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하나님의 부르심

출4:1-9


기독교 신앙인은 두 번 태어납니다. 자연인으로서 몸으로 태어나는 것 한 번, 그리고 물로 세례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두 번째 태어납니다. 그런데 한 번 더 태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영원한 고향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분의 심부름을 온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심부름을 왔는지조차 헷갈리기도 하고 무슨 심부름을 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시려는지를 깨닫는 것은 인생의 최고 목표이겠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 모세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겐 걱정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실패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12)


우리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유일한 확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오직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하는 성령만이 부르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등, ‘부정적 자질의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모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80세의 늙은 목자였습니다. 다윗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양치는 어린 소년이었고, 요셉은 노예였으며, 다니엘은 포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들을 부르실 때는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많은 예들을 발견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은 소명을 낳습니다. 역사상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특별한 소명을 위해 부르셨다는 믿음으로 사명의 동기를 부여받았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갑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에 화재의 불길로부터 구조되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급격히 세속화되어 가는 영국 교회에 ‘개혁’이라는 소명을 위해 주께서 자기를 살리신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간이 진정으로 소명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질 때, 자신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오직 신앙만이 잠재력에 불을 붙일 수 있으며 삶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보편적인 부르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의 방주 안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이고, 또 하나는 그 사역을 감당케 하기 위해 구원받은 무리들 가운데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부터 지금까지 그의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하셨고, 그 안에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완전한 구원을 예비한 분이 하나님인 것은 더 이상 변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하여 일군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모세의 지팡이

지팡이는 모세가 의지하는 유일한 도구였습니다. 그는 어딜 가든지 항상 지팡이를 들고 다녔으며 힘들 땐 의지하기도 하고, 양을 칠 때에는 채찍으로도 사용되었던 그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 지팡이는 하나님보다도 더욱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팡이를 들고 물끄러미 서 있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지팡이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입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 없는 삶 속에서 사단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 없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며, 살아갈 용기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정체가 사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 돈, 명예, 권세, 지식 등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훗날 우리의 일생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믿는 이들조차 넘어뜨리는 사단의 교묘함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사람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나니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잘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딤전 6:10)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무시되면서 세상과 격리된 채 금욕 생활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을 다시 집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고, 모세는 다시 지팡이를 지니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향해 손을 내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출 14:15-21), 지팡이로 반석을 치니 물이 나왔던(출 17:6) 놀라운 일들이 그의 앞에 펼쳐졌습니다. 지팡이는 이제 더 이상 사단의 소유가 아닙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 없이 존재할 때 분명히 사단의 용도에 맞게 쓰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게도 이와 같은 것들은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 믿으면 지금까지 살며 소유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더욱 능력 있게 쓰여지길 원하십니다. 돈 있는 자는 돈으로, 명예는 명예로, 권세는 권세대로, 지식은 지식대로 주를 위해 쓰여지는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가진 재능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가졌던 자였습니다. 돈, 명예, 권세, 지식 등 남부러울 것 없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난하게 사역을 감당했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그의 고백만을 생각하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주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지식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보다 논리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의 명예(로마 시민권)는 그의 죽음을 연장시켜 주면서 오히려 당시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그의 명성은 각 회당을 다니며 증거 하게 하는데 유리한 여건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가진 재능이나 능력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예수님은 재능의 사용 문제에 대해 보다 강력하게 권면하십니다.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말인데(물론 당시는 화폐단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가진 자가 주어진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와서 주인에게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란트 가진 자는 오히려 '주인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알았다'고 괴변을 늘어놓음으로서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 25:14-30).

