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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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포도나무 비유의 계속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 자신과 제자들이 일체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제자들과의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생명적 유대와 결합을 주님은 이 비유 속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포도나무와 가지
   1) 포도나무와 가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5절). 예수께서는 조금 전 만찬회 석상에서 포도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너희는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대속의 보혈로 맺어진 생명의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나무와 가지는 한 진액으로 생명이 소통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보혈을 통하여 한 생명으로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의 관계는 생명으로 연합된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몸이고 교회는 그 자체입니다(참조, 엡 5:30).
   2) 스승과 제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8절).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제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생명'의 관계라고 하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진리'의 관계임을 뜻합니다. 가지가 맺는 열매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결실한다는 말씀입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주인과 종과의 관계이기도 합니다(참조, 요 13:16). 왜냐하면 이 두 관계는 '말씀'에 의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3) 친구와 친구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4절). 여기서 주님은 제자와의 관계를 친구와 친구의 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와의 관계는 '행동'의 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수직적으로 성장하는 나무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성장하는 나무입니다. 친구와 친구의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주님께서 명하시는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제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 한 형제요 자매요 친구로의 수평적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참조, 엡 5:25).

   2. 가지의 목적
   1) 넝쿨이 무성해야 함
   가지의 목적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넝쿨이 무성하게 뻗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왕성한 생명 활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복음 전파 능력을 상징합니다. 복음 선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의 수평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2) 잎이 무성해야 함
   포도나무는 잎이 무성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잎이 무성한 포도나무 밑은 짙은 그늘이 집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나무 그늘은 좋은 휴식처였습니다. 교회는 만인의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곤한 생명들이 교회에 와서 그 영혼의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참조, 마 11:28).
   3)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함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5절). 이 말씀은 교회의 질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오순절로부터 시작된 선교 운동이 파종 운동이라 한다면 교회에서의 양육과 제자화 운동은 결실 운동이며 추수 운동입니다. 파종해서 자란 생명을 잘 가꾸어 결실케 하는 데는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필요로 합니다.

   3. 버림받은 가지
   1) 기도하지 않은 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절). 나무에서 떠난 가지는 잘린 가지입니다. 생명의 진액이 단절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떠난 자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아니합니다(7절). 기도하지 않는 심령은 죽어 있는 심령이고 거기서 어떤 생명 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2) 사랑하지 않는 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2절). 그리스도의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생명에게 활력을 줍니다. 생명 활동을 촉진시킵니다. 사랑은 생명의 본능적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생명은 죽은 생명이며, 거기에는 증오만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은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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