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협동단결의 중요성과 힘

 

본문: 전도서 4: 9 - 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개미’입니다. 개미들이 떼지어 이동하면 그 길이가 무려 10리나 됩니다. 밀림의 맹수들은 개미떼를 보고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도망갑니다.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도 겁을 먹습니다. 사자는 개미가 이동하는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밀림에서는 개미가 가장 무섭습니다. 개미에게 잘못 걸리면 영락없이 놈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동물의 몸에 붙어 살을 뜯어먹으면 그것을 견딜 짐승이 하나도 없습니다. 맹수들이 개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힘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개미의 무서운 협동심 때문입니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벌레에 불과하지만 수십만 마리가 힘을 합쳐 코끼리를 공격하면 단 하루만에 앙상한 뼈만 남습니다. 협동심은 가장 강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가족을 주신 것은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해 삶의 맹수들인 위기와 고난을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인(人)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인(人)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혼자 있으면 틀림없이 쓰러지고 맙니다.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서 너는 나 때문에, 나는 너 때문에 안전히 서있을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 프랑스에 있습니다. 판데욘(Pantheon)이라는 그림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석하였던 전쟁의 영웅 6,000명 얼굴을 일일이 다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하였던 나라 대통령 초상화 16명도 그려 넣은 대작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그림은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103명 화가가 동원되었습니다. 4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릴레이로 그렸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걸작품은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대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만들어진 걸작품 인생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챨스 웨슬레와 함께 만들어진 감리교 거인입니다. 루터는 멜란크톤과 함께 만들어진 종교개혁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인물의 뒤에는 반드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도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위인과 걸작품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티벳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날 동행인과 함께 눈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 도중에 그는 거의 몸이 얼어서 죽어 가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썬다싱은 그 사람을 들쳐 업고 가자고 했으나 동행인은 그러다가는 같이 죽는다고 하면서 혼자 눈길을 떠났습니다. 썬다싱은 얼음덩이가 된 그 사람을 등에 업고 낑낑거리며 눈길을 헤쳐 나갔습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온 몸에서 땀이 나면서 몸이 더워졌습니다. 그 바람에 동사직전에 있던 그 사람은 몸이 녹아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에 그는 동사한 사람을 눈길에서 또 발견했는데, 그 사람은 썬다싱을 버리고 먼저 길을 떠난 동행인이었습니다. 맹추위와 눈보라를 이기지 못하고 그 동행인은 흰 눈 속에 코를 박고 그렇게 쓰러져 죽어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모든 것이 공존 할 때에 건강하고 질서가 잡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돕고 공존하며 관계가 아름답도록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잔디는 씨앗이 듬성듬성 뿌려지면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씨앗이 서로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을 때 잘 자란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잔디의 자라는 모습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밀조밀 붙은 씨앗이 서로 경쟁을 하기보다는 양분을 나눠가지며 더불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이솝우화입니다. 얼룩 소, 검은 소, 붉은 소 세 마리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언제나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한꺼번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서로 떨어져서 풀을 뜯고 있어서 한 마리에게 달려들면 다른 두 마리의 소가 달려와서 제 동무 소를 위해 덤비기 때문에, 사자는 싸우다가 지쳐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풀밭에 얼룩소가 따로 떨어져 있으므로 사자는 가까이 다가가서 은근한 목소리로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 소가 뽐내더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셋이 똑같이 힘을 합해 적과 대항해 싸워왔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도와 왔는데 붉은 소가 모두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했다하니 건방진 소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자는 얼룩소에게 거짓말을 해 놓고는 붉은 소와 검은 소 있는 데로 가서는 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세 마리 가운데서 얼룩소가 제일 기운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 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니 그게 참말이냐?"고 두 마리 소에게 물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는 얼룩소의 말이 건방진 소리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이라 있는 힘을 다해 덤볐습니다. 검은 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 중 어느 편이 정말 센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놀지를 않았습니다. 사자는 좋아라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었습니다.

