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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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3 - 마태 (결단력이 있었던 사람)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 오늘은 사도로 쓰임을 받았던 세리 마태를 만나보겠습니다. 마태라는 말은 맛다리아, 즉 맛다리아 라는 말은 여호와의 선물, 야훼의 선물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졌는데요, 헬라어로 말할 때는 맛다요스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의 본명은 원래 레위였습니다.


그가 회심한 후에 레위라고 불려 지지 않고 그냥 마태로 계속 불려지고 있는데 그는 가버나움 태생이며 직업은 세리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패오였지요. 성경에는 알패오가 두 번 나오는데, 한 사람은 마태의 아버지 알패오이고, 한 사람은 야고보의 아버지 알패오가 있습니다. 세관에 앉아서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나를 쫓으라. 한 마디 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는 두 말 없이 따라 나선 사람이 이 바로 마태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자신의 직업을 분명히 부끄러운 직업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열 두 제자 이름을 다 기록할 때 자기 이름 앞에는 그 부끄러운 직업 세리라는 글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이렇게 나가다가 자기 이름 앞에는 세리 마태 그런 떳떳치 못한 사람이었다 하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관에서 근무 했다며는 틀림없이 베드로와 야고보, 안드레, 요한, 빌립 이런 사람들과 면식이 있었을 것으로, 아는 사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신 것과 마태가 또 많은 세리를 자기 집에 초청하고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참석하시고 식사를 같이 하신 사건은 삽시간에 주변에 알려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또 여리고에 있는 세리장 삭개오도 진작부터 이 소문을 들었을 것이 틀림없죠. 거기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과 마태가 따르고 있는 것 때문에 예수님께 이상한 별명이 들어붙었죠.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예수님 아주 기념비적인 별명이죠.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확정하기는 어렵지마는 마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당시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을 것입니다. 세리라는 직업이 자신에게는 떳떳하지 못하던 차에 예수님 부르심을 받고는 떨치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세리로 오래 젖어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따라 나서기가 어렵지요. 또 마태복음을 기록하도록 오래 살았던 것을 감안 하며는 아주 젊은 나이였을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부름 받을 당시에. 그는 헤롯 안디바가 지배하는 다메섹에서 지중해로 뻗은 도로, 비아마리사라는 그 길에 있는 아주 유명한 세관에서 그 세리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세관의 세리로 일한 것을 보면 당당한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아마 그 여러 가지 실력으로 보며는 마태가 제일 나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세관에서 세리 업무를 보려고 하며는 4개 국어 정도는 능통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히브리어는 자기 모국어니까 할 수 있겠고요, 그 갈릴리 북쪽의 가버나움 이 쪽은 아람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아람어를 하며는 바벨론, 페르시아까지 다 통하는 언어였으니까요. 아람어가 그 당시에 상당히 큰 언어였습니다. 히브리어보단 훨씬 더 큰 언어였지요. 그 다음에 헬라어는 뭐 기본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할 수 있을 정도의 헬라어 실력이 있었고, 로마의 관리로 또 있으니까, 라틴어를 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적어도 4개 국어는 뭐 능통한 사람이 이 세리 마태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리 업무를 보다 보면 기록하는데 아주 명수들이지요. 그러겠지요. 한 번만 기록 안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니까, 결국은 이 열두 제자 중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과 귀한 말씀들을 기록한 사람으로서 요한은 이제 나이가 아주 많도록 늙을 때 까지 살았으니까, 기록했습니다만 열 두 사도 중에서 사실은 요한 말고는 마태 하나만 기록한 거예요. 복음서를. 베드로도 뭐 헬라어가 그렇게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가 요한의 통역을 필요로 했을 정도니까 복음서를 기록한 다는 건 좀 어려웠을 것이고요. 다른 사람이 해봤자 뭐 갈릴리 어부들 다 비슷한 사람들인데, 마태만한 실력을 갖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마태는 아주 듣는 것도 아주 잘 들었을 것이고, 자기 같은 세리를 불러 주신 예수님 은혜에 대해서 아마 감격하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 마태가 일하던 그 가버나움은 다메섹을 거쳐 갈릴리를 지나가는 무깃도로 해서 해변을 따라 또 지중해변을 끼고 가는 가사로 가는 길도 있고요, 서남쪽으로 내려가서 베시아를 지나가지고 왕의 대로를 통해서 에스온게벨 즉 지금의 아카바로 가는 구스와 애굽으로 가는 통로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통이 아주 매우 빈번한 길에, 길목을 지키는 그런 세관이었습니다.


