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사30:18 


나치스의 유태인 최대 학살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젊고 어떤 유능한 유태인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향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노동을 하다가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몰래 숨겨 가지고 돌아와 날마다 면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치스들이 처형자를 고르기 위해 올 때마다 그는 면도한 턱 때문에 그들의 눈에 쓸만한 인간이라는 선입견을 주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치스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아 스페인에서 유능한 외과 의사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용소의 생활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일단 그 분께서 일하기 시작하시면, 그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변화 시기는 어쩌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낙심하고 계신가요? 하지만 분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결코 우리를 낙심 가운데 방치 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강풍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을 때 즉시 손을 뻗어 구해 주셨던 것처럼 지금 당신의 손을 꽉 붙잡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오래 엎드린 새가 높게 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오래 엎드린 새는 높게 납니다. 오래 엎드린 새가 높게 날 수 있는 것은 오래 엎드려 힘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엎드리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래 엎드리는 시간은 힘을 모으는 시간이요, 힘을 축적하는 시간입니다. 힘을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힘을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오래 엎드림은 준비를 의미한다. 새가 높이 비상하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잘 준비해야 합니다. 독수리가 거센 폭풍우를 타고 날 수 있는 것은 준비가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는 훈련을 의미합니다. 훈련은 고통을 먼저 선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대가를 얻게 합니다. 자기 분야에 달인(達人)이 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졌어도 그것을 훈련을 통해 연마하지 않으면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독수리가 모든 새들 가운데 왕인 까닭은 혹독한 훈련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무섭게 훈련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높은 하늘에서 자기 새끼를 떨어뜨려 훈련시킵니다. 새끼 독수리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날개에 비상하는 근육을 키우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 태양을 직시하는 눈을 갖게 되고 거친 폭풍우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갖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 폭풍우까지 타고 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하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잘 준비해야 합니다. 잘 준비된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오래 엎드림은 또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고 오래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은 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가장 강한 모습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존귀히 사용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오래 엎드림은 하나님의 때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가 만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고 깨어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기 위해 오래 엎드린 새처럼 살아갑시다. 모든 상황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다스리고 싶어하시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스트레스가 아닌 고통 뒤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죽음의 고통을 인내하신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 되셨고, 불임의 고통을 인내한 한나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론 내게 닥쳐오는 일들이 부당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불행 앞에서 속수무책인 나의 연약함 앞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때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펴기도 하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때가 아닌 주님의 때에 내 삶에 강하게 역사하시며 주님의 권능의 팔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신 때가 곧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를 기다리신다고 했고 또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장11절에도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자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조급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라는 아들을 주실 때까지 참으며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뜻으로 하나님의 일을 촉진시켜 보려다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고 큰 불화와 후세에 전쟁의 불씨를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날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곧 이스마엘과 이삭의 전쟁인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의 꿈을 꾼 다음에 형제들의 모함으로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도 하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지 않고 14년이 나 참고 기다리다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7년간이나 사울왕의 창칼을 피하여 이 굴, 저 굴, 이 바위, 저 바위를 숨어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날이 올 때까지 잘 기다렸기 때문에 대 성군 다윗 왕이 된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큰그릇이 될 수 없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시편 37:7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축복이 안 나타나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참으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도리어 "슬픔과 고 난의 보자기에 축복을 싸다 준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대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다 겪었습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올 때 불평이나 낙심대신 "주여 감사합니다. 이 시험이 지난 뒤에는 무슨 축복을 주시 려고 하십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시련의 크기만큼, 고통의 크기만큼 그 다음에 큰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며 기다릴 때 기적적인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40:1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는 자는 응답을 받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하늘 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참고 기다리며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응답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낙심치 않고 계속 부르짖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애원할 때도 물러설 줄 모르고 계속 매어 달리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때가 되면 내 뜻과 내 생각대로는 안 되어도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은 꼭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기도하며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는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지만 실상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약속을 들은 사람이 500여명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120명 외에는 중간에 다 낙심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못 받은 줄 압니다. 믿고 기도한 것은 은행에 저금한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찾는 때가 옵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은 즉시 이루어 주시고 어떤 기도는 몇 년 후에 이루어 주시고 어떤 경우는 수 십년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2장3절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자.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득이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큰 축복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0:23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십일조를 해도, 봉사생활을 해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말고 움직이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야 합니다. 조급하고 안절부절하는 사람은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기다림이 없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참고 기다리십시오.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움직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참고 계속하십시오. 그럴 때에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때가 오며 축복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 기도: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시는 하나님, 나의 적은 믿음은 주님의 긍휼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때로는 나를 잊으시고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아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을 때에도 묵묵히 나를 위해 기다리시는 주님의 때를 소망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이 만날 때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남을 알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억지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게 하소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정을 등한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제게 기다림 가운데 소망을 잃지 않는 강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저를 훈련시키시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소서. 언약의 줄 끝을 잡고 계신 하나님을 보며 저도 끝까지 줄을 놓치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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