협동단결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욕심(탐심)과 경쟁심(시기심), 이기심(자기중심)입니다. 이것들을 내 마음에서 제거하고 청결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1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 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다 놀라며 예수님을 좇으려하자 이를 시기한 사람이 예수가 귀신을 내 쫓은 것은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하시면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때 신라가 통일시키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더라면 지금의 만주땅은 우리 것이 되었을 텐데 하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그 강성했던 고구려가 망한 이유는 막리지 연개소문에게 3아들이 있었는데 3형제가 서로 싸워 분쟁하는 통에 망한 것입니다. 이 3형제가 힘을 합하였더라면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왜 협동 단결하여야 하는 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외롭거나 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도 형제도 귀찮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화목이니, 우애니, 친절이니 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인 것같이 여겨집니다.

"0"이라는 수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0"은 그 자신이 외롭고 초라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이 있어 줄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0"은 1, 2, 3... 모든 숫자를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작고 가진 것이 없는 "0"의 친구가 되기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0"은 좌절감에 빠지고 맙니다. "1"도 "0"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찾아 헤맸지만 거만한 숫자들에게 거절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1"과 "0"은 친구가 되어 "10"을 이루게 되자 이제까지 무시하고 멸시했던 숫자들이 모여들어 친구가 되기를 간청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작고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뭉치고 합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1"이나 "0"은 분명히 "8"이나 "9" 보다 작고 초라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10"이라는 수는 확실히 "8"이나 "9"보다 크고 우월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힘없고 작은 사람들이 협동하여 큰일을 이루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1명의 힘없고 낮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늘의 기독교를 이루었듯이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인들을 서로 만날 때마다 한 형제, 자매로 만나 서로 어울리고, 함께 모여 교제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히10: 24, 25, 행2:44- 47, 롬12:15,16)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나 빈부의 차이나 학벌의 차이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연합하여 사랑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격이 다르고, 받은 은사가 다 각기 다를지라도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화목한 분위기를 서로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서 1 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2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이 두 말의 주인들은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 말이 함께 썰매를 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어 함께 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일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서로 도우며 공생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뿔소는 시력이 대단히 나쁩니다. 그러나 이 동물의 거친 살갗에 몰려드는 새들이 있습니다. 이 새들은 코뿔소의 등위에서 곤충들을 잡아먹는 대신 그들의 민감한 감지력으로 코뿔소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레이틀이라는 오소리의 일종과 두견새는 모두 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둘은 같이 행동합니다. 아주 좋은 시력을 가진 두견새는 꿀이 있는 벌집을 잘 찾아내고 레이틀의 강한 발톱은 벌집을 파헤쳐 같이 꿀을 나누어 먹습니다.

 

저는 T.V에서 방영하는 동물의 세계를 자주 보는데 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서로 협동하여 사냥도 하고, 협동하여 적을 물리치기도 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처럼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인데 이 질서가 이기주의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멸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의 합창단과 같습니다. 그런데 종종 독창만 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가 나고,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화합하여야 합니다.

 

출애굽기18:14-26절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혼자서 백성들을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하자, 모세에게 충고하여 천부장, 백부장 등을 세워 협력하게 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6장 1- 7절을 보세요. 초대 교회 때도 사도들이 집사들을 세운 것은 하나님의 일을 혼자하기에는 너무 벅차므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전무)하기 집사들의 협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농촌에는 계, 향약, 두레, 품앗이 등의 좋은 협동단결의 풍속과 장신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논밭을 갈 때 각자 뙤약볕에서 혼자서 끙끙거리며 자기 밭만을 가는 것과 이웃이 함께 모여 풍악을 울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한 집 한 집 다니면서 논밭을 함께 가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쉽고 능률이 나겠습니까? 두레, 품앗이 등의 협동정신을 계승합시다.

