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심으신 레바논의 백향목이로다.” [시편 104:16] 여기서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들이 오직 여호와에 의해 심겨졌다는 뜻에서 그리스도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은 인간이 심은 존재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심은 존재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존재입니다. 성령의 신비한 손길이, 미리 준비해 둔 심령 속에 친히 오시어 살아 있는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이처럼 천국의 모든 참 후사들은 위대한 농부되신 하나님에 의해 심겨진 것입니다. 게다가 레바논의 백향목은 인간이 뿌려 주는 물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높은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인간이 주는 물로 그 자신을 적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제공해 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시편 97:1] 이 복된 말씀이 진리인 한, 우리는 불안해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호와는 마치 바다의 맹렬한 파도를 즉시 잠잠케 하시듯, 이 땅에서 일어나는 악한 자들의 격노도 즉시 평정하십니다. 그는 소낙비를 내려 이 땅을 신선하게 만드시듯 그 긍휼로 빈궁한 자들을 소생케 하십니다. 마치 사납고 무서운 비바람이 불 때 그 속에서 위엄 있는 불꽃이 번득이듯, 열방들이 무너지고 그 왕권이 붕괴되는 장관 속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과 싸움 속에서 왕되신 하나님의 손길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의 모든 환난과 눈물을 보고 들으신다. 그러니 내 영혼아, 어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영..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3:4] 바울의 이 놀라운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의 원천이 되신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그 동일한 음성이 우리를 새 생명으로 일으키셨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의 영적 생명의 실체십니다. 그의 생명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는 영광의 소망이요, 우리 행동의 용수철이요, 우리의 모든 생각들을 움직이는 중심 생각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없다면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요?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50). 오, ..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가복음 14:72] 베드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이 주님을 부인했던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눈물을 주르르 흘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죄는 너무 큰 죄였지만 후에 베드로 안에 있던 은혜가 그 사역을 온전히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도 성령께서 돌같이 단단한 자연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제거하시느냐에 따라 이와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우리가 자신만만하게 한 약속을 기억합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버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 그 말을 곱씹으며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서원했던 것과 우리의 실제 모습을 비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시편 73:23] “그럼에도 불구하고”(한글 개혁에는 따로 번역하지 않았음-역자 주) 즉 다윗이 방금 하나님께 고백한 그 모든 우매와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원받아 하나님께 용납되었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임재 속에 있을 수 있는 축복 역시 그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의 상태, 자기 본성의 그 사악함과 기만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충천하여 너무 기쁜 나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다윗의 고백과 인식 속으로 들어가 그와 같은 심령이 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편 73:22]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자신의 속사람에 대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우매”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보통 쓰는 어리석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이 전 절에서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 어리석은 자(한글 개역에는 “오만한 자”로 번역됨-역자 주)를 질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우매”라는 말 속에는 죄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처럼 “우매”한 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매의 정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여 “내가 이같이 우매하니”라고 쓰고 있습니..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베드로후서 1:4] 만일 여러분이 체험을 통해 그 약속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면 그 약속들을 마음에 품고 많이 묵상하십시오. 약속 중에는 포도주틀에 있는 포도 같은 약속들도 있어서 여러분이 발로 밟으면 거기서 포도즙이 줄줄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 거룩한 말씀들을 곰곰이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그 말씀 성취의 서곡이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묵상하고 있는 동안 여러분이 찾고 있던 위로나 도움이 여러분도 모르는 새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 약속에 목말랐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그 약속이 살며시 영혼 속으로 스며들어와 확신을 얻고 그 약속을 마음에 꼭 간직하게 된 것으로 인해 기뻐했던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들을 묵상..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오바댜 1:11] 이스라엘이 곤궁에 처해 있을 때 에돔은 그들에게 당연히 형제의 친절을 나타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에서의 후손들은 그렇게 하는 대신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한패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시저가 브루투스를 보고 “부루투스 너도”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너도”라고 특별히 강조되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잘못된 행위가 그 잘못을 범한 사람 때문에 더욱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택자요 천국 백성들인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 죄는 더욱 가증한 죄가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특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더욱 불쾌하게 해드립니다. 만일 우리가 악을 행하고 있을 때 천사가 우리 위에 손을 댄다면 그 ..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예레미야 3:14] 예수 그리스도는 결혼을 통해 그의 백성들과 하나되셨습니다. 그는 사랑 안에서 그의 교회를 순결한 신부로 맞이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곧 속박의 멍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다 지불하실 때까지 마치 야곱이 라헬을 위해 수고했던 것처럼 교회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땀흘리며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그의 영으로 그녀를 되찾아 그녀로 하여금 그를 알고 사랑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주님은 혼인 예식 때 신부와 신랑간의 지극한 기쁨이 절정에 달할 그 영광스러운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영광스러운 신랑은 온전해진 그의 신부를 천국의 위엄 앞에 아직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아직 그의 아내요 왕비로서의 위엄을 누리는..