결국 하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사용치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능과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주인이 달란트를 나누어줌을 기억하십시오.). 아무튼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깨달았다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사역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품(가슴)에 손을 넣은 모세

하나님은 지팡이가 뱀이 되고, 뱀이 지팡이가 되는 광경을 직접 경험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세에게 이번에는 품(가슴)에다 손을 넣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품속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그의 손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문둥이가 되어 썩어 버린 것입니다. 품 혹은 가슴은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손을 품속에 넣었다 뺌으로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죄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죄인의 상태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즉 양심만이 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아무리 부인해도 죄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죄와 상관없는 순진한 양치기로 신분이 변해 있더라도 여전히 그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순진한 양처럼 변해서 천사와 같은 삶을 산다 할지라도 그의 신분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손을 넣으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다시 행했을 때 그의 손은 깨끗해 졌습니다. 그의 생명 없이 썩어진 죽은 손이 품속에서 다시 나왔을 때 생명 있는 손으로 변화되어 나은 것입니다. 이는 생명 없는 마음은 죽음으로 향하게 하지만 생명 있는 마음은 살리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복음은 가슴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이제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롬 10:17), 더불어 성령께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셔서 항상 곁에서 지켜 주시고,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상에서의 삶의 모양에 따라 상급과 면류관까지 예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종교는 이루어 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없이 행위를 추구하고 그들의 구원을 견고히 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외형적인 모습만으로 볼 때 오히려 더 완전한 구원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이 없는 종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시기 전에 모세를 부르심에 있어서 그에게 나타낸 두 가지 기적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복음 증거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구이기도 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이 도구를 분명히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발견해야 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재능과 생명이 있는 복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사역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생명이 없다면 그는 주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생명이 있으되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결실을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우리의 내면에서 조화를 이루어 결실을 맺어 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결실이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3. 모세의 동역자 아론

하나님은 모세의 부르심을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기 위해 아론을 세우셨습니다. 비록 육신 적으로는 형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완벽한 동역자를 붙여서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 가는 데 있어서 동역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구약이나 신약의 시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정치에 있어서도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쉬운 예로 사울의 주변에는 훌륭한 동역자(충신)가 없었지만, 다윗에게는 그의 생명을 바칠 만한 동역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곳에서 이러한 동역자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동역자가 되어서 다녔습니다. 능력에 있어서나 지식, 또는 살아온 환경 등을 감안할 때 둘은 매우 비슷하고 우열을 가질 수 없었지만 언제나 베드로가 앞서서 증거 했고 요한은 뒤에서 관망하고, 때로는 돕는 일만을 했습니다. 이 일만을 생각할 때 베드로가 더욱 왕성하고 힘있게 사역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실제로는 요한이야말로 귀하게 쓰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쓴 요한복음, 요한 1,2,3서, 계시록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경우도 예의는 아닙니다. 본래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초청했고 안디옥 교회에서는 최초의 선교사로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의 인솔 아래 바울은 협력했고, 1차 전도 여행을 마치는 동안 언제나 인솔자는 바나바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더욱 크게 쓰임 받았던 자는 바울이었고, 바울 역시 항상 그의 동역자를 곁에 두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되기 위해 부르심 받은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생명의 복음으로 무장한 후 좋은 동역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서있는 사람입니까?

저기 들리는 저 진군의 나팔소리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행군할 나팔은 울렸고 주님의 호령은 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떨치고 일어날 때입니다. 일어나 서십시오. 이제는 눈물을 씻고 일어나 전쟁터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서 있는 것은 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세상 가운데 주저앉아 있기를 자처할 때가 있습니다. 당장은 일어설 힘이 없기 때문이라 변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새 힘을 주노라’ 말씀하시며 지금 일어서기를 권고하십니다. 주님의 군사로 임명을 받았지만 주님을 위해 한 번도 싸우지 못한 이 나약한 종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시는 주님. 이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할 때입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 주소서” 세상 가운데 주님의 군사로 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 기도: 저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 저로 하여금 나의 생명을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은사와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게 하심으로 남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유익케 하옵소서 제가 가진 물질로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남을 돕는 일에 후히 쓰게 하옵소서. 나의 시간을 선한 일에만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이기적이거나 육적인 쾌락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사용케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깨닫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을 위해 노력하게 하시며 배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무익하고 썩어질 것들에 결코 마음을 두지 않게 하옵소서. 제게 주신 축복과 은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행하게 하시고,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의 일을 하다가 세상일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하나님의 부르심


