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늘이

반응형


예수님의 질문과 명령 
 
 
 
[ 요한복음 21:15 - 21:17 / 찬송가 505 장 ]
 
첫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과 예수님의 명령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둘째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과 예수님의 명령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셋째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과 예수님의 명령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중심문단 ●17 The thir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because Jesus asked him the third time, "Do you love me?" He said,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Jesus said, "Feed my sheep.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하고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그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수제자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원점에서 점검해야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15)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앞에서, 다른 사람은 다 버릴지라도 자신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요 13:37) 자신없는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물어본 ‘사랑하느냐’는 단어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이지만, 베드로가 대답한 ‘사랑한다’는 단어는 인간적인 우정을 나타내는 필레오였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이 사람들보다’는 제외하고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냐?“를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가페라는 단어까지 빼고 ”네가 나를 사랑(필레오)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세 번 반복된 이 질문 앞에서 참된 우정도 장담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깊이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사랑을 진심으로 고백했습니다(17). 여기서 ‘안다’는 표현은 두 번의 고백에서 나온 표피적인 앎이 아니라 완전한 앎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곧 그는 모든 것을 꿰뚤어보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 중심에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어린 양떼를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목양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을 먹이는 일을 할때만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린 양이란 마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자신처럼 매우 연약하고 돌보아 할 것이 많은 신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양은 베드로의 양이 아니라 ‘내 양’ 곧 예수님의 양입니다. 곧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맡기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친히 목자장이 되셔서 그 양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목양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목자장되신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서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만다이링 바타크인(Mandailing Batak People)


힘든 벼농사 일을 마친 얀은, 이슬람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팔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를 본 얀의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우린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거지. 사원으로 가는 게 아니란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얀이 물었습니다. “왜 다른 바타크인은 크리스천이에요? 왜 우리처럼 무슬림이 아니죠?” 그의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있단다. 크리스챤들은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부패한 성경을 읽고 있지. 아마도 언젠가 바타크인도 정신을 차릴게다.” 얀과 그의 아버지는 만다이링 바타크인입니다. 만다이링 바타크인은 세 가지 사실 때문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자신들은 크리스챤이 아닌 무슬림 바타크인이라는 것과, 예의가 바르다는 것, 20세대 전 조상의 풍습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인도네시아의 신자들을 통해 바타크인의 영육 간의 필요가 채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