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이사야 37:22]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확신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 부들부들 떨던 시온의 불쌍한 백성들이 점점 담대해지더니 산헤립의 호언 장담하는 협박을 듣고도 그 머리를 흔들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강한 믿음을 가질 때 그들은 가장 거만한 원수들도 차분히 경멸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원수들이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영생을 파괴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한 절대 파괴될 수 없습니다. 또 교회라는 성채를 전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부의 문은 절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들은 뾰족하게 나온 것들을 발로 차서 결국 자기네 발을 다치고 맙니다..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에베소서 1:14] 오! 예수님을 먹고 살되 오직 예수님만 먹고 사는 법을 배운 사람이 체험하는 그 환함, 그 기쁨, 그 위로, 그 즐거움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깨닫는 그리스도의 소중함은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쓴 것처럼 “그것은 단지 맛을 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의 인자하심을 맛보고 그것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는 되었지만 주께서 얼마나 선하고 인자하신지는 아직 모릅니다. 우리는 성령의 첫열매들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천국 포도주의 완전한 맛을 보고싶어 몹시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4]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자기들이 택함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방식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마음에 확신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매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곧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서 예수님께 그대로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는 성경 말씀을 읽었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성경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출애굽기 16:21] 여러분이 풍성하게 즐기는 것들을 계속 받으려면 전적으로 주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에만 의존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도록 애쓰십시오. 절대 옛 만나를 먹고 살려 하지 마십시오. 애굽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지도 마십시오. 모든 것은 반드시 예수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이전에 받은 기름 부음만 가지고는 여러분 영이 거룩한 기름으로 채워지기에 부족합니다. 여러분 머리에는 성소의 금뿔에서 오는 신선한 기름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광이 멈추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아침에 하나님의 산 정상에 올라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에 계속 있으려면 여러분을 그곳에 올려 놓으신 하나님께..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레위기 6:13] 여러분의 개인 기도 제단 불이 항상 타오르게 하십시오. 그것이 모든 경건의 생명입니다. 성소와 가정 제단들이 여기서 불을 빌려 갑니다. 따라서 이 불이 잘 피어 오르게 해야 합니다. 은밀한 기도 생활이야말로 생명 있는 참기독교의 정수요 증거요 측정기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의 희생 제물 기름을 태우십시오. 가능하면 여러분의 골방에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자주 기도하십시오. 효과적인 기도는 쓸모가 아주 많습니다. 기도할 제목이 없습니까? 그럼 교회를 위해, 목회자의 사역을 위해,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자녀들과 친척들을 위해, 여러분의 이웃과 나라를 위해, 그리고 온 세계에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전파되기..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출애굽기 20:25]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제단은 인간의 기술이나 수고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못하도록 다듬지 않은 돌로 세워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는 십자가의 교리를 타락한 본성의 사악한 취향에 맞도록 보다 인위적인 시스템으로 다듬고 짜맞추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지혜는 복음을 향상시키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다른 복음으로 변질시키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수정하고 변경하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데 자기도 한몫 거들고 싶어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가 준비해 줘야 한다고 꿈꾸며, 겸손..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요나 4:9] 성내는 것이 항상 혹은 반드시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화는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네가 성냄이 합당하냐?”라고 자문해 봄으로써 우리가 내는 그 화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래, 합당하다”라고 답할 수 있는 화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분노는 미치광이의 횃불일 때도 많지만 때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엘리야의 불일 때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선과 자비로운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하는 잘못 때문에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 화를 낸다면, 그처럼 하나님의 교훈을 많이 받고도 여전히 어리석은 우리 자신을 보고 화를 낸다면, 혹은 단지 사람들이 행하는 악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에베소서 2:19] 천국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천국의 통치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천국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영광의 보좌에서 선포된 말씀들을 값없이 받습니다.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들에 대해 기쁘게 순종합니다. 그런 다음 새 예루살렘의 시민인 우리가 천국의 영광들을 누립니다. 이미 영화롭게 된 성도들이 받아 누리는 그 영광을 우리도 받아 누립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보혈 제국 왕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 있으며, 천사들을 우리의 수종자로,..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 103:2] 옛 성도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그들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목격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이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하고 흥미롭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자신의 생애를 이전에 살았던 성도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하나님이 늘 동행하셨던 삶, 그의 진리와 선하심으로 충만했던 삶, 그의 신실하심과 진실하심을 증거하는 것들로 가득 찼던 삶으로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의 모든 능력을 보이시고 ..