스펄젼 목사가 한 번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크리스천의 임무에 대해 설교를 하고 나자, 그의 설교에 몹시 감동한 듯한 어떤 남자가 그에게 와서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 내의 전도 클럽에 자신이 과연 들어갈 수 있는지를 염려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젼은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증기 기관차 기술자입니다'라고 그가 대답하자 또다시 그는 '그럼 당신 기관차의 화부는 개종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닐 겝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요?'라고 하자 목사는 '오! 형제여, 그것이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나면 이제 선교나 전도 또는 목회 등 어떤 특별한 일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우리들에게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고전 7:24 )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가 거한 곳에서 주님께 하듯 우리의 충성을 다할때 그것을 통해 주님을 영광을 받으실것이며 또한 그가 원하시면 다른 일에도 들어 쓰실것입니다. 불행한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도 충성하지 못하면서 다른 어떤 큰 일들을 바라본다는것입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에게 주신 직분과 은사의 뜻을 헤아리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영적, 육적 상태가 어떠한지 민감하게 점검하고 있습니까?

0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달려가야 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0 내게 주신 직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원래의 부르심과 목적대로 직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까?

0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기도 생활과 사랑의 실천, 남을 대접하는 일들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0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선한 청지기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3. 예화(1): 리빙스톤의 소명


어느 날 영국의 한 시골에서 아프리카인을 위한 선교와 의료사업을 위해 헌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헌금을 담는 그릇은 우리의 주머니 모양과는 달리 조금 작기는 하지만 보통은 마치 우리가 사용하는 세수대야처럼 생긴 것이어서 헌금을 넣으면 다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헌금 그릇이 쭉 돌아가면서 헌금을 담게 됩니다.

그러는 중 한 소년 앞에 이르자 이 소년이 대뜸 그 그릇 위에 올라 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짓이냐며 놀라서 묻자 그 소년의 대답인즉 “저는 돈이 없으니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인데 그가 바로 맨 먼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된 저 유명한 리빙스톤이라고 합니다.


* 예화(2): 부르심에 대한 응답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저도 이제부터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하고 신앙의 연조는 얼마나 돼야 합니까 테일러목사는 청년에게 되물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울 발합니까 청년이 대답했다. 그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목사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성경지식과 신앙연륜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당신은 이미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신앙은 한 순간의 결단이다.신앙은 부르심에 대한 거룩한 응답이다. 신앙은 내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엄숙한 행위인 것이다.


* 예화(3): 쫓길수록 부르심에 순종하라


말씀을 묵상하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키실 때는 왜 꼭 바쁘고 정신없을 때만 골라서 시키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좀 있고 여유가 있을 때는 헌금하라는 소리를 별로 안 하시다가,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 때면 헌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빠서 죽을 지경인데 시간 내서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이 비틀거리는데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혹시 하나님에게 고약한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쫓기기 때문에, 쫓기면서 절망하고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날들을 헛되이 사는 것이 죄인 줄 알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눈앞의 현실에 쫓기다 보니 그냥 허겁지겁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이처럼 쫓기는 상황 속에서는 절대로 성숙이나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그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먹고 사는 것에만 바쁜 상태로 우리를 놔두시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죽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의 결단을 촉구하시며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와 납득이 아니라 순종과 결단입니다. 그냥 결단하고 순종해야 할 뿐입니다.


4. 찬송(1): (355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1.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3.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 찬송(2): (35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1.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2. 날 구원하신 예수를 일평생 의지하오니 날 영접하여 주소서 내 구주 예수여

3. 주 십자가에 달리사 날 자유하게 했으니 내몸과 맘을 주위해 다 쓰게 하소서


[후렴] 나 구주위해 살리라 내기쁨 한량 없으리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아 -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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