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예레미야 17:17]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항상 햇빛이 환히 비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어둠과 폭풍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3:17)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인간에게 하늘의 축복뿐 아니라 이 땅의 행복도 안겨 준다는 것 역시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만일 의인의 길이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햇볕이 이따금씩 가려질 때도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는 일정 기간 동안 구름이 우리의 태양을 가리는 바람에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을 걸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하..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시편 119:49] 여러분은 어떤 필요를 갖고 있든 그에 해당되는 약속을 성경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혹시 갈 길이 험하고 피곤해서 정신이 혼미해져 약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기 여러분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사 40:29). 이런 약속의 말씀을 읽으면 이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들고 가서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이 말씀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십시오. 혹시 그리스도를 찾아 구하며 그분과 좀더 가까운 교제를 나누기를 갈망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별처럼 반짝이는 이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 [시편 67: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들을 활용하지 않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거의 드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조언을 좀처럼 구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인도도 구하지 않은 채 일을 해나갈 때가 많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도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탱해 주시도록 그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대신 우리 자신이 지려고 끊임없이 애씁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 같기 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우리는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 가면서 우리 자신의 죄와 싸우기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너무 자주 율법을 바라봅니다. 바울은 그런 우리를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1-2). 여러분의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져 가십시오. 옛 사람은 오직 거기서만 십자가에 못박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그리고 죄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
“하나님이……그를……높이사.” [사도행전 5:31] 한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던 우리 주 예수님이 지금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물론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이처럼 높임을 받은 것은 대표자로서의 높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에 높이 들림받아 앉아 계십니다. 물론 주님은 여호와로서 유한한 피조물들이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영광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중보자로서 천국에서 입고 계신 영광은 우리 성도들이 모두 다 받아 누릴 기업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이 얼마나 가깝게 연합되어 있는지 한번 회상해 봅시..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기 19:25] 이 말씀에서 욥이 위로를 얻은 주요 부분은 바로 “나의”-”나의 구속자”라는 이 말과 그 구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 그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기 전에 먼저 그분에게 속해야 합니다. 광산에 있는 금이 내게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들은 페루에서 돈을 구걸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양식을 구걸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내 지갑 안에 있는 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돈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양식을 삽니다. 그렇다면 나를 구속하지 않는 구속자, 내 피를 절대 옹호해 주지 않는 보수자, 그런 구속자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믿음으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살..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브리서 2:14] 하나님의 자녀여, 사망은 이제 여러분을 쏘지 못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던 마귀가 멸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성령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구세주가 여러분 대신 죽어 주신 것을 분명히 알고 그 대속의 죽음을 확고히 믿음으로써 여러분에게 사망의 끔찍한 순간이 닥쳐 왔을 때 강건해질 수 있도록 대비하십시오. 갈보리 십자가 근처에 사는 여러분은 아마 사망을 기쁘게 생각하여 그것이 찾아올 때 기꺼이 환영할지도 모릅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잠드는 것은 언약의 축복입니다. 사망은 이제 더 이상 유배가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베드로전서 1:19] 우리는 십자가 밑에 서서 주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서 흘러 나오는 보배로운 붉은 피를 봅니다. 그 피는 구속과 대속의 효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그 피로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모든 죄가 대속됩니다. 율법 아래 놓여 있던 그들이 그 피로 율법에서 구속을 받습니다. 그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또 깨끗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롭습니다. 