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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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지 마라

출애굽기 20장 14절_ 하용조 목사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음란의 문제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틈새를 따라 모래가 쉽게 빠져나가듯이 우리는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개인의 영혼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가정의 순결이 무너집니다. 우리 사회가 무너집니다.


순결한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십계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을 선포하고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십계명이 존재하는 이유 

십계명은 왜 존재할까요?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인류가 가장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살 수 있는 법칙이 바로 십계명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인간에 관한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너무 낡은 도덕적 사고인 것 같고, 시대에 맞지 않는 명령처럼 들립니다. 또 너무 오래 들은 얘기고, 너무 많이 들은 얘기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를 끌어가는 새로운 사상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키고 무시하고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 사회입니다. 지난 세기 때부터 십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본능과 인간의 생각에 맞게 합리화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인, 자살, 전쟁, 자살폭탄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습니다. 낙태는 평범한 일처럼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양심이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나 약자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이성도 마비되고 양심도 마비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별로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결과 우리에게 가정파괴의 위기가 왔습니다. 오늘날 건강한 가정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또 부모를 공경하려는 자녀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치료하면서 쉬고 있는 일본에서는 가정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홈리스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지성인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가정의 위기가 심각한 상태입니다.


음란 문화에 노출된 세상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보면 더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간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피할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간음의 문제는 성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린아이까지 100% 노출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을 잘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면 인류는 평화와 축복을 누리게 되지만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인류에게는 저주와 심판과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십계명에는 어떤 조건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계명에 대해 거부하지 않지만 타협을 합니다. ‘어디까지 간음인가,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도둑질인가’ 등 해석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쉽게 자기의 죄를 합리화하고 자기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범위까지 해석을 넓혀서 그것을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십계명은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고 지키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도망갈 구멍을 다 파놓고 변명합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순결한 신부의 옷을 벗어버리고 더러워진 창녀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낮에는 신부의 옷을 입고 밤에는 창녀의 얼굴을 하는 현대인의 두 얼굴을 상징합니다. 창녀의 옷을 입고 뻔뻔한 얼굴을 할 뿐만 아니라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란한 말을 하고 음란한 책을 만들고 포르노를 만듭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숨기지도 않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란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에 더 이상 눈을 뜨고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옛날에는 문학작품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욕망을 표현했습니다. 문학작품에서 프로이드가 말한 성 본능을 주제로 수없이 억눌렸던 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미디어와 문화 가운데 성적인 문제가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포르노를 다 가져다가 불태운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음란한 문화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고민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영혼을 파괴하는 음란문화

우리 사회를 음란한 사회로 만든 주범은 바로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반역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끊임없이 말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폭풍 같은 음란문화를 잠재우지 않으면 다 이 물결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성애와 근친상간 등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는 도시 전체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19:24). 그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사건만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은 사회가 됐습니다. 근친상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성폭력의 희생양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어려서 성폭행을 당한 아이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일들이 이제 우리 주변의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원조교제라는 말은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한테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음란의 문제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틈새를 따라 모래가 쉽게 빠져나가듯이 우리는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개인만 무너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영혼이 파괴될 뿐만 아니라 가정의 순결이 무너집니다. 가정이 뿌리째 흔들립니다. 우리 사회가 무너집니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의 주제가 대부분 ‘불륜’입니다. 남의 아내를 뺏고 남의 남편을 뺏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드라마 작가들의 성경공부를 위한 장소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드라마를 잘 써야 국민의 도덕과 성적인 양심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는 불륜 드라마를 만들어 음란문화를 부추기면서 돈을 벌고, 같은 방송사의 언론에서는 뉴스를 통해 사회 양심을 얘기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된 것처럼 심판의 칼을 들고 정죄하면서 정의와 도덕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어놓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결혼제도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히 13: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3:16).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어찌 창기에게 내어주느냐”(고전 6:15)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을 사고파는 비즈니스가 이제 안방까지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성인사이트에 우리 자녀들이 노출돼 있습니다. 케이블TV에서는 포르노를 계속 방영합니다. 음란한 영화, 소설, 영상물 등으로 청년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음란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성이 마비되었고 양심은 병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상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온 것입니다. 또 놀랍게도 이러한 음란한 세상, 살인하는 세상은 종교다원주의와 진화론에 의해 합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조상이 동물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본능을 가진 동물과 똑같습니다. ‘성은 본능’이라고 반쪽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은 ‘아름답고 축복이고 귀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은 더러운 것이고 배신하는 것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만듭니다. ‘성은 본능적인 것이고, 본능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느냐’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이 세상은 점점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의 자유화를 부르짖고 있는 순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동물의 성적 관계와 똑같이 돼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흉악하고 뻔뻔한 창녀 같은 사회를 순결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십계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을 선포하고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십계명을 선포하십시오. 요즘 많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잘 외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마귀가 깔아놓은 덫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다르게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 말씀과 성령과 기도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음란한 생각과 더러운 생각과 뻔뻔한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놓지 않아야 합니다.

간음의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동물하고 간음하기도 하고, 동성끼리 간음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마귀의 전염병을 성령의 전염병으로 다시 바꿔놔야 합니다.

성적인 타락은 영적인 타락

어떻게 간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진화론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진화론에 세뇌되었습니다. 여러분, 살인하는 사회, 간음하는 사회는 하나님이 없는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사회입니다. 진화론은 미신 중의 미신입니다. 과학적 진리가 아닙니다.

두 번째, 우리 주변의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모든 사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낙태, 모든 종류의 변태적 성행위, 동성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죄를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십계명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진정한 성의 축복과 아름다움을 누려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 인해 성을 쾌락의 도구로 삼기 때문에 신성한 성이 타락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을 부인하면 어떻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번성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고 하신 것이 바로 성을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 안에서 성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네 번째, 영적인 대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적인 타락은 영적인 타락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영적인 간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성적인 타락과 더불어 영적인 타락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단들은 성적으로 타락한 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영적으로 억압을 해서 성의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느 집단이든지 성을 합리화하는 집단은 이단입니다. 잘못된 종교입니다.

죄악 된 습관을 끊어라

성경에서 음란한 생각과 간음과 성적인 타락에 대한 경고를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피, 성욕의 피가 계속 우리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악의 유혹을 피해가야 합니다. 죄악 된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변명하지 말고 당장 끊으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파멸되고 가정도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소돔과 고모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잠언 6장 32~33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여자와 간음한 사람은 생각이 모자라는 자니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망치는 것이다. 그는 상처를 받고 망신을 당할 것이요, 그 수치가 결코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인은 순결한 여인이 아니라 창녀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창녀와 같은 시대입니다. 창녀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여러분, 간음하면 여러분의 영혼이 가장 먼저 죽습니다. 그리고 간음하는 사람은 신앙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양심의 갈등을 느껴서 예수님을 피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절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인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 내어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사람들과 간음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니고 성경공부를 많이 해도 간음하는 순간 여러분의 영혼은 타락하고 순결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결한 신부처럼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잘 지켜야

신명기 22장 22절을 읽겠습니다. “만약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 밝혀지면 그 남자와 여자는 죽여서 그런 악한 사람들을 이스라엘에서 제거하여라.”

여러분, 유부녀와 동침하는 것을 보는 순간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렇게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게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단 몸에 들어가면 온몸을 파괴해버립니다. 암세포와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3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음행에 빠지게 하는 유혹이 있기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음행에 빠지게 하는 유혹이 있기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더 이상 논쟁이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의 논리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십계명에 대한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십계명을 잘 지키고 살면 반드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구원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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