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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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5 빌립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람)




오늘 만나 볼 분은 빌립입니다. . 빌립은 아주 사리에 밝은, 그리고 계산에 아주 빠른 그런 하나님의 사람인데, 그 이름은 헬라식의 이름이지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그 이름의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교적 보수적인 편인데도, 이렇게 헬라식의 이름을 가진 상당히 있은 것을 보면 문화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지요.


성경에는 빌립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이 있습니다. 사도 빌립 외에, 또 집사님으로 선출된 빌립이 있었고요. 또 헤롯 대왕이 하스몬 왕가의 대 제사장 시몬의 딸 마리암네를 맞아서 낳은 아들이 또 빌립이 있습니다. 구별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보통 헤롯 빌립이라고 하지요. 그의 이름이 헬라식이어서인지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먼저 빌립에게로 찾아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다시 안드레에게 말하여서 헬라인들과 예수님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빌립은 안드레,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벳세다 출신이고, 같이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열 두 제자 중에서 상당히 일찍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데요, 대체로 빌립은 안드레와 마음이 좀 잘 맞는 편이었어요. 빌립 이름이 나올 때는 그 앞에나 뒤에 꼭 안드레 이름이 연이어 나오는 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다니엘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빌립의 이름과 나다니엘의 이름이 연이어 나오는 경우가 또 많습니다.


빌립은 매우 현실적이고, 그리고 사리에 밝고,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그런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며는 그 비용을 계산하는데 아주 빠른 사람이었어요. 성경 한 번 읽어보시렵니까. 요한복음 65-7절인데요.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정말 계산이 빠르네요. 아주 컴퓨터 정답이 나왔지요. 예수님께선 때때로 어떤 그 유머가 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빌립의 그 빠른 계산을 재미있게 여기신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수천 명의 무리가 주님께로 몰려 왔지요. 뭐 남자만 5000명 되었다고 하니깐,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거예요. 예수님께서 빌립을 재밌게 생각 하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깐, 빌립은 예수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벌써 무섭게 계산이 나왔는데요,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정말 컴퓨터처럼 계산 대답이 나오네요. 그러나 문제는 빌립의 사고방식에 있는데요, 그는 말하기를 각 사람에게 조금씩입니다. 일단, 조금씩이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그리고는 또 이 백 데나리온의 그 금액을 설정한 다음에 결론은 부족할 것으로 끝이 납니다.


어쩌면 빌립은 아마 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뭐 여럿이 갈라 먹을 때 맨 날 모자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자란 것 같아요. 빌립이 만약 풍성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그의 대답은 사뭇 다르게 나왔겠지요. 뭐 가령 예를 들어서 주님 이 사람들에게 배부르게 먹이려면 한 오 백 데나리온이 있으면 풍족하겠나이다, 이렇게 나오면 될 텐데, 항상 부족하게 살 던 사람은 항상 부족하게 생각하고, 부족하게 말하고 또 결국은 부족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요.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빌립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모자라고, 저렇게 하면 또 모자라고, 결론은 모자란다 이렇게 결론이 모자라는 걸로 나오는 거지요. 또 좀 더 부정적인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어떻게 해서 안 되고, 결국은 또 안 되고, 그래서 안 되는 걸로 결론을 내는 그런 분도 참 많지요. 이런 사람들은 대개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어렵게, 그렇게 부정적인 환경에서 자라 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생각이나 계산처럼, 조금씩 주신 것이 아니라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빌립은 돈 걱정부터 했는데,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지요. 그렇죠? 그리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남았잖아요. 열 두 광주리나 남은 것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빌립이 계산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빌립에게는 그 사건이 큰 충격이 아마 되었겠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그렇게 심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래전에 광야에서 그런 훈련을 이미 받은 사람들이지요. 꼭 무슨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해야만 먹고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대로 하면 하늘에서 내리시는 양식을 먹일 수도 있고, 신발과 옷이 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빌립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하는 제자가 있었지요.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 하고 말했던 사람이 빌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니까, 이 말은 부친이 막 별세하신 것이 아니라, 부친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때 예수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었는데, 예수님께서 죽은 자의 장사지내는 것은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쫓으라 그렇게 한 것이 빌립의 소명장 이었다 이렇게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하여간 빌립은 정말 어렵게 자라 온 것은 사실 같아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그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육신의 양식만 가지고 살지 못하고, 영적인 양식 곧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다 이렇게 해석을 하지만 그것 역시 진리는 진리죠. 그러나 그보다도 그 본래 말씀은 실제로 육신의 양식을 두고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꼭 무슨 농사를 지어 얻은 밀로 만든 떡이 있어야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문제는 적어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이방인이 염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위와, 우리의 입과, 우리의 영향체계를 설계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빌립을 만나기 위해서 최후의 만찬 석으로 한 번 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예수께서 그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 빌립이 자기 평생에 조금 궁금해 하던 것, 아버지를 좀 보여 주옵소서, 예수님 말고 아버지를 좀 보여주셨으면 좋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의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그렇게 말씀했을 때 도마가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 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나이까? 도마하고 빌립은 상당히 이 비슷한 면이 또 있는데요. 지금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리라 하니까 도마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말합니다.