그 피는 “모든 죄로부터 깨끗게 합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예수님의 피 때문에 어떤 성도 위에도 얼룩이나 주름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 보배로운 피, 그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합..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편 22:1] 우리는 여기서 심히 슬퍼하시는 구세주의 모습을 봅니다. 갈보리만큼 그리스도의 슬픔을 잘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갈보리에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주님이 하늘을 향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을 때만큼 그 고통이 극심하게 나타난 곳도 없습니다. 이 순간에는 주님이 통과하셔야 했던 그 수치와 굴욕감에서 오는 심한 정신적 고통에 육신적인 나약함까지 겹쳤습니다. 게다가 그 슬픔을 극대화시킨 것은, 주님이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격리되는 고통,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에게 있어서 깜깜한 공포의 한밤중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때 고난의..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시편 22:7] 조롱은 우리 주님이 당하신 큰 재난 중 하나였습니다.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주님을 비웃었습니다. 헤롯은 주님을 무시했는가 하면 종과 로마 병정들은 주님에게 야유를 퍼부으며 무자비한 모욕을 가했습니다. 빌라도와 그의 보초들은 주님의 왕권을 조소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 있던 사람들은 주님을 향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악담과 별의별 희롱의 말을 다 퍼부었습니다. 조롱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특히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당하는 조롱은 너무 무정하고 잔인해서 그 피해자에게 심한 상처를 가합니다. 여기서 십자가에 못박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시편 4:2] 어떤 저자는 자신의 책 속에서 눈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학수 고대하던 자기네 왕에게 어떤 영예를 안겨 주었는지 그 목록을 애통하는 심정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이 아주 유익하므로 여기 한번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들은 주님께 영광의 행렬을 제공해 드렸습니다. 그 행렬 속에는 로마 병정, 유대인 제사장, 일반인들이 끼어 있었는데 왕되신 주님 자신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들을 전복시키러 오신 주님께 이 세상이 제공해 드린 축하 행사입니다. 그때 주님을 환영한 유일한 소리는 야유와 조롱의 함성이요 주님께 드려진 유일한 찬가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퍼붓는 악담이었습니다. (2) ..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13:13] 예수님은 고난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죄와 종교라는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별난 존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반드시 자기 선생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속하셨던 분이 아닙니다.” 그의 생애와 증거는 이 세상을 본받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항변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일찍이 우리 주님만큼 인간에 대해 넘치는 사랑을 갖고 계셨던 분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죄인들과는 분리되어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도 반드시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증거할 자들로서 “영..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요한복음 19:16] 주님은 밤새 심한 고민 가운데 괴로워하시다가 이른 아침에는 가야바의 집 뜰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런 다음 가야바에게서 서둘러 빌라도에게 보내졌으며, 빌라도에게서 다시 헤롯에게로, 헤롯에게서 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내졌습니다. 따라서 이제 주님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주님에게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드리거나 쉴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피를 간절히 원했던 그들은 주님을 죽이려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오, 그 비통한 행렬이여! 그때 예루살렘의 딸들이 울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주님을 위해 애통하며 우십시오. 우리는 복되신 주님이 이렇게 끌려가시는 모습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마태복음 27:14] 사람의 아들들을 축복하실 때는 한번도 말을 더디 하신 적이 없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과 같이 말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와 같이 침묵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침묵 한 가지만 보아도 주님이 얼마나 자기 희생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침묵은 곧 그 거룩하신 몸(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신)이 죽음당하는 것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위해 추호도 중재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없이 묶인 채 아무 불평 없이 희생 제물로 죽음당할 만큼 전적으로 자신을 복종시켰다는 뜻 아닙니까? 이 침묵은 무방비 상태인 죄..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아가 1:2] 지금까지 여러 날 동안 구세주의 고난에 대해 묵상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 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4월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이 첫날 약혼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해 설레이는 마음을 가집시다. 본문에 보면 그녀는 즉시 그를 향해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또 그가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즉시 자기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지금 자기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한 남성인 그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랑은 얼마나 담대한지 모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어떤 여자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값비싼 향유로 그의 발을 적셨습니다..