 

넷째, 여럿이 힘을 합친 것이 혼자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어느 농부의 자식들이 싸우기를 잘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아무리 타일러도 싸움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로 타일러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이른바 실물교육을 할 수 있는 묘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회초리 한 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자식들은 각기 회초리 한 단씩을 가져왔습니다. 아버지는 먼저 그 회초리를 자식들에게 내어주면서 그것을 꺾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초리 단을 꺾는 아들은 없었습니다. 자식들은 땀을 흘리면서 애를 썼으나 끝내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회초리 단을 내려놓고 꺾을 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그 회초리단을 풀어서 한 개비씩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꺾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식들이 모두 힘 안들이고 그 회초리를 꺾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너희들은 서로 합심하면 결코 적에게 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서로 싸우고만 있으면 적에게 패하고 말 것이다." 주안에서 한 지체가 되고, 한 형제 된 성도는 서로 사랑하고, 협동 단결해야 합니다. 협동은 환난 날에, 그리고 마귀의 핍박에서 이길 수 있는 훌륭한 비결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설 속에 나오는 피히 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피히새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컷은 오른쪽 날개가 있고, 암컷은 왼쪽 날개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각각 떨어져 있을 때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기에 앞으로 날지 못하고 한참을 날아 이제는 산 넘어 왔겠지 하고 보면 그저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컷과 암컷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한 몸이 되어 날아가면 그들은 높은 곳이나 낮은 곳 그리고 먼 곳 어느 곳이나 훨훨 날아다닐 수 가있습니다. 서로 한 몸을 이루어 협동하고 서로의 날개짓을 격려해 줄 때 가장 아름답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히새처럼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요 근래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처녀, 총각들이 있는데 결혼 안 하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나이가 많이 들면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40이 넘은 노처녀, 노총각들이 얼마나 후회하는 지들 몰라요. 혼자보다 둘이 힘을 합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기러기들은 v자 대형으로 하늘을 납니다. 비행기와 망원경으로 기러기를 추적한 조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 수 있다. (2), v자 대형을 이루는 것은 공기대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의 비상이 쉽기 때문이다. (3), 날면서 계속 우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상대를 격려키 위한 것이다.

잠언30:24-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개미와 메뚜기에게서 지혜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미와 메뚜기에게서 무엇을 배우리는 것입니까? 바로 협동 단결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기러기와 벌과 개미와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에게서 협동의 정신을 배웁시다.

작은 것이라도 모아지면 커집니다. 어떤 교회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각 가정에서 쓰지 않는 헌옷, 책, 장난감을 모으고 여집사님들이 음식 장만하여 행사하는 데, 제법 큰돈이 마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찮은 것도 모아지면 귀중하게 쓰여집니다.

 

여섯째, 협동하지 않고 분쟁하면 둘 다 공멸하기 때문입니다.(마12:25, 딤전6:4)

독일 베벤하우젠 근처의 오래된 수도원에 가면 서로 엉켜 있는 두 개의 사슴뿔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럴 때 원장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이 뿔은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입니다. 두 개의 뿔이 엉켜 있다는 것은 두 마리의 사슴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상대방의 뿔 속에 자신의 뿔을 쑤셔 넣음으로써 그만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고 버둥대다가 끝내 둘 다 굶어 죽게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숲에 참새 집이 있었습니다. 참새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토끼가 와서 살았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을 지켜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재판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참새와 토끼는 고양이에게 재판을 부탁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 앞에서 또 한 번 싸워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악이 오른 참새와 토끼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고 고양이는 번개처럼 달려들어 참새와 토끼를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3:9)

 

