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세속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적 삶의 역설적 대원칙을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당시 주님의 입성을 환영한 유대 군중들은 물론 헬라인 순례자, 또 제자들마저도 주님을 통하여 이 세상의 부와 존귀와 안녕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영적 생명-하나님과의 관계적 생명-을 모든 자연적인 생존 원리보다 귀중하게 취급해야 할 것을 강조하시며(참조, 마 10:39; 16:25; 막 8:35; 눅 9:24; 17:33), 그 영생을 향유하려면 십자가라는 관문을 필히 통과해야만 함을 본문에서 은유적으로 역설하신 것입니다. 23-26절 말씀 전체가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 의혹해하는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 속죄의 필요성과 그 속죄와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모든 삶의 영역을 다각적으로 조명하신 내용으로써 본문 말씀은 그중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살펴보겠습니다.

   1. 생명의 참된 의미
   1) 자연적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해 아래 인생들이면 누구나 소유한 모태로부터 가지고 나온 육체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니고데모가 생각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입니다(참조, 요 3:4). 이 생명은 부모로부터 누구나 부여받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자신의 육체의 수명이 끝날 때 단절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숨졌다'는 말은 이 육체적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육체적 생명의 참된 의미는 육체적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는 데 있습니다. 인생이 호흡이 있는 동안에 영원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육체적 생명의 가치는 동물보다 나을 바가 없는 것입니다(참조, 전 3:19).
   2) 사회적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육체적 생명보다 그 의미가 깊고 다양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이 사회적 생명의 의미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원시인들이 육체적 생명 속에서 살았다면 문명 사회인은 이 사회적 생명 속에서 삽니다. 이 생명은 다른 말로 하면 '정치적 존재로서의 생명'입니다. 기계화된 문명 구조, 상업화한 사회 구조 속에서 경쟁에 낙오되는 이는 바로 이 사회적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생명의 농도는 그가 사회 안에서 어떤 정치적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겠습니다. 그 정치적 위치-부모로서의 위치, 학생으로서의 위치, 직장인으로서의 위치 등등-가 뛰어난 이들을 우리는 '유능한 사람', 그 반대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사회적 생명이 아주 풍성한 이를 '성공자, 권세가'라고 부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 사회적 생명을 그리스도께서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주님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참조, 요 11:47-52). 또 당시의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이 우리들도 이 생명을 더 강화하려고 그리스도를 뒤좇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생명을 하나님께 기꺼이 귀속시키는 자세가 바로 신앙이며, 이 사회적 생명을 보존, 강화하고자 이기주의, 안식주의의 삶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과, 끝내는 하나님의 대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이 바로 불신앙이며 죄악이라는 것이 요한복음의 메시지인 것입니다(참조, 요 12:42, 43).

   2. 생명 보존의 원칙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적용하며, 동행하는 것이 바로 참 생명-하나님과의 관계로서의 생명-을 얻는 길이며, 보존하는 길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 길의 문이 바로 그리스도와 속죄의 십자가입니다.
   1) 십자가의 속죄를 믿음으로 거듭남
   인생들의 현세적 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과 죄성 때문입니다. 일차적인 생명 보존의 법칙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는데 덧붙여 거듭나는 방법을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참조, 요 3:16).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적으로 연약하므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죄로 인한 우리의 영적 사망을 살립니다. 끊어진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의 줄을 잇습니다. 신앙이란 나의 삶의 영역을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까지 넓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하늘 세계로 거듭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적용함으로써 보존됨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연적 본능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참조, 고후 4:10, 11). 이는 거듭난 성도라는 아직은 '현세적 생명의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죄의 본능을 원수로 삼고 그 본능을 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참조, 갈 5:24). 이 본능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영적 사명은 보존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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