도마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턴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하니깐 바로 또 빌립이 나옵니다. 그냥 나올 듯 하지요. 벌써, 빌립하고 도마는 아주 현실적이고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몰라도 모른 척 하고 있는데, 빌립하고 도마는 모르면 그냥 가만히 넘어가지 않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 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들을 때 그것이 어렵지요. 사실 예수님 말씀이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베드로는 아주 말을 직선적으로 쉽게 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제자들은 모를 때는 그냥 잠자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즉 도마와 빌립은 좀 다르지요. 그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지는 못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인다고 말하고, 보고 싶은 것은 보고 싶다고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현실적이면서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그런 제자들이었어요.


도마와 빌립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빌립의 이러한 자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했던 것 같아요. 영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믿지 못하니깐 예수님께서 빌립 같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육체로 오셔서 삼 년간 같이 그 동거하셨는데, 또다시 무슨 하나님을 보겠다고 하니깐 참으로 딱한 노릇이지요. 그러나 빌립이 한 질문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어리석은 질문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느 시대나 빌립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빌립을 찾아가서 만나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던 사람이지만 빌립도 오순절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헬라화 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소아시아의 내륙 깊은 곳에 나아가서 브루기아 지방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브루기아에 가며는, 브루기아에 두 도시가 있습니다. 한 곳은 골로새고요, 한 곳은 히에라폴리스인데, 히에라폴리스, 라오디기아, 골로새 이 세 도시가 대개 브루기아 지방의 도시들인데 저희들이 거기를 한 번 가봤습니다.


빌립이 전도하다가 순교한 곳인데요, 히에라폴리스 지금 현재는 그곳 이름을 파묵칼레 목화 송이의 성이라 그렇게 부르는데요, 아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수가 지난 몇 천 년 간 그저 솟아나는 곳입니다. 그 온천과 함께 퇴폐하고 음란한 문화가 만연된 그곳에 가서 빌립은 회개하라고 전패했을 것이고, 그렇게 전파하다가 결국은 돌에 맞아 순교를 했습니다.

히에라폴리스 언덕 위에는 빌립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교회가 팔각형으로 지어져 있었는데요, 웅장하고 또 영광스럽던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라는 말은 거룩한 도시라는 말인데 이름처럼 거룩하지가 못하고, 음란과 퇴폐문화가 만연되었던 곳인데, 빌립을 그저 때려서 순교하게 하고 나중에 지진에 의해서 히에라폴리스는 다 무너져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빌립 사도, 비록 더디 믿는 사람이지마는, 확신을 가진 후에, 성령에 이끌리어 순교하기까지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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