그는 헤롯 정권의 수하에서 일함으로서 동족, 유대인에게 배반자로 낙인찍힌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그러한 마태를 불러서 제자로 삼으신 것이지요. 그는 소명을 받은 후 자신의 집으로 당시 세리였고, 동료였던 사람들 많이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잔치를 하는데, 그리고는 자신의 신앙적 결단을,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자신의 입장을 아주 분명하게 해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무도 다른 세리들이 다시 딴 말 하지 못하게 공식적으로 난 오늘 이 잔치 상석에 모신 이 분을 내가 따라가게 됐다, 하는 세리를 청산하는 잔치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그저 예수 믿는 걸, 숨어서 믿는 그런 분들이 있는데 그거는 정말 마태를 우리가 좀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 믿게 된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서 자기 동료들 다 불러서 그 잔치를 하면서 오늘 이후로는 내가 이 분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을 아주 공공연하게 천명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따른 3년 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복음서를 봐도 마태가 한 말이 한 마디도 안 나옵니다. 그는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던 사람이지요. 그리고는 아마 가만히 그 말씀들을 더러 기록을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마태는 예수님 말씀, 말씀을 갖다가 기록한 것 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비유 같은 것도 아주 너무 감동적이니까 고걸 차곡차곡 한데 모아놨고요, 또 금쪽 같이 말씀하셨던 그 산상복음의 같은 내용도 기록하지 않고 그것다 외우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세월이 오랜.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라고 하며는 적어도 예수님 설교했던 해로부터 한 30년 후에 기록한 건데, 30년 동안 그걸 다 기억력을 다 믿긴 어렵지요.


마태가 아주 습관적으로, 직업적인 그런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 하신 말씀이 너무 귀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아마 기록을 해 놨던 것 같습니다. 열 두 제자 중에서 글줄이나 기록할 줄 아는 제자는 마태 밖에 없었던 것이 분명하고요, 적어도 세관에 앉아서 근무하던 그의 실력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마태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비교적 늦게 순교한 것으로 봅니다. 그가 마태복음을 쓴 것은 60년에서 65년 정도까지 보거든요. 그러니까 적어도 예수님 이후에 약 30년 이상 살아서 쭉 또 보면서 기록을 해 간 거지요. 예루살렘에 핍박이 심해 질 때 아마도 갈릴리 주변이나 안디옥으로 갔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족, 즉 유대인들을 위해서 복음서를 썼습니다.


마태는 마가의 자료를 거의 수정 없이 수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마가의 복음서를 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당히 세월이 흐르도록 마태가 살아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지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비교적 늦게까지 생존 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증명이 될 수 있겠는데, 안타까운 것은 마태의 행적, 마태 행적이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그 지연되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한 흔적을 좀 볼 수가 있거든요.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이러한 사실도 마태복음이 기록된 연대와 마태의 생존 기간이 상당히 후대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는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이 복음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가 다윗의 그 왕위를 계승하는 왕가의 계보에 탄생했던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것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을 증거 하면서 구약성경에서 예언되고 예언되었던 그 기다리던 그 메시야임을 증거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게 보이고 있지요.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과 근원과 말씀과 생애와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려 오던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 하려는 것이지요. 그는 구약 전체를 상당히 깊이 이해하고 이 복음서를 쓴 것 같이 보입니다. 오경의 예언들과, 시편의 예언들,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 미가 스가랴의 예언을 거의 망라하여서 그 성취로서 예수님이 오셨다 이렇게 인제 증거 하는 것 이지요.


그가 기록한 마태복음은 창세 이르러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리로 재직할 때 그는 내적으로 깊은 그 영적 고민과 번뇌를 가졌던 청년이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을 철저히 정리하고 친구들을 아예 집으로 초청하여서 거기에서 예수님을 초빙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더 나아가 다른 동료, 친구 세리들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하는 그런 열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회개하기 전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아왔으나, 예수님을 따라 나선 후 양심의 자유를 맛본 뒤로는 매우 양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겸손하면서, 과묵하고, 평소에 말없이 봉사했지마는 갈수록 동족에 대한 사랑이 뜨거워져서 마침내 구약성경과 역사를 공부하고 이 복음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마태는 당시에 고등교육을 받았던 사람 같이 보입니다. 그 지식과 학문적 재능이 떳떳하지 못한 일에 바쳐서 봉사하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영원한 가치 있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그 달란트는 무엇을 가지고 얼마나 열심 있게 활용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에 마태의 복음서는 언제나 신약성경의 맨 첫 머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복음서를 맨 먼저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의 산상복음은 그 부분만 가지고도 불후의 도덕과 최고의 윤리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장 비약한 죄인으로 지목받던 세리의 손으로 최고의 윤리가 기록됐다는 데서 이런 변화시키는 주님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파렴치한 눈으로 보이던 그런 세리를 변화시켜서 가장 존귀한 사도로 쓰임 받게 되는 변화를 우리가 접하게 되면서 정말 우리가 어떤 사람을 뭐 세리라고 욕하던 입을 가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리도 주님 손에 이렇게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 성도님들이 마태가 기록한 이 마태복음을 정말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읽으시는 중에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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