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의 능력

시편 93 장 4 절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로버트 모패트(1795| 1883년)는 남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선교활동 중 고향인 영국에 잠시 들러 후원을 호소했는데 첫 번째 교회에 들어섰을 때 무표정한 서너명의 여신도밖에 없어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잠언8장4절을 인용하여 사명의 고귀함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남자라고는 오르간에 바람을 집어넣는 소년 조수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웠습니다. 아무도 안들었을 것 같은 그의 설교를 이 소년이 듣고 감화를 받아 후에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리빙스턴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었는 것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18: 27)


20세기 전 세계에서 성령의 은사를 통해 복음전파의 선두주자 역할을 감당한 영국의 위글스워스 목사는 사역을 통해 열네 번이나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셨는데 사역을 감당할 때마다 항상 불신앙과 싸웠습니다. 한 번은 어떤 젊은이가 “어떻게 그렇게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위글스워스는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마 4:28)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답변입니까. 그는 대답을 통해 믿음은 날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감으로써 성장하고 온전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씨앗이 하루아침에 큰 나무가 될 수 없듯이 우리 믿음도 하루아침에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분을 사랑하는 매순간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2차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독일군의 기세를 꺾는 사상 최대의 작전이었습니다. 연합군은 이 작전을 위해 수많은 함정과 비행기와 군인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실제로 적진에 진격해 들어가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만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자로 임명을 받자마자 가나안 땅을 향한 진격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런 시간을 주지 않고 가나안 땅을 향해 백성을 이끌고 진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여호수아가 아닌 하나님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휘관은 부하에게 명령을 내릴 때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면 군인은 그 이유를 묻거나 따지거나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상관의 판단을 믿고 진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에 대해 여러 차례 예고하셨습니다(마16:21, 마17:22∼23, 마20:18∼19, 마26:2 등). 여기에서 주님 자신이 고난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님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자기 영혼을 버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어 사망에 이르게 됐을까요.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첫째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대속’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고 또한 복음의 진수가 됩니다만 본래 십자가는 사형을 집행하는 형틀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와 하늘의 형벌로까지 상징되었으며 실패의 대명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서운 형구에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내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친히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라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인은 이 대속의 십자가을 자랑해야 합니다.


둘째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의만이 나타난다고 하면 죄인된 인간은 멸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 말씀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로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아갑시다.


셋째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화목’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 인간들을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기 위함입니다. 화목제물은 서로 갈라졌던 사이를 다시 화해시키는 제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제물 삼아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우리는 이웃간에도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화목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들과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능력인 ‘대속’과 ‘사랑’과 ‘화목’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만 자랑하고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우리 나라는 집중호우의 피해가 유난히 잦은 곳입니다. 7, 8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는 장마와 집중호우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합니다. 연평균 7일 정도 찾아오는 집중호우로 인해 수많은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까지 발생합니다. 집중호우는 비록 짧은 기간에 내리지만 기층의 불안정에 따른 매우 돌발적인 현상이어서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돌발적인 자연 현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재해를 천재지변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내린 재해라는 말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는 예방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집중호우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러한 물의 힘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비도 얼마든지 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기 위하여 행하신 많은 이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대변해 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육신의 폭풍과 영혼의 폭풍을 잔잔하게 할 수 있습니다. 폭풍이 일어나는 곳에 필요한 것은 ‘잔잔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사막에서 종종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이 없어서 목이 타고 다 죽게 되었는데 어느 조그만 나무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파 보았더니 오아시스가 터져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터져 나옵니다. 그렇지만 터져 나올 때까지는 사막입니다. 내 속에 있는 무한한 능력이신 성령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능력을 행사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샘 바닥이 말랐을 때에 기도의 폭탄을 터뜨려서 성령의 샘이 터져 나오게 하고 성령의 강이 흐르게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불신 상태에 있을 때, 내가 죄를 범했을 때 거기에 폭탄을 터뜨리고 샘이 터지게 해야 합니다. 다윗이 돌멩이를 가지고 골리앗을 죽이듯이 무한한 원동력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무엇이든지 터뜨려 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기도로 이룰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약 5:17)'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홀로 온 땅위에 높으신 주님, 제가 처한 모든 환경보다 크고 강하신 주님께서는 너무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유약한 저를 일으키시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안전한 날개 아래 거하여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영혼에 인간의 지혜로 감당할 수 없는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힘과 도우심을 확신하고 또 하루를 넉넉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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