 강을 멤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의성탄을 그리워하던 모든 병사들이 이 합창의 멜로디를 듣고는 다 함께 부르게되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강은 캐롤의 향연이 되었다. 아군도 적도 없는 성탄의 밤이었다. 모두가 서로 피 흘려야 하는 병사로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성탄을 축하하며 그리워하는 애절어린 사람의 마음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가의 캐롤 향연은 적과 아군이 한 자리에서 드리는 성탄의 예배로 이어졌고 즐거운 파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파파노의 성탄절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절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다. 점심 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 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보았던 조그만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 이 몰려 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 때 한 할머 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다. 그 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 값을 지불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 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 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제 밤 꿈의 그 소리 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거리에는 눈이 소복 소복 쌓이고 있었다.

포로 수용소의 촛불

2차 대전 때 열대 밀림 한 복판에 있던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기 시설이 제대로 없어 늘 어둠이 가득했고 무더위와 굶주림 때문에 수용소 안 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어쩌다 쥐를 발견해서 잡 아 먹게 되면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 남들에게 내놓지 않는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그는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겨 두고 있었다. 그 미국인은 절친한 친구 포로에게 이 양초가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 때는 이 양초를 친구에게 나눠주리라는 약속을 했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오늘이 성탄이야. 내년 성탄은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하고 말했다. 그러나 굶주림에 빠져 있는 포로들은 아무런 대구 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양초를 숨겨두었던 포로는 그 양초를 꺼내어 판자 가운데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갑자기 그 안에 밝음이 퍼져 나갔다. 그 불 빛에 포로들은 잠을 깼고 하나 둘 촛불 주위로 모여 들었다. 촛불은 어느 새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촛불은 점점 더 환하게 비추어 포로들의 마음까지도 비추고 있는 듯 했다. “우리 내 년 성탄절은 집에서 보내자고”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모두 들 환하게 웃으며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자며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 날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본 포로들은 어느 누구도 배고프지 않았다.

성탄 축하하다 죽을 수도 있는 나라들


캐나다의 한 일간지가 "성탄절을 기념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나라"라는 제목의 가사를 실었다.

지난 1997년 12월14일 `오타와 시티즌`지는 성탄절을 기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을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소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서 성탄절을 축하하며 기도를 했다가는 추방당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성탄절을 나타내는 어떤 표시도 불법이다. 지난 해 필리핀인 두 사람이 단지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칼에 목이 잘려 희생됐다."


"수단 북부 무슬림 지역에서는 성탄절 선물을 사러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경찰이 불시 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토 기독교 연구소의 폴 머셜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조용히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공공장소의 기도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성탄절 축하 행위를 하다가는 폭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나이지리아와 스리랑카이다.

이 나라들 외에 전 세계에서 15개국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고 있으면서도 성탄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을 꼽았다. 북경이나 하노이 같은 대도시 상업 지구에서는 상탄 관련 상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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