“이는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이사야 53:12] 예수님은 왜 죄인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림받는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주님이 이처럼 자신을 낮추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죄인들을 위해 보다 나은 대변자가 되시기 위해 죄인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셨습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을 동일시하는 심문에서는, 법적으로 그 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법정으로 끌려올 때 예수님께서 친히 그 법정에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그 죄인에 대한 고발에 답변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재판관에게 자신의 옆구리와 손발을 내보이시며 자기가 대변하고 있는 그 죄인들에게 불리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다 가져오라고 도전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흘린 피를 가지고 그들을 위해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요한복음 18:8]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시험당할 때조차 자기 손안에 있는 양떼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제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열정을 강력히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은 원수의 손에 내맡기면서 제자들은 가게 하라고 권위 있게 한마디 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마치 털 깎는 자 앞에 선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시면서 제자들을 위해서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자신을 잊은 사랑, 충실하고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대속의 영을 볼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 양떼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누가복음 22:48] “원수의 입맞춤은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애교 띤 얼굴로 아양을 부릴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배신하기 위한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중상하려 할 때마다 보통 기독교에 대해 굉장한 경의를 표하며 기독교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이단과 배신에 반드시 따라다니기 마련인 애교스러운 표정의 위선을 조심하십시오. 불의의 기만성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 뱀처럼 지혜롭게 그것을 간파하여 원수의 간교한 계교를 피해야 합니다. 잠언에 나오는 젊은이는 명철이 없어 낯선 여인의 입맞춤에 현혹되어 옳은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온종일 이 세상의 “매력적인 말”이 아무 영향을 미치..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5:7] 주님의 이 경외심은 마귀가 주님에게 하나님이 너를 완전히 잊어버리셨다고 속삭일 때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엄한 시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엄한 시련 중 하나입니다. 사탄은 주님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봐. 친구라곤 한 명도 없지! 네 아버지는 너를 대적하고 계시지. 네 아버지 궁정에 있는 천사조차 너를 돕기 위해 손을 뻗치지 않는구나. 온 천국이 네게서 등을 돌렸어. 너는 지금 완전히 혼자야. 네가 그 동안 함께 이야기하며 토론하던 친구들을 보렴. 아무짝에도 쓸모 없잖니?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저기 네 형제 야고보를 보렴. 저기 네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고 또 그렇게 ..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4] 여러분은 주님이 유혹과 싸울 때 그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아십니까?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온몸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죄의 무게가 얼마나 엄청나길래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만큼 구세주를 내리눌렀을까요! 이것은 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아이작 암브로스(Isaac Ambrose)는 자르지 않은 나무에서 스며 나오는 수지(樹脂)가 항상 제일 좋은 거라고 말했는데, 잘 보았습니다. 물론 이 귀한 헤나 나무(camphire-tree)는 매듭이 많은 채찍으로 맞을 때와 십자가 위에서 못으로 찔릴 때도 아주 달콤한 향기를 냅니다. 그러나 채찍에 맞거나 못에 찔리거..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로마서 4:20]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을 잘 관리하십시오. 믿음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기도도 그것이 정말 믿는 사람이 간절히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응답을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 영혼과 영광 중에 계신 주 예수님 사이에 있는 천사와 같은 사자입니다. 그 천사가 뒤로 물러나면 기도를 올려보낼 수도 없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이 땅과 천국을 연결하는 전선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그 줄을 타고 어찌나 빨리 날아오는지 우리가 미처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우리..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서 3:26]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자녀에게 다 똑같은 아버지십니다. 그런데 믿음이 적은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오, 나도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그의 칼을 휘두르듯 그렇게 용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나는 지푸라기 하나에도 걸려 넘어지고 그림자만 봐도 무서워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적은 믿음을 가진 자여, 큰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듯이 적은 믿음을 가진 당신 역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신보다 더 많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그 가족의 일..