“청컨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지 내게 말하라.” [사사기 16:6] 믿음의 그 비밀스러운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것은 믿음이 먹고 사는 양식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그 큰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인 그 약속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이 약속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 약속을 누가 주었지?”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그 약속이 얼마나 큰 약속인가보다는 “이 약속을 준 장본인이 누구일까?”라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변함..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25]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성도들의 의무에 대해 상기시키고자 이 본문 말씀을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도가 말했고, 지금은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이 본문 말씀이 요청하고 있는 대로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마다 목회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성도 여러분, 우리 목회자들이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복과 저주가 달려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영혼들을 다루되 영원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생명의 맛을 낼 수도 있고 사망의 맛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하나님의 사랑은 특히 심판 한가운데서 비칠 때 그 빛이 찬란합니다. 금방 천둥이라도 칠 것 같은 먹장 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나타나 미소짓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명한지 모릅니다. 사막에 흐르는 오아시스를 보십시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지요. 이처럼 진노의 한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격노케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되 이슬과 비 이 둘을 보내지 않으심으로써 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와중에서도 택함받은 백성들은 안전하게 보..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창세기 41:4] 저는 바로의 꿈에 관한 이 글을 읽을 때면 정신이 번쩍 날 때가 많습니다. 혹시 나태하고 게으르게 지내느라 그 동안 열심히 근면하게 일하며 성취한 모든 것들을 황폐하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는지. 냉랭하고 무심하게 지낸 날들로 인해 진지하게 열심으로 지낼 때 타오르던 그 모든 따스한 열기들을 싸늘하게 식히지는 않았는지. 이 세상을 본받아 사느라 내 안에 있던 새 생명이 더 자라지 못하고 뒤로 처진 것은 아닌지. 아! 그 동안 파리한 기도, 파리한 찬양, 파리한 의무, 파리한 체험을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이것들이 결국 나의 살진 안락과 평화를 잡아먹고 말텐데. 만일 한순간이라도 기도를 등한히 한다면 그 동안 쌓아 온 나의..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시편 33 : 21 [시편 33:21] 그리스도인들은 극심한 절망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비록 환난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여전히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들처럼 새장 안에 갇혀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파도가 그 위로 엄몰할 때도 그 영혼이 곧 수면 위로 떠올라 하나님의 얼굴에서 비취는 광채를 봅니다. 그리스도인들 주변에는 항상 그들을 받쳐 주는 부력이 있어서 폭풍이 몰아쳐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그래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요? 물론 예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 예수님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환난 자체가 환난을 당하는 성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은 찌는 듯이 더운 한여름의 폭서에도 마르지 않으며 거세게 몰아치는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얼지 않습니다. 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기 위해 예비된 그릇이라는 사실로 기뻐하십시오. 계절은 바뀌고 여러분 자신도 바뀌지만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실 뿐 아니라 그의 넓고 깊은 사랑의 강 역시 항상 차고 넘칩니다. 그러니 사업상의 염려나 지독한 시련의 열로 그의 은혜의 강에서 흘러나오는 그 차가운 생수가 필요할 때는 즉시 가서 다함이 없는 그 샘물을 충분히 마시십시오. 그 샘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철철 넘칩니다. 그 윗샘도 절대 부족함이 없으며 아랫샘 역시 절대 마르지 않으니 이로 인해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요한복음 17:22] 우리 주 예수님이 얼마나 관대하신지 한번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사실 주님의 것 중 십분의 일만 가지고도 모든 천사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부요를 누릴 수 있는데,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하셨다니 얼마나 지극한 은혜입니까? 