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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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아는 은혜
(엡 2:1-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또 다시 새로운 달이 주어졌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주님의 따사로운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하는 4월의 첫날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나간 3월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이제 마음을 정돈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달에 충실하기로 합시다. 특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받았다. 은혜가 풍성하다는 등의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은혜가 무엇입니까? 의미는 대개 알고 있지만 그 뜻을 말하라면 분명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grace)란 말은 희랍어로 '카라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등의 뜻으로 쓰였지만 기독교에 들어와서는 대상자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즉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은사(gift)란 말은 카라스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 가운데에 은혜란 말을 백여 회 이상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신의 인사 첫마디도 은혜로 시작하였고 마지막 맺는 말도 은혜로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총화를 통털어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총화를 통틀어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란 우리가 받을 가치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과 사랑과 자비와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은 은혜를 두 가지로 분류하여 말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는 선행하는 은혜요, 다른 하나는 후행하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선행하는 은혜란 회심 전에 불가항력적으로 회심하도록 하시는 은혜이고, 후행하는 은혜란 회심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협력하는 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설자 죤 칼빈(John Calvin)도 이중의 은혜를 말했는데 하나는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이 성화되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죄사함 받고 거듭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하나요, 의인이 성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죄사함 받고 거듭나서 의롭게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일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무엇인기?

 고후 3:5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인 것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고후 4:7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그릇과 보배를 대조하여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은 무가치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실로 귀함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자기를 가리켜서 말하길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으며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였습니다. 고후 11:30에 보면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자기의 약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나타남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단의 찌르는 가시를 주신 것도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거나 자랑하며 교만하지 않게 하고, 은혜만을 깊이 깨닫게 하고, 또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병을 위하여 세 번이나 기도드렸을 때 응답이 오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라"고 하셨는데 그는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약함을 깊이 깨닫고 설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귀중히 여기시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아는 자입니다.

 본문 엡 2:7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도, 영생을 소유한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된 것도 결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고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궁중에서 최고의 학문과 무술을 배운, 지식과 무용에도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받은 것은 인간의 지식이나 용맹, 무술 등의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귀중히 여기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지팡이가 뱀이 된 것도 손을 품에 넣었더니 문둥이가 된 것도 육신은 결코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도록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열 하루면 들어갈 수 있는 땅을 40년 동안이나 맴돌며 고생하게 하시고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시고 메추라기를 몰아다 먹이시고 또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갈함을 해소케 해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세상을 사랑하거나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깨달은 백성은 이 세상에서도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것과 같은 축복의 생활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 8:3절에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는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신 8:11 이하에 보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하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를 결국 또 잊어버릴까 두렵다고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가난할 때는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도 건강이 회복되고 물질을 받아 편안해지면 기도하던 것도 그만두고 교회도 잘 안나오고 우쭐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에 떨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와 축복을 거두어 가시게 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 8:17, 18에 보면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을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항상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가 무엇보다 귀중한 은혜이며 이 은혜를 소유하여야 온갖 귀중한 축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 가운데 보면, 주인이 일꾼을 찾아 다니다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들여 일을 시키고 일이 다 끝난 후에 아침에 온 자나 정오에 온 자나 저녁 때 온 자나 다같이 한 데나리온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하였습니다. 이때 주인이 이르기를 '내가 선하므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 하고 책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역시 은혜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써 주지 않는 일꾼들은 아침에 온 자나 정오에 온 자나 저녁 때 와서 한시간 일한 자나 모두 주인의 은혜로 쓰임 받고 1데나리온을 받은 것이지 결코 자기들이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가치를 내세우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롬 3:24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똑같은 마른나무 지팡이 12개를 넣었는데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가진 권위나 능력도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지 막대기 같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어떻게 변화될까?

 첫째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시 115:1에 보면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결핍과 부족을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깊이 깨달은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받은 자만이 참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고후 3:5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리라"고 하셨고 고전 15:10에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깊이 은혜를 깨달아야 겠습니다. 은혜를 진정 깨닫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고 또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음 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을 믿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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