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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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인의 결과
(마 16:21-28, 요 12: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얼었던 땅이 녹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나무들마다 파릇 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새싹만으로는 그 나무의 열매가 어떨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밤나무에 밤이 처음 맺혀서 성숙하기 전에는 껍질을 벗겨봐도 어떤 것이 알맹이인지, 어떤 것이 껍질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충분히 익으면 껍질과 밤알이 분명히 구분이 되고, 완전히 성숙하면 저절로 껍질이 벗겨지며 알맹이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를 처음 믿고 구원받았을 때에는 어떤 것이 내 육신의 생각이고 어떤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생각인지 분별하기 어렵지만,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자기의 육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영적인 생각을 뚜렷이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를 오래 믿고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육신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몸을 벗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항상 육적인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생각을 따라 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육적인 생각 즉 자기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언제 하셨는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베드로를 책망하신 후에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 안된다는 인간적인 온정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육에서 나온 자기의 생각이지, 영에서 나온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당보다 높은 것처럼 엄청나게 달라서, 같은 한 사람 속에서 나오는 생각이라도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성령을 따라 행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8:6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나 자신의 생각입니다. 이 자(self)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날마다 부인해야 참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나 녹음기 중에는 전기로도 사용하고 밧데리로도 사용하는 겸용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밧데리를 육신의 생각이라 하면 저기는 영의 생각이라고 비유해 보곤 합니다. 전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다함이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속 충전받기 위해서는 밧데리를 뽑고 전원에 연결시키듯이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자신의 지식, 총명, 말재주, 기술 등을 의지하지 말고 그런 재능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 부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진정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것 같았지만 유신의 생각으로 말할 때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자기'(self)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사단이 침투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일을 결국 망쳐놓기에 항상 자아(self)를 죽이고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장차 베드로를 완전한 하나님의 봉사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와같이 책망하고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엿새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변화산상에 데리고 가서 철야하며 기도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햇빛보다 더 밝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고 말하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한 말도 자기의 육신에서 나온 말이지 영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에 구름이 저희를 덮어 버리고 '너희는 예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은 하시면서도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 속에 계시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무 것도 알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번은 베드로가 밤새도록 노력했으나 고기 한 마리도 못잡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기뻐하고 춤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고백하며 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자기 육신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생겨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축복도, 진정한 의미의 성공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서는 날마다 죽고, 철저하게 자신의 것에 대하여 쳐서 복종시키고 털끝만치도 자신에게 의뢰할 마음이 없어져야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있게 되니다.


 2.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간신히 구원만 받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까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영적인 성장은 자기를 부인한만큼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내릴만큼 용감했으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헌신한 뒤에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언제 사단의 시험에 빠져 타락하고 범죄할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닭 울기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해 주실 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4, 35)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으지하는 육적인 생각이었으므로 머지않아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자기를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무모한 일인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또한 거듭된 실패를 통하여 위대한 영적인 성장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런 지경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는 겨우 애굽사람 하나 쳐죽인 살인범밖에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가 40년이라는 고난과 연단의 기간을 거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두이에야 비로소 전이스라엘을 이끄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실패와 비극의 원인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다윗 왕이 잠깐 사단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보다 군대를 더 의지하고 뽐내려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계수한 다음에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하룻밤 사이에 장정 7만명이 죽어 넘어지는 큰 변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다윗은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비결을 배우게 된 줄 압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씀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서 성장하는 성도의 신앙의 깊은 경지를 갈파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부인이 없는 영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를 앞세우고 날마다 죽을 뿐아니라 순간마다 죽어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지는만큼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생명의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합니다.

 요 12:24,25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희랍어 원어 서경에는 미워해야 될 처음 생명이 '푸쉬케'(psuche)로 되어 있고, 영생하도록 보존할 생명은 '조에'(zoe)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나오는 생명인 '푸쉬케'는 자아를 나타내는 육신의 생명 혹은 자연적인 생명(natural life)을 의미하고, 나중에 나오는 생명인 '조에'는 영적인 생명(spiritual life) 혹은 초자연적인 생명(supernatural life)을 의미합니다. 자기 즉 육의 생명을 사랑하면 영의 생명을 잃게 되고, 육의 생명을 미워하면 영의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자기가 부인되고 죽어질수록 영적 생명을 많이 살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통로(living channel)가 되려면 옛 사람인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고후 4:12에서 말씀했고, 10절에서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많은 생명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만큼 많은 생명을 살릴 수가 있고, 많은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라고 하는 생명(psuche)은 세 가지로 나타는데, 타고난 재능과 감정과 마음이 그것입니다. 말재주를 타고 났다든지, 명석한 두뇌를 타고 나서 선천적으로 조직과 운영에 뛰어나다든지 하면 자기의 육적인 그것을 의지하게 되지, 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간절히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재능이나 감정, 명석한 두뇌는 하나님 앞에서 부인되어야 하고 십자가에 넘겨줘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철두철미하게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에 전도할 때 인간의 아름다운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에만 의존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전 2:1-5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다고 철저하게 느끼고 부인하며, 다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될 때에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지는 만큼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즉 자기의 타고난 재능이나, 조직적인 두뇌나, 기억해 둔 지식이나, 감정과 애정으로 호소하는 인간적인 방법 등이 다 죽어져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권세욕에 대해서 죽어지는 만큼 영적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귀하게 쓰는 종들이나 성도들은 많은 실패와 고통을 통해서 자기의 자아가 깨어지고, 자기에 대해서 실망하며 완전히 부인하게 되는 뼈저린 경험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육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영적인 성장을 하며,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어감으로써 주의 뜻대로 살아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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