일곱째, 협동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위기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새를 잡기 위해서 여기저기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어느 날 여러 마리의 참새들이 그물에 걸려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물에 걸린 참새 가운데 한 마리가 외쳤습니다. "이대로 잡힐 순 없다. 살아야 한다. 자아, 우리 모두 동시에 힘껏 날아올라 이 그물을 저 큰 나무에 걸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새들이 동시에 힘껏 솟구쳐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무겁게 쳐져 있던 그물이 움직였습니다. 참새들은 그물을 큰 나무에 걸고서 모두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참새처럼 모두가 한 곳에 힘을 합하면 힘든 일도 잘 풀리게 마련입니다. 우리 속담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의 속뜻을 실감나게 합니다. 주어진 일에 체념만 하고 앉아 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여덟째, 힘은 하나될 때에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힘의 세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됨(Unity), 둘째, 조화(Harmony), 셋째, 협력(Cooperation)입니다. 자동차 한대를 만들기 위해 약 2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2만 개가 모여서 하나의 자동차가 됩니다. 자동차 한 대가 제대로 되려면 그 부속품 하나하나가 전부 제구실을 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말썽을 부리면 안 됩니다. 어느 것 하나도 빼 놓고 달릴 수 없습니다. 2만 개의 부속이 똑같이 힘을 협력해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힘과 둘의 힘을 합하면 셋의 힘이 되는 것이 힘의 원리로되, 협동의 원리는 넷이나 다섯의 힘이 생기는 것이요,(시너지 효과) 한 사람의 두뇌보다 두 사람의 두뇌를 합하면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에는 늘 그늘이 지고 습기가 잘 증발 하지 않아서,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속에 내가 있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쉽고 당연한 일 같지만, 어찌 보면 그처럼 어렵고 힘든 일도 없습니다. 공동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실천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1- 3)

 

아홉째, 협동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궁궐에 아주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신기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두 사람의 경비원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소경이었고, 한 사람은 난쟁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신비의 열매를 따먹고 싶었으나 너무 높은 곳에 과일이 열려 손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꾀를 냈습니다. 소경이 난쟁이를 목말 태우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쪽으로 이동하며 실컷 열매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임금님은 열매가 없어진 것을 알고 두 경비원을 문책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각각 울부짖으며 호소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제가 어떻게 열매를 품치겠습니까." "난쟁이가 어떻게 저 높은 곳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은 두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비록 옳지 않은 일이라도 둘이서 힘을 합하면 묘안이 나오는 법입니다. 하물며 좋은 일을 위해 여럿이 힘을 모으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협동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꿉니다. 사람이 역경을 만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웃과의 협력입니다.

 

열 번째, 우리는 모두가 연약한 존재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목공소에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망치야, 너는 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망치는 '내가 떠나면 톱도 떠나야 한다. 이것저것 무엇이든지 사정없이 잘라내니 말이다.'라고 대꾸했다. 톱은 '내가 떠나면 대패도 떠나야 한다. 대패는 항상 남의 깊은 속은 모르고 겉만 보고 깍아내니 떠나야 한다.' 그러자 대패도 한마디했다. '내가 꼭 떠나야 한다면 자(尺)도 떠나야 한다. 자는 항상 자기 것만 옳다고 하며 모든 기준을 자기중심으로 해서 크고 작다고 평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목공소 연장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나사렛 목수가 들어와서 작업복을 갈아입으시더니 강대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사렛 목수는 강대상을 만들 때에 대패, 망치, 톱, 자 등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사용했다. 하나님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4절에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여지기 위하여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은사와 직임이 서로 다르고 각자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르다고 쓸데없다 하거나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고전12:4-27) 만약 한 지체라도 없으면 병신이 되거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목수에게는 톱, 자, 대패, 망치 모두가 다 필요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만들고자 하는 물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하늘나라를 건설키 위해서 주님은 어느 한 사람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던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부활과 승천하시는 구속사를 성취시키는 데 한 도구의 인간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중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 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용서와 이해, 인내와 사랑 가운데서 서로 협동하며, 몸 된 그리스도의 한 지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이 지구도 하나뿐입니다. 우리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 협동단결하여 교회가 새롭게 부흥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주님,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시고 저희들에게 자유와 건강과 주를 경외하는 마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 우리의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합니다. 저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변화시켜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어 겸손과 온유와 사랑이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고, 돕고 용서하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우리 입술을 지켜주시고 항상 친절하고 격려하며 도움되는 말과 입술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인내로서 아무리 힘든 사명도 완수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도들이 협동단결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교회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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