사실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긍휼의 식탁에 앉아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먹게 해주셨어도 굉장히 놀라운 은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건성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앉아 그 잔치를 즐기십니다. 주께서 그의 하늘 창고에서 우리에게 조금만 내어 주신다 해도 우..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4] 그 영혼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잔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리스도는 죽어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속삭이십니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 잡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 보좌 앞에 있으며, 밤낮으로 그의 성전에서 그를 찬양하며, 그 피로 그들을 죄에서 깨끗이 씻어 주신 주님께 할렐루야를 부릅니다. 그들의 몸은 이 땅의 쓸쓸한 침대, 풀로 덮인 무덤 아래서 잡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 잠은 도대체 어떤 잠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잠은 “안식”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개념입니다. 우리는 매일 밤 그날 하루를 쉬기 위해 잠을 잡..
“너도 우리같이……되었느냐.” [이사야 14:10]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실은 복음을 배반한 사람, 이 벌거벗은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어떤 운명에 처해질까요? 하나님이 그를 향하여 “너 저주받은 자여 나를 떠나라. 네가 나를 거절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절한다. 너는 그 동안 음녀 노릇을 했으니 나를 떠나라. 나 역시 너를 나의 존전에서 영원히 쫓아내고 네게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실 때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마지막 심판 날 모든 성도들이 모인 앞에서, 자신이 썼던 가면이 벗겨질 때 이 비열한 배도자는 과연 어떤 수치를 당하게 될까요? 하나님을 욕되게 한 그 사람을 보십시오. 이 땅에 사는 동안 한번도 기독교를 믿는다고 고백한 적이 없는 죄인들도 지옥불 가에..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이사야 40:9]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의 지식은 어떤 점에서 보면 웨일스의 산 중 하나를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산 밑에 있을 때는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산의 높이도 실제 높이의 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서 조금 올라가 작은 계곡 속에 갇히게 되면, 그때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산 밑에 있는 개울로 흘러 들어가는 계곡 물밖에 다른 것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산봉우리로 올라가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까지 올라온 그 산 밑의 계곡이 굉장히 넓고 길게 보일 것입니다. 거기서 더 높이 올라가 보십시오. 거기서는 사오 마일 반경내에 있는 전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 탁 트인 전망을 볼 때 기분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
“네 구속자.” [이사야 54:5] 우리 구주 예수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것일 뿐 아니라 영원히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직임은 다 우리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왕이요,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요, 우리를 위한 선지자십니다. 이제부터 구주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새 호칭을 읽을 때마다 그것도 우리의 것으로 주장합시다. 목자되신 주님의 지팡이, 주님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막대기, 대장되신 주님의 검, 제사장되신 주님의 관, 왕되신 주님의 홀, 선지자되신 주님의 겉옷,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위엄은 우리를 높이기 위한 것이요 예수님의 모든 특권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신성의 충만함은 우리가 언제든지 가서 사용할 수 있는 무진장한 보고입니다. ..
“여호와여 도우소서.” [시편 12:1] 이 기도는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주 놀라운 기도입니다. 비록 짧긴 하지만 때에 맞고, 지혜로우며,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주변에 신실한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통탄하며 눈을 들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낙심이 된 그는 창조주에게 달려갔습니다. 물론 자신의 연약함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그와 함께 진리를 위해 노력할 셈이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도우소서”라고만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두 단어에 불과한 이 간청 속에는 단도 직입적이며 분명한 통찰력과 명료한 발언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신앙고..