우리는 칠판에 글자를 쓴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지운다. 그러면 글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 글자는 없어진다. 그 글자는 다시 찾을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구세주를 믿고 그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칠판에 쓴 글자를 지우면 분필 가루가 칠판밑에 떨어지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흔적이 없이 사라지게 하신다. 이와 같이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알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1. 첫째로 그는 우리의 죄를 지워 버리신다고 말씀하셨다(사43:25-). 그것은 칠판에 쓴 글자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늘을 뒤덮는 구름이 몇분 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본 일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이와 같..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 [갈라디아서 2:10]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모두 부자로 만드실 수도 있을텐데 왜 그들이 가난하게 살도록 허용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들 집 문 앞에 금이 잔뜩 들어 있는 가방을 놓아 주실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많은 연봉을 주실 수도 있을텐데. 아니면 전에 이스라엘 진 둘레에 메뚜기 떼를 잔뜩 보내어 쌓이게 하시고 하늘로부터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가난한 백성들 집 주변에 양식을 잔뜩 뿌려 주실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가난한 것이 최선이라고 보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 가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산(千山)의 육축이 다 그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그리스도 오심의 목적- 죄는 사람을 더럽히며, 타락시키는 것 뿐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의 형벌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고로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구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범할 것을 아시고, 죄의 두려움을 아셔서 인간을 죄와 그 결과에서 구원하실 방법을 준비 하셨다. 인간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신 것이다(계13:8-). 그러한 구원의 이야기가 성경의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연속하여 기록되어 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준비하신 능력에 의하여 죄의 형벌이나, 능력이나 더럽힘에서 구원은 또한 죄인의 완전한 신생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고로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생명,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및 새로운 노래를 부여 받는다. 즉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성질과, 새로운 봉..
“대저 나는 주와 함께 객이 되고.” [시편 39:12] 오 주여, 그렇습니다. 저는 주님께 객이 된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객이 되었습니다. 제가 자연인일 때 주님에 대해 갖고 있던 그 모든 소외감은 주님의 은혜로 이미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타국에 사는 순례자로 이 죄악된 세상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의 세상에서 객이 되어 사십니다. 인간은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을 푸대접하며, 새로운 법과 이상한 관례들을 세웁니다. 그들은 주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것인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그의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계셨고 이 세상은 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방 ..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열왕기하 7:3]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본서는 주로 그리스도인들을 세워 주기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라면, 저는 여러분이 속히 구원받기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말씀 한마디를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성경책을 펴서 위에 적힌 본문이 나와 있는 문둥병자 이야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현재 여러분의 처지와 아주 흡사했던 그들의 처지를 눈여겨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그 상태대로 그대로 남아 있는다면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가면 절대 멸망하지 않습니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여러분의 경우에 그 모험은 그렇게 ..
오늘은 죄의 결과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1. 무엇보다 먼저 죄는 종종 표면으로 나타나는 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산다. 이 세계는 도덕적인 세계요, 그 중심에는 정의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의 결과로 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하여 찰스·킹슬러(Charels Kingsley 영국 소설가 1819-1875)는 '기계의 바퀴가 그 고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벌을 받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그가 고치신 어떤 병자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라고 말씀하신바가 있는데 죄에 벌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 어떤 외부적인 형벌은 그들의 내적인 결정으로 말미암아 감소될 수 있음을 예수님은 ..
“네 이웃을 사랑하고.” [마태복음 5:43] “네 이웃을 사랑하라.” 어쩌면 여러분은 가난한데 여러분 이웃에 사는 사람은 엄청난 부자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 옆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고 살지도 모릅니다. 그의 저택에는 딸린 부지도 많고 그는 늘 화려한 옷을 입으며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옆집에 살며 그 광경을 매일 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그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니 그의 재산을 탐내지도 말고 그 사람에 대해 나쁜 생각도 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처지가 그 사람만 못해도 여러분의 처지에 만족하십시오. 그 이웃을 바라보고 나도 저 사람같이 되었으면 하고 시샘하지 마십시오. 그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그를 시샘하지 ..
오늘은 죄의 결과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1. 무엇보다 먼저 죄는 종종 표면으로 나타나는 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산다. 이 세계는 도덕적인 세계요, 그 중심에는 정의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의 결과로 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하여 찰스·킹슬러(Charels Kingsley 영국 소설가 1819-1875)는 '기계의 바퀴가 그 고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벌을 받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그가 고치신 어떤 병자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5:14)라고 말씀하신바가 있는데 죄에 벌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 어떤 외부적인 형벌은 그들의 내적인 결정으로 말미암아 감소될 수 있음을 예수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