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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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
(눅 2:1-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요즈음은 이사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집을 옮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좋고 큰 집에서 살기를 원하고, 그래서 사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더 집을 크게 늘려ㅓ 이사를 다니곤 합니다. 물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보다 편안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세상 사람들은 크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자랑삼고 뿌듯해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탄생하시고 거기에 누우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무렵 로마황제 아구스도가 호구조사령을 내려서 저마다 본 고장으로 호적등록을 하러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도 역시 호적을 하러 가다가 이 베들레헴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관마다 다 대만원이어서 특별한 부자나 권세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관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할 수 없이 어느 여관의 마구간을 빌려 그 밤을 지내다가 예수님을 낳아 말구유에 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고대왕실 높은 집에 탄생하시지 않고 여관집 마굿간 말밥통에서 태어나셨겠습니까?

 여기에도 생각해 보면 깊은 뜻이 있습니다.


 1. 인생은 나그네임을 보여줍니다

 여관은 나그네의 집입니다. 나그네들이 목적지를 향하는 도중에 잠깐 쉬기 위해 머무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그네가 묵는 여관집 마굿간에 탄생하셨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영원히 거처하실 것이 아니요, 잠깐 다니러 오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인생은 모두 본향이 따로 있어 이 세상을 잠깐 머물다 가는 나그네임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벧전 2:11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다녀가는 나그네의 세상입니다.

 오직 우리의 본향과 시민권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마음대로 죄 짓고, 하고 싶은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천년, 만년 영원히 거할 처소인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미국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나그네 생활을 해보았는데 얼마나 집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잘 사는 나라에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다 풍족하고 편안해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세상은 잠깐 있다 가는 나그네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세상의 가치와 풍습을 좇아 세속에 깊이 파묻혀 지내거나 내 멋대로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천년 만년 영원히 거할 처소인 줄 알고 하늘나라에 보화 쌓을 줄도 모르고, 천국에 갈 준비도 하지 아니하고, 되는대로 살다가 갑자기 죽음의 날이 이르면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 허무하게 생을 끝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2. 원하는 누구나 예수님께 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왕이나 귀인들이 사는 금전옥루(金殿玉樓)에 태어나서 비단 침구 속에 뉘어져 있었다면 목자와 같이 비천한 사람은 감히 들어갈 엄두조차도 못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이 있는 마굿간에 태어나셔서 꼴을 요삼아 누워계시니 동방박사 같은 귀족도, 양치는 목자와 같은 천민도 누구나 찾아가 만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관집 자체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찾아가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데에는 세상의 어떤 자격과 조건의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귀족의 종교가 아닙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인생이 예수님께로 초대받았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창녀도, 강도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믿음만 가지고 오면 아무라도 예수님을 만나 모셔 들이고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 돈많고 지식많은 사람은 교만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래서 고전 1:26-29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마 9:13에 보면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실제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보면 창녀로부터 시작해서 강도, 세리, 문둥이,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던 모든 자들인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어떤 사람도 외면치 않으시고 사랑으로 맞아주십니다.

 이처럼 교회는 차별대우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도 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경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이 되심을 보여줍니다.

 구유는 짐승의 밥통입니다. 먹이를 담는 그릇에 아기 예수님이 누우셨습니다.

 성경에 타락한 인간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 1:3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짐승은 꼴을 먹어야 하듯이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은 생명의 양식이 되신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요 6:35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분이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음심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원뜻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떡집이라고 하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시고 짐승들의 밥그릇이 되는 말구유에 탄생하신 것도 예수님이 우리의 영의 양식이 되신다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 예수님의 겸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본체(本體)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막 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주님으로부터 남을 섬기는 생활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한편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입니다.

 빌 2:3-8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몸을 취하신 예수님의 극도의 겸손을 우리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을 보며 몇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말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은 나그네 인생을 사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예수께로 나아올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분으로서 지극히 겸비한 분이심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천국을 향하는 나그네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고 겸손히 행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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