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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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에 관한 예화 모음



주님께 양보합니다


저는 교회에서는 좋은 목사님으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은 운전할 때 너무 불평을 많이해요. 앞에 차가 끼어들면 뭐라 하고 늦게 가면 뭐라하고..... ”

저는 지금까지 운전을 하면서 그 누구도 내 앞 자리에 끼어주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남에 앞에 정말 잘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0년을 운전을 하였던 것입니다.

며칠 전에 운전을 하는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내가 만약에 네차 앞에 들어 가자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꺼니!”

“당연히 앞에 모셔야지요”

“지금부터는 운전할 때 모든 차에게 양보해라. 그 대신에 그 숫자를 세어보아라.”

그날부터 내 앞에 들어오려는 차가있으면

“주님! 어서 오시지요.” 하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앞에 차와의 거리를 두는데 다른 차들이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양보한 자동차 수를 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밀히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아들아! 네 몸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하지만 운전도 거듭나야 한단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운전도 (자동차도)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차에게 양보하는 것은 주님께 하는 것이므로

처음으로 운전하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양보


지하철 2호선 열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여학생이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앉으세요."

"아냐, 학생이 앉아."

할머니는 끝내 자리에 앉지 않아셨고,

학생에게 양보했습니다.

"공부하느라고,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얼마나 힘이 드노..."

자신은 안양에서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역삼역까지 서서 다니는데 서 있으면

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아서 그냥 좋다고 하셨습니다.

"역삼역은 왜 가시는데요?"

여학생이 묻자, 할머니는

"내가 다니는 교회가 거기에 있거든."

하시며, 이내 손녀딸과 할머니처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친절과 배려는 세대 구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베푸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주인공입니다.


류중현 | 지하철사랑의편지 운영자



양보의 승리

호주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습니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두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서 맞닥뜨렸습니다. 그런데 한 선수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기권을 하고 매트를 내려왔고 뒤따라 내려온 다른 선수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날 경기를 포기한 선수는 한국계 미국인 에스더 김이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는 케이 포라는 선수였습니다. 케이 포는 준결승전에서 큰 부상을 당해 결승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경기를 했더라면 에스더 김 선수가 올림픽 진출권을 획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고 경쟁자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양보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케이 포는 나보다 실력이 한 수 위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할 적임자에게 기회를 주었을 뿐입니다."

이 날 두 사람은 모두 승자가 됐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상대를 이겨야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미 있는 참된 승리가 아니라면 용기 있게 포기하는 참된 승리자가 되십시오.

주님! 인생 가운데 정직한 승리의 경험을 풍성하게 부어주소서.

편법이나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룬 적이 있다면 고백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순서를 양보한 노인

어떤 사람이 급한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소포 발송 창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바로 앞에 서 있는 한 노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자기 차례가 되자 뒤를 돌아다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세요. 나는 급하지 않습니다. 보아하니 당신 소포가 내 것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는군요.” 그는 노인에게 감사하며 먼저 소포를 부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을 다 마친 후 우체국 문을 나서며 보니, 노인이 또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한참이나 기다린 후 정당하게 얻은 자신의 권리를 자기보다 더 바쁜 이들을 위해 기꺼이 포기하고 양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 나라에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이 땅을 천국땅으로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게 큰 희생이 아니라도 이 노인처럼 작은 여유와 친절의 행위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합니다. 이 땅을 따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작은 사랑과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는 이들이 되십시오. 그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작은 부분부분에 사랑과 친절의 행동을 할 수 있게 하소서.”

요즘 당신은 어떤 사랑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아름다운 양보

그룬트비(1783~1872)는 덴마크를 부강한 나라로 만든 국부(國父)로 불린다. 그룬트비가 코펜하겐 시의원에 출마한 것은 65세! 정당의 공천 없이 출마한 그는 56표 차로 낙선하고 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코펜하겐의 지성인 2,000명이 한마음으로 그룬트비를 칙선(勅選) 의원으로 임명해 줄 것을 왕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러자 그룬트비를 누르고 당선된 사람이 시민들의 마음이 그룬트비에게 쏠려 있음을 알고 미련 없이 의원직을 사임했다. 그 후에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입후보자들이 모두 사퇴했다. 결국 그룬트비는 무투표로 당선되는 행운을 안았고 덴마크의 미래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경쟁자들의 양보로 당선된 그룬트비가 사람들에게 강조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국민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마음이 없으면 나라의 도덕이 무너진다. 둘째, 방향이 정해지면 강력히 추진하라.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무 일도 못한다. 셋째, 조국을 사랑하라. 덴마크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룬트비의 강력한 추진력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라의 국부라 불리는 그룬트비의 뒤에는 그를 위해 자신의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는 동안에 필요한 여덟 단어」/ 임해식  생명의삶



양보와 타협

요즘 세태를 보면서 이솝 우화 중 외나무다리 위의 두 염소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우화는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두 염소는 서로 한 발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먼저 다리를 건너겠다고 고집부리며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하다가 뿔을 서로 치받으며 싸운다. 결국 두 마리 모두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정치권을 보면서 한 치 양보도 없이 그냥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여야의 모습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는 부끄럽게도 교계 안에도 같은 현상이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좁게는 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한 교단 안에서 교권 쟁탈을 위한 양보와 타협이 없는 투쟁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성경의 교훈이 생각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양보와 결단

조선조 태종은 세 명의 왕자를 뒀다. 양녕대군이 왕세자이고, 그 다음이 효령대군, 충녕대군 순이었다. 양녕과 효령은 부왕인 태종이 막내인 충녕에게 왕위를 승계하고 싶어함을 잘 알고 있었다. 왕권 찬탈을 위한 권력 투쟁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양녕대군은 주색잡기에 빠졌고, 왕자답지 않은 언행으로 왕위계승 가시권의 밖으로 맴돌았다. 둘째 효령도 불교에 심취, 가출을 일삼으며 왕권에서 멀어졌다. 결국 왕위는 충녕대군에게 돌아갔다.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이 등극함은 우리 역사의 복이다. 하지만 양녕과 효령의 공로를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본래가 일탈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인색한 평가가 많지만, 세종으로 하여금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양보하고 결단한 면목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의 공헌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우리 역사와 사회에서도 양녕과 효령처럼 양보와 결단으로 뒷선에 물러선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배려가 필요하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모두에게 평안을 주는 양보

인간은 각기 개성과 가치관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대립과 마찰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서로의 양보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양보를 해야 할 경우에 자신이 모자라거나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되어 망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양보하며 사는 길일까? 채근담에서는 "좁은 지름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어 남을 가게 하고 맛 좋은 음식이 있을 때에는 삼분을 감해서 남에게 양보하며 맛보게 하라.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 하였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한 마지기를 잃지 않는다"는 소학(小學)의 교훈처럼 양보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두고두고 기쁨과 유익을 가져다 준다. 양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곧 겸양이다. 매사에 자기 자신의 공로와 능력을 내세우며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양보의 미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고 하였고, 허버트도 "겸양은 새로운 명예에 이르게 한다"고 하여 겸양의 가치를 숭상하였다. 겸손한 자의 양보는 마음을 평안케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화평